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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서 더 좋아진 점

그래요,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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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시작됐어요. 한국 나이로 마흔아홉 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두려울 때도 있죠. 서글플 때도 있고요. 나쁜 점만 있을까요? 나이를 먹어서 더 좋아지는 건 뭘까요?


1. 가지를 잘 먹게 됐어요


그렇게 싫어하던 가지를 잘 먹게 됐어요.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해 주시는 가지나물은 여전히 입에 안 맞아요. 어머니는 가지가 좀 덜 익어야 맛있으시대요. 그 뽀드득 식감이 전 싫은 거고요. 가지 요리만 한정하면, 중국이나 태국이 제 취향이에요.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입에도 안 대던 음식들을 잘 먹게 됐어요. 카레에서 당근을 건져내던 저는 이제 없어요. 당근에 들어간 베타카로틴이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노화를 막는 걸 알아요. 이젠 몸에 좋으면 다 맛있어요. 까다롭게 굴던 입맛이 둥글둥글해졌어요. 하긴 세계 테마 기행 출연하면서, 왕거미 튀김, 날개미탕, 물뱀 구이를 먹은 저예요. 이제 와서 뭘 가리겠어요?


2. 뭐를 잘 안 잃어버려요, 예를 들면 지갑


20년 가까이 지갑을 안 잃어버렸어요. 그 전엔 뭐든 잘 잃어버렸죠. 딴생각을 해서 그래요. 지금도 딴생각이야 하죠. 그래도 어느 정도 정신줄은 잡고 있나 봐요. 칠칠치 못한 인간이었는데, 나름 차분해졌어요. 그 증거로 자주 안 넘어져요. 왜 더 젊을 때, 더 자주 넘어질까요? 무릎이 깨질까요?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 일들이 많았을까요? 설레는 약속이 더 많았던 걸까요? 정신 좀 차려.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얼빵이었어요. 뭔가에 덜 흥분하고, 덜 몰입하는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상처도, 잃은 것도 적어졌죠. 좋기만 한 걸까요? 약간은 씁쓸한 뒷맛이 남네요.


3. 악몽을 확실히 덜 꿔요


악몽은 불안하니까 꾸는 거 아닐까요? 확실히 악몽을 꾸는 횟수가 줄었어요. 지금 제 모습이 젊을 때 정말 되고 싶지 않은 미래예요. 가난하고, 대책 없는 비정규직 백수요. 글을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요즘엔 책도 못 내고 있으니까요. 이런 내가 안 되기 위해서 불안해하고, 악몽도 꾼 거거든요. 그런데 왜 지금 악몽을 꾸지 않는 걸까요? 제가 텐트에서 자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아침이면 습기로 눅눅해지는 게 싫어요. 요즘 텐트는 다르려나요? 막상 텐트에 들어가면 코를 드르렁대며 잘 자요. 아침에 텐트 지퍼를 열었을 때 상큼한 공기가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어요. 해볼 만한 불편함이에요. 생각만 할 때와, 직접 겪어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예요. 그래서 태평해졌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지옥이 현실에서 지옥까지는 아니더라. 꽤나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4. 욕망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어요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지만 식욕, 성욕, 과시욕이 확실히 묽어졌어요. 그런 욕망이 에너지이기도 해서, 생동감 넘치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는 해요. 이제는 양껏 먹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렇게 먹으면 소화가 일단 안 되니까요. 성욕이 잦아드는 건 진짜 반가워요. 몹시 불편한 욕망이었으니까요. 그런 욕망들은 꼭 필요한 거지만, 조절이 무척이나 어렵죠. 많은 실수나 후회를 동반해요. 이젠 옷도 안 사 입어요. 백화점에서 내 돈 주고 옷을 사 입은 게 언제였더라? 십 년? 십오 년? 가끔 태국 시장에서 5천 원, 만 원짜리 옷은 사요. 감사히 잘 입죠. 젊을 때의 자신감이나 기대감 같은 건 없어요. 거울을 일단 잘 안 봐요. 자세히 볼수록 깜짝 놀라거든요. 언제 이렇게 늙은 거야? 그래서 큰 거울 앞에서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요. 저를 안 보려고요. 다들 저처럼 실체를 확인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조금씩은 있으시죠?


5. 융통성이 생겼어요


예전엔 저와 정치적으로 다른 사람이 무조건 거북했어요. 옳은 건 하나뿐이니까요. 지금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생각은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범죄자나,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더군요. 그들이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암적인 존재인 건 맞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을 알고 싶어져요. 내 안에는 악마성이 없는 걸까? 되돌아보게도 되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판단력이 흐려지죠. 확신은 더 강해지고요. 내가 언제든 고집 불통 대왕 꼰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려고요. 내가 절대로 옳다 보다는 나도 틀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매력 있는 할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그런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6. 원형탈모가 멈췄어요


그러고 보니, 저를 괴롭히던 어마어마한 질병을 감쪽같이 잊고 살았네요. 저의 원형탈모 역사는 아홉 살때부터였어요.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땜빵이 곳곳에 생기더라고요. 병원에서 피까지 뽑아가더니, 별 말을 못 해주더군요. 원인을 모르니 더 환장하죠. 피부과, 한의원에 들인 돈만 몇백만 원은 족히 넘어요. 원형탈모는 어찌 된 게 치료를 받을수록 커지더군요. 제 손바닥 만한 땜빵이 뒤통수에서 세력을 넓혀갔어요. 얼마나 무섭겠어요? 빡빡 밀고, 털모자까지 쓰고 한 여름에도 스님처럼 살았어요. 세상이 비관적으로 보이고, 희망은 안 보이고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남미로 도피 여행을 떠난 거였어요. 그 지긋지긋한 원형탈모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어요. 이런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살았네요. 인간이 이렇게나 배은망덕하다니까요. 나를 들었다 놨다 했던 땜빵이 사라졌는데도, 어떻게 이리 담담할 수가 있냐고요?


7.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그런 두려움은 이십 대에 가장 심했어요. 김광석 노래 '서른 즈음에' 때문이 아닐까 해요. 무기력하고, 낭만 없는 삶이 서른에서부터 시작하는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죠. 그 한창나이예요. 서른 되어서도, 하나도 달라지는 거 없던데요? 그때 한 번 속고 나서, 나이의 신화에서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그렇다고 주름이나 시들어가는 얼굴에서 초연해진 건 아니고요. 나이를 먹는 게, 삶의 핵심을 빼앗기는 과정은 아니라는 거죠. 어느 나이 때나 불만과 만족이 공존하는 거죠. 젊을 때는 젊어서 좋았지만, 젊어서 괴로웠어요. 지금은 젊을 때의 낭만은 사라졌지만, 여유와 관용을 조금씩 더 챙기는 중이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삐그덕 대겠지만, 대신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부질없는 고민을 사서 하지는 않겠죠. 삶의 유통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체감할수록, 우리는 지혜로워질 거예요. 감정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행복에 집중하는 노인이 되고 싶어요. 우리는 조금씩 새로워지는 거예요. 늙는 게 아니라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가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와야 할 글이 나오는 거라 믿어요. 쥐어짤 필요 없어요. 기다리고, 옮기는 인간 타자기일 뿐이죠. 그래서 늘 저를 깨끗하게 닦아 놔야 해요. 의심과 편견 없는 거울 같은 인간이어야 해요. 가벼워져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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