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말 대학생이 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천국'과 '내일은 사랑' 드라마 때문에요. 공부는 안 하고, 잔디밭에서 뒹굴대는 게 꿈이었어요. 게다가 재수를 해서, 더 절실했죠. 봄이면 MT, 여름이면 농활. 대학생들이 정말 얄밉더라고요. 누구는 찜통 교실에서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문제집 푸는데 말이에요. 푸른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서 하늘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대학생이 되어서도, 저는 누구보다 꿈에 충실했어요. 다들 공부라는 걸 하던데, 저는 풀밭에 누워서 뒹굴었어요. 선배들이 기특하다고 막걸리도 주고, 짜장면도 시켜주고 그러더군요. 수업 시간에 노래방에서 노래하면 요즘 시대엔 욕먹겠죠? 5천 원이면 세 시간, 네 시간도 노래할 수 있었어요. 주인아저씨가 제가 노래방을 떠나는 게 그렇게도 싫었나 봐요. 낮시간에 가야 이쁨 받지, 밤에는 어림도 없죠. 밤에는 술 마셔야죠. 밤에 노래방 가는 게 그렇게나 아깝더라고요. 평생 최고의 소원, 대학생이 되어 봤습니다.
2. 에스컬레이터를 실컷 타 봤습니다
어릴 때 에스컬레이터 타려고 백화점 갔어요. 신세계 백화점 본점은 에스컬레이터가 아예 없어요. 에스컬레이터 없는 백화점도 백화점인가요? 그때는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야 하는 형편없는(?) 백화점이었어요. 미도파 백화점이 최고였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가기,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가기. 그 재미난 걸 왜 그렇게 못하게 하던지요. 1년에 한 번 오는 백화점인데, 왜들 그렇게 각박할까요? 홍콩에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예요. 그걸 타 봤으니 그깟 미도파 백화점인 거죠.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는 높이 450미터 캐스케이드라는 조형물이 있어요. 에스칼레이터로 연결되어 있어요. 뛰지도 않고,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어른답고, 우아하게 올라가고 내려왔다죠. 네, 자랑 맞습니다.
3. 형에게 빼앗겼던 달걀 프라이, 이제 마음껏 먹습니다
달걀 프라이뿐이겠어요? 바나나는 가끔 썩어서 버리기까지 해요. 형이 학교에서 상이라도 받아야 먹을 수 있었던 그 귀한 바나나에 이제 아무 감흥이 없어요. 어머니는 어릴 때 왜 저를 때리셨나요? 바나나 한 개 사달라고 했을 뿐이잖아요? 두 개 사달라고 했으면, 다리몽둥이도 부러뜨리셨겠어요? 콧물, 눈물범벅이 되어서 바나나를 수도 없이 돌아봤다죠. 이제 막 시들기 시작한 거무튀튀한 바나나가 제 입으로는 왜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야쿠르트 열 개 사서 한 번에 먹기, 콜라와 환타 섞어서 마시기, 치킨 혼자서 먹기 등의 소원을 모두 이뤘습니다. 요즘엔 설탕 들어간 음식 기겁해요. 독극물처럼 무서워요. 몸 생각해야 하는 나이니까요. 내 돈 주고 콜라나 사이다 사 먹은 건 한 3년 전쯤이 마지막이 아닐까 해요. 우유도 몸에 안 맞아서, 요플레 류도 거의 손절했어요. 여러분! 짜파게티 먹다가 맞아보신 적 있나요? 제가 먹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형이 죽빵을 갈기더군요. 엉엉 울면서도 열심히 씹었어요. 맞았다고 먹는 걸 포기해서는 안 되죠. 열 살 아이가 짜파게티를 어떻게 포기하냐고요?
4. 내가 정말 뉴욕에 갈 수 있을까? 그냥 미국도 아니고 뉴욕을?
미국이란 나라는 저에게는 천국의 다른 이름이었어요. 미국판 전원일기 '초원의 집'에서 서부 개척시대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죠. 미국은 가난해도 스테이크를 썰더군요. 서부 시대 총잡이들이 그 귀한 소시지에 맥주를 다 마시더라니까요. 세상에 태어났으면 미국이란 나라는 한 번 가봐야지. '섹스엔더시티'에 나오는 뉴욕은, 부티와 세련됨의 정점 아니었나요? 센트럴파크에서 조깅하다가, 남의 집 귀한 개에게 굿모닝 정도는 해줘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미국에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물가 제일 비싸다는 두 도시를 콕 집어서 갔다는 거 아닙니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는 전혀 달라서, 마치 다른 나라 같더군요. 여행으로 미국은 참 좋았어요. 사람들도 유쾌하고, 친절하더라고요. 뉴욕 맨해튼 타임 스퀘어에서 서 있을 때 뭉클하더라고요. 스파이더맨이 이때쯤 등장하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바쁜 사람 저 때문에 오라 가라 할 순 없잖아요. 타임스퀘어에 두 발로 서서, 울지도 않고 셀카 찍었습니다. 역시 자랑입니다.
5. 최고의 스테이크를 써는 귀족 되어 보기
런던에서 어학연수할 때, 식당에서 스테이크 써는 사람들을 훔쳐봤어요. 프랑스 마르쎄이유에선 부야베쓰(프랑스식 생선 스튜) 식당 밖에서 또 그러고 있었죠. 그런 식당을 어떻게 들어가요? 주머니에 십만 원은 있어야죠. 그 돈이면 몇 끼를 먹는데요.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인 걸까? 먹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더라고요. 나도 언젠가 저런 곳에서 먹어 보리라. 뉴욕 브루클린 피터 루거에서 스테이크를 썰었습니다. 미슐랭 원스타 맛집이에요. 백 년도 더 된 식당이죠. 고기 맛은 뭐 유명세에 비해선 잘 모르겠더군요. 맛이 중요한가요? 돈 없으면 못 오는 고급 식당에서 당당히 고기를 썰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최고의 아사도(아르헨티나식 스테이크) 집에서 말도 못 하게 맛난 스테이크를 썰었습니다. 그것도 제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독자가 단번에 저를 알아보고 데리고 가준 곳이랍니다. 비교질이 나쁜 건 알지만, 뉴욕의 피터 루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사도 맛집에 밀리더군요. 육식파는 꼭 아르헨티나에 가셔요. 최고의 아사도 집만 다니셔도 매일매일 행복할 거예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시간이 지남을 느끼기가 쉽지 않아요. 글을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해요. 시간을 체감하려면, 시간을 끊어서 쓰라. 이게 저의 시간 체감 비법입니다. 매일 실천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세요. 그러면 365일이 365개가 돼요.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