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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Dec 07. 2020

가난한 80년대, 야매의 추억 - 점돌이에서 해방되다

무허가, 무면허가 판치던 시절이었죠 

사진은 연합뉴스에서 퍼왔습니다 

야매는 일본어 '야미(闇)'에서 왔죠. 闇医者(야미이샤)는 무면허 의사를 가리키는 말이고요. 일본 식민지 시절 쓰였던 단어니까 안 써야죠. '야매' 말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요. 무일푼으로 상경한 외갓집은 삼양동 산 100번지에 방 한 칸을 빌렸어요. 깨진 유리병이 시멘트 담 위에 쪼르르 박혀 있고, 사나운 개들은 언제나 풀어뒀죠. 동네 꼬마들은 또래들을 어딘가로 끌고 가서 돈을 뺏었어요. 무법천지에 깡패 천지의 세계였죠. 무허가 판자촌은, 법조차 성가신 동네였어요.


머리 좀 잘 깎는다 싶으면 집이 야매 미용실이 되고, 야매 이발소가 됐어요. 보따리장수들이 또 그렇게 많았어요. 그 큰 병풍을 들고 팔러 다니는 사람, 밥상을 팔러 다니는 사람, 광주리에 김밥과 떡을 담고 팔러 다니는 사람, 돗자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이 철제문을 두드렸죠. 어머니들이 버선발로 맞이하는 사람은 아모레, 쥬단학 아줌마들이었죠. 동네 아줌마들을 일렬로 눕히고, 반죽을 주무르듯 어머니들 얼굴을 찰지게 비벼댔어요. 화장품 아주머니들이, 야매 피부 관리사이기도 했죠. 어머니가 야매 치과 가는 날, 쫓아간 적이 있어요. 보통의 가정집 구석에서 이를 뽑고, 갈았어요. 의사 가운까지 입어서, 제 눈엔 치과 의사처럼 보였죠. 꽤나 소문난 야매 명의(?)여서 대기자도 많았어요. 야매 치과니까 마취는 당연히 없죠. 어른들도 아파서 울기도 하는구나. 어머니가 입을 벌린 채 엉엉엉 우시는 거예요. 침을 바닥에 흥건히 떨어뜨리면서요. 


-선생님, 이빨 하나만 공짜로 빼주세요.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요? 저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를 빼겠다니요? 반항할 엄두가 안 나더군요. 어린 나이였지만, 공짜를 뿌리치면 나만 손해란 생각도 했어요. 펀치로 삽시간에 이를 뽑더군요. 비명 지를 시간도 안 주고요. 울고불고할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었죠.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셨어요. 야매 의사는 깎아주고, 덤도 주는 허술한 장사꾼이었죠. 


제가 점돌이었어요. 점이 얼굴에 엄청 많았어요. 점 빼기의 달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저를 삼양동으로 데리고 가요. 허름한 판잣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한 남자가 앉아 있더군요. 


-점 하나 빼는데 얼마인가요?

-개당 50원입니다. 

-그럼 다 빼주세요..


어머니는 50원이란 가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셨나 봐요. 남자는 저를 눕혀요. 그리고는 손가락 길이의 향을 얼굴에다가 하나씩 심어요.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남자는 각각의 향에다 불을 붙여요. 불지짐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불지짐이더군요. 향 연기가 자욱해지고,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요. 불꽃이 다가오고 있는 거죠. 다이너마이트 심지가 타는 것처럼요. 


-윽 


엄청난 뜨거움이 진피층을 뚫고 물어 뜯어요. 


-아이가, 아주 잘 참네요. 


그 말을 안 들었다면 비명이라도 질렀죠. 계속해서 잘 참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지글지글 쥐포 냄새가 나기 시작해요. 


-이걸 참네. 보통내기가 아니네요. 


아, 아저씨 칭찬 좀 그만 하세요. 삼양동에서 참을성 1등이 되기 위해 이를 악 물었어요. 대략 스무 개의 향이 시간 차를 두고 타들어갔어요. 차라리 동시에 지져대든가요. 코 위가 끝나면, 볼에서, 볼이 끝나면, 턱에서 새롭게 불지옥이었죠. 스무 개의 불지옥이었어요. 착하게 살아야겠다. 유황불 불지옥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때는 주일학교 열심히 다니던 어린양이었거든요. 은하철도 999 안 보고 교회 가야지. 주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절대로 안 해야지. 참회의 시간이었어요.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세수하면 안 돼. 딱지가 알아서 떨어질 때까지 


흉측해진 채로 일주일간 세수도 못했죠. 개기름, 땟국물이 질질 흐르는 얼굴로 일주일을 참았어요. 흐물흐물 딱지가 떨어져요.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딱지가 너무 일찍 떨어진 건 아닐까? 흉터가 평생 남으면 어쩌지? 결과가 궁금하시죠? 그 많던 점이 깨끗하게 사라졌어요. 뿌리까지 쏙쏙 다 뽑혔어요. 점박이었던 시절이 있기는 했었나 의심스럽기까지 해요. 여러분들도 한 번 지져보고 싶죠? 그게 어떤 향인 줄 알고요? 저 같으면 병원 가서 뽑겠습니다. 우리 어머니 진짜 용감하시죠? 그렇게 소중한 아들을 생체실험할 생각을 다 하셨을까요? 어머니도 같이 누워서 몇 개 빼셨어요. 점 빼서 건물 올렸다는 전설이 미아리까지 전해집니다. 아마 사실일 거예요. 그러고 보니 천 원으로 점돌이 인생에서 해방됐네요. 그런 야매 아저씨가 삼양동에 살았어요. 삼양동의 자랑이었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위로가 되고 싶고, 휴식이 되고 싶습니다. 가볍고, 흐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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