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청담동 래미안에서 며칠 살아 봤어요. 후배 집이었는데, 같이 술 마시고, 놀다 보니 어영부영 눌러살게 됐어요. 청담 파라곤에서도 며칠 살아 봤네요. 래미안 옆, 청담 자이도 그렇고, 연예인들이 많이 살더라고요. 일단 한강 전망이 끝내주죠. 저만 그런가요? 전망이 끝내주는 건 알겠는데, 오래는 못 가요. 한강이구나. 익숙해지고 나면 아무 감흥이 없더군요. 한강을 잇는 다리들이 빼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요. 한강뷰 하나로 집값 몇 억이 왔다 갔다 하잖아요. 창문 열었을 때 탁 트인 풍경이 좋기야 하죠. 하지만 드라마틱한 풍경도 다 적응돼요. 결국엔 그런가 보다. 시큰둥해지죠.
마감재나 가구들이 최고급인 건 알겠는데, 분에 넘치게 좋다. 실감은 잘 안 나더라고요. 좋은 걸 써보지 못해서, 안목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눈이 높아진 걸까요? 이탈리아 커피 머신 드롱기로 뽑은 커피는 맛있더군요. 아침은 대충 냉장고에 있는 걸 먹거나, 갤러리아 지하 1층 푸드코트 고메이484에서 아점을 먹었어요. 직선거리는 코앞인데, 걷기는 애매해요. 열한 시쯤 가면 크게 안 붐비는데 점심시간엔 자리가 없어요. 쇼핑하러 온 사람, 일부러 멀리서 찾아온 사람, 압구정 현대 아파트, 한양 아파트 사람들이 몰리니까요. 남이 뻔히 먹고 있는데 뒤에서 눈치 주면서 기다려요. 빨리 일어나라 이거죠. 전국에서 소문난 프랜차이즈들만 모아 놓은 식당가라서 맛은 있죠.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부숴 버리겠어. 이런 사람들이 저를 노려 보는데, 밥이 넘어가냐고요?
단지 앞에 의외로 김밥 천국이 있어요. 카페는 없어요(지금은 생겼겠죠). 공복에 아메리카노 한 잔이 삶의 낙이었던 때니까요. 커피 머신을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는 거예요. 마침 후배놈은 자고 있고. 대로변으로 나와서 길 건너 파리 바게트에서 어렵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셔요. 추운 겨울에 가볍게 입고 나와서, 그 길이 너무 길고, 춥게 느껴졌어요. 그러고 보니까 부자 동네에서 며칠 씩은 살아 봤네요. 동부 이촌동에서도,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도, 그리고 뉴욕 맨해튼에서도요. 아, 뉴욕의 고급 주택가 롱아일랜드에서도 살아 봤어요. 다행인 게 부촌에 대한 로망이 없나 봐요. 일단 걷는 재미가 없어요. 운전면허조차 없으니, 드라이브도 못 해요. 길에서 어묵 몇 개를 충동적으로 먹을 수 있기를 하나요? 몸을 지질 만만한 목욕탕이 있기를 하나요(신기하게도 근처에
목욕탕이 없더라고요)? 청담 삼익 시장이 나름 그 동네 재래시장이기는 한데, 제가 생각하는 시장은 아니에요(상가 건물 아닌가요?). SSG 푸드 마켓 청담점이 이 동네 사람들의 마트고, 시장이죠. 세계의 진귀한 식자재들 보는 재미는 있지만 비싸요. 저는 또 대부분 가본 나라의 식재료잖아요. 몇 배나 비싸진 가격에 헛웃음만 나죠.
부자에게 반감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저와 다른 세상에 대한 충분한 호기심이 있어요. 이왕이면 그들이 너무 부러워서, 돈 많이 벌고 싶다. 동기부여도 되면 좋은 거죠. 도산 공원 앞 스시 초희(2인 기준 이십만 원이 훌쩍 넘죠)는 다 먹고 나니 배가 고프더라고요. 맛은 있는데, 양이 적다는 느낌이었어요. 코스 요리 먹고 나니까, 짬뽕 한 그릇 더 먹고 싶어지더군요. 롯데 호텔 일식집 모모야마(강남은 아니지만)는 전망이 진짜 좋았어요. 음식도 맛있었고요. 중식당 몽중헌은 맛있게 먹었어요. 기억에 남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강남에 가면 발레파킹이 기본인 게 재밌어요. 어디를 가든 차키를 달라는 사람이 대기하고 있죠. 보이지도 않는 곳에 차를 숨겨놨다가 가져다줘요. 너무 좋은 차들만 있어서, 소나타나 k5가 되려 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기도 해요. 사람들도 예의 바르고, 평온해 보이고요. 저는 아무래도 바글바글한 재미를 선호하나 봐요. 인천이 좋았고, 군산이 좋았어요. 바다가 예쁜 통영도 좋았고, 구례도 바글바글한 맛은 없지만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서 좋았어요. 아이를 키우는 집은 학교 때문에라도 강남을 선호하는 거겠죠? 평생소원이 강남인 사람도 참 많은 걸로 알아요. 잠깐씩 머물면서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그곳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의 삶이 그렇게까지 환상적인가? 어떤 점이 부러운지 여전히 궁금해요. 가치야 모두 다르죠. 그러니까 제 말도 그냥 흘려들으시면 돼요. 욕망이 너무 한쪽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서, 미약하게나마 시비를 걸고 싶었나 봐요. 그 정도로 구애를 할 만한 가치인가? 잘 모르겠어요. 한강이 가까운 건 좋은데, 요즘엔 근처에 공원 없는 단지는 없더라고요. 휩쓸리지 않는 사람들이 섹시해 보이지 않나요? 저는 그렇더라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잘 살고 싶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습관에 젖지 않고, 습관을 거부하면서, 내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삶을 소망합니다. 쓰고 나니 겁나 어렵게 느껴지네요. 아무튼 잘 살고 싶습니다. 어제의 나보다 더 잘 사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