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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Dec 10. 2020

우리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들

그때의 풍경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진은 한국일보에서 퍼왔어요 

1. 뛰어노는 아이들 


지방 소도시에 가면 좀 다를까요? 여전히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다방구하고, 술래잡기 하나요? 골목 풍경의 핵심인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바깥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요. 학원 가고, 숙제해야 하니까요. 조금 일찍 태어난 우리 세대는 큰 복 받은 거예요. 어울리는 재미를 알았으니까요. 땀이 흥건해저서 얼음땡을 했으니까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으니까요. 밥때가 되면, 어머니가 등장하죠. 밥 먹어라.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었어요. 더 놀고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가면,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밥이 있었죠. 우리 집은 조금 관대해서 밥 먹고도 나올 수가 있었어요. 미아리엔 관대한 부모 천지였어요. 으슥한 밤엔 귀신이 나온다는 골목을 함께 걸어보고, 보름달을 보면서 제기를 찼어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은 시끄러운 세상이었죠. 


2. 극장 앞 길게 늘어선 줄 


크리스마스나 1월 1일 극장표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어요. 충무로 대한 극장이 최고의 극장이었죠. '백 투 더 퓨처'나 '로보캅'을 보려고 새벽부터 몇백 미터 줄을 서야 했어요. 암표상이 정말 많았죠. 그렇게 줄 서면, 껌 파는 할머니들도 몇 명 다녀가고요. 지금처럼 한 영화를 여러 상영관에서 나눠서 하는 게 아니었죠. '마지막 황제'를 보려면, 꼭 대한극장을 가야 했어요. 화제의 영화를 본다는 건, 그래서 큰 성취였죠. 영화가 잘 되면, 한 도시를 벽보로 떡칠을 했어요. '만원사례'. 객석을 가득 채워줘서 감사합니다. 일종의 감사 인사였죠. 영화 포스터로 벽이며, 전봇대를 도배했죠. 그것들을 소중히 모아뒀어야 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아깝기만 해요. 극장 안에서는 오징어에 쥐포,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파는 사람이 꼭 있었어요. 사람 손으로 그린 대형 걸개그림이 참 근사했는데 말이죠. 


3. 안방 대신 골목에서 자는 사람들 


골목은 빈 공간이 아니었어요. 평상이 있고, 고추며, 시래기를 말리는 소쿠리들이 있었어요. 할아버지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여름이면 아저씨들이 나시를 입고 화투를 쳤죠. 방에서는 도저히 못 자는 더위가 찾아오면, 골목은 침실이 됐어요. 돗자리를 펴고 부채질을 하며 수박을 먹고, 참외를 먹었죠. 모기에 뜯겨도 어쩔 수 없어요. 찜통 방에서 쪄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기본적으로 방에 갇히는 걸 싫어했어요. 지나가는 이웃들과 인사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최대한 개방감을 즐겼죠. 지금은 모두가 숨어 살아요. 안전하고 싶어서요. 오붓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서요. 그래서 골목이 어둡고, 더 쓸쓸해졌어요. 


4. 의외로 향긋한 냄새, 석유곤로 


석유곤로 냄새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몸에 기생충이 많으면 그렇다면서요? 가스레인지 있는 집은 부잣집이었죠. 가스레인지엔 물을 올리고, 라면을 곧장 넣어도 된다면서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첨단 기계가 우리 집에 있을 리가 없죠. 석유 심지에 불을 붙이는 곤로면 충분했어요. 까만 연기가 자욱해지곤 했지만, 곧 안정적인 불길로 돌아오곤 했죠. 어머니 몰래 국자로 뽑기를 하다 보면 새까맣게 타버려요. 아무리 맞아도, 뽑기는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식소다 톡톡 뿌리면, 훅 부풀어 오르는 설탕의 마법을 어떻게 포기하냐고요? 겨울이면 곤로가 방으로 들어와요. 밖은 추우니까요. 어머니가 흑설탕 가득 넣은 호떡을 해주시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죠. 설탕만 들어갔는데도, 보태고 뺄 거 없이 완벽했어요. 밖에선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창호지 문으로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괜찮아요. 곤로 심지가 열심히 타들어가고 있으니까요. 해표 식용유가 지글지글 달아오르고 있으니까요. 


5. 황금 잉어 설탕 과자 


설탕으로 만든 잉어며, 총, 칼, 땅콩강정을 우리가 뽑아야 했어요. 게임 룰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장기판 같은 판때기 위에, 줄자 같은 막대기를 올렸던 것 같아요. 막대에는 잉어, 총 같은 메뉴가 쓰여 있고요. 깡통 안 번호표를 뽑아서, 판때기 위 번호와 일치하는 메뉴가 걸리면 그걸 받아내는 거죠. 누군가가 황금 잉어를 따는 날은 잔칫날이었죠. 성인 팔뚝 크기였으니까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더럽게 맛없는 설탕 덩어리였죠. 맛이 중요한가요? 그런 거대한 잉어를 손에 쥘 수 있는 스릴이 중요한 거죠. 도박과 낚시의 묘미를 일깨워주는, 사행심 조기교육이었죠. 그리고 그 설탕 뽑기요. 국자를 태워 먹곤 했던 거요. 작은 천막 쳐놓고, 뽑기를 팔던 아주머니가 기억나요. 동글 납작하게 만들어서 별표나 눈사람 모양을 찍어 줬죠. 모양대로 완벽하게 오려서 가져다주면, 똑같은 걸 하나 더 먹을 수 있었어요. 어머니가 바늘로 톡톡 찍어서 완벽하게 별만 도려냈을 때 그 짜릿함은 말도 못 했어요. 달고나 먹은 국자에 물 한 번 더 부어서 우려낸 단물이 그렇게 별미였는데 말이죠. 다 어디로 간 건가요? 왜 내 허락도 안 받고 사라진 건가요? 설탕 뽑기는 인사동에서 보기는 했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삶이 길지 않구나. 어느 순간, 뼛속 깊이 각성이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매일 몰입하는 순간을 가져보는 게 좋겠다. 네, 그래서 매일 쓰고 있어요. 저의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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