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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재밌다는데, 왜 난 재미가 없을까?

소수파인 취향이 가끔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만

by 박민우


그러니까요. 왜 '반지의 제왕'을 자막 없이 봤을까요? 워낙 화제작이어서, 놓칠 수가 있어야죠. 런던에 있을 때 극장에서 봤어요. 판타지라서 내용은 쉽겠지. 영어가 짧아도, 그럭저럭 이해가 되겠거니 했어요. 진심 1%도 이해가 안 가더군요. 반지가 되게 중요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반지를 가지고 있어도 활용을 전혀 안 하더군요. 되려 쫓기던데요? 반지만 있으면, 광선 쏘고, 적을 물리치는 만능 치트키인 줄 알았어요. 제가 무식해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거죠. 네,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어서 잤어요. 한글 자막으로 속편을 봤을 때도 쿨쿨 잤어요. 며칠 피로를 극장에서 아주 잘 풀고 왔네요. 웅장하고, 감동적인 전투 장면에서 가장 격정적으로 숙면을 취했어요. 원작을 읽었다면, 영화가 쉽게 다가왔겠죠. 700페이지로 된 책 세 권이던데요? 책도 굉장히 어렵지 않나요? 책이나 영화의 후기를 보면 찬사 일색이라서요. 그 어마어마한 독서력과 이해력에 주눅이 들어요. 비아냥이 아니라요. 어쩜 그렇게들 똑똑하세요? 솔직히 전 '매트릭스'도 왜 그렇게 도망 다니고, 왜 키아누 리브스가 갑자기 그리 대단해지는지 짐작만 할 뿐이에요. 제게는 스타일이 멋있는 영화예요. 조목조목 묻고 싶지만 귀찮기도 하고, 제 무식이 들통나는 것도 싫고 해서 그냥 봐요. 그런 영화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내용이 꼬이기 시작한다 싶으면, 신경회로가 완전히 차단되나 봐요.


스키를 제가 딱 두 번 탔어요. 원래는 한 번 타고, 끝내려고 했어요. 그래도 한 번은 아니지 않나 해서, 큰 마음먹고 한 번 더 친구들 따라서 갔죠.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이 너무 지겨운 거예요. 그 순간을 잘 이겨내야, 고수가 되는 거죠. 그런데 딱 두 번 타고, 가볍게 포기했어요.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더라고요. 속도감의 재미도, 남들보다는 덜 느끼나 봐요. 눈썰매 타면 아, 빠르다. 아, 시원하다. 이러고 말아요. 친구들 스키 타러 나가면, 끝내주는 카레를 끓여놓고 기다렸어요. 설경 보면서 믹스 커피 한 잔 하는 게 그렇게나 행복하더라고요. 스키가 얼마나 재밌으면, 그 덩치 큰 스키를 자동차에 달고 강원도까지 갈까요? 한밤중에도 열심히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어요. 저렇게 재밌는데, 그 재미를 모르고 사는 나는 얼마나 손해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죠.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도 아예 몰라요. 스타크래프트 경기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규칙을 알아야 보죠. 손에 땀을 쥐고, 욕까지 해가면서 보는 사람들을 먼발치서 보죠. 난 저 재밌는 걸 규칙조차 모르고 살다니. 억울해요. 불안해요.


카트 라이더 역시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닌텐도는 몇 번 해봤어요. 친구네 집에서요. 닌텐도 Wii 그거 재밌더라고요. 리모컨 쥐고 테니스도 치고, 탁구도 하고요. 재미는 있는데, 그때뿐이에요. 눈에 밟힐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카지노도 아무 감흥이 없더라고요.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아는 형님이 칩을 한 움큼 줘요. 슬롯머신이라고 하나요? 그것부터 해보래요. 과일이랑, 숫자가 가로, 세로, 대각선 맞아떨어지면 칩이 우수수 나오잖아요. 그걸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안 가는 거예요. 가끔 터지기도 하는데, 그래 봤자 또 다 잃을 거니까요. 제가 수학의 확률을 좋아해서인가 봐요. 어떤 미친놈이 손님에게 유리한 기계를 도박장에 가져다 놓겠어요? 대부분은 잃을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운이 좋다고 해도, 순간일 뿐이죠. 순진한 인간들이 그런 행운이 매일 계속될 줄 알고 전재산을 걸어요. 그 뻔한 속임수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거예요. 복권도 안 사요. 너무 계산적이다 보니, 도박에 흥미를 느낄 수가 없어요.


여행 다니면 마약에 손대는 친구들을 꽤 봐요. 호기심조차 안 일더군요. 대마초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식탐이 엄청나요. 그렇게 배가 고파진다네요. 입에 마구 쑤셔 넣어요. 진짜 미친 사람 같아요. 코카인처럼 강한 마약은 흔하지는 않아요. 저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딱 한 번 봤어요. 이스라엘 친구 둘이 짧은 빨대로 흐읍 빨아들이고는, 빨대가 왜 이리 짧아졌냐며 싸우더군요. 코카인을 하면, 멀쩡한 빨대가 짧아지는가 보구나. 빨대가 짧아지면 화가 나는가 보구나. 제가 모르는 굉장한 쾌락이 숨어 있겠죠. 영원하지 않잖아요. 깨면 공허함은 더욱 크겠죠. 스스로가 조절할 수 없는 쾌락은 결국 고통이죠. 게다가 공짜도 아니죠. 합법은 더더욱 아니고요. 진짜 쾌락 맞나요? 뒤끝까지 좋아야 진짜 쾌락이 아닐까요? 어쩌면 다들 비슷할 거예요. 자신만 특이한 건가? 마이너한 취향이 있을 거예요. 부분적으로 소수파인 사람들이 사실 대다수죠. 모든 분야에서 '다수파'가 차라리 희귀한 거죠. '미스터 트롯'과 '쇼미 더 머니', '싱어게인' 셋 다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셋 중 하나나, 둘을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훨씬 더 많을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는 증발하는 물과 같아요. 고체이면서, 액체고, 기체이기도 해요. 무슨 소리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우리의 존재도 하나의 형태로 굳어진 건 아니라는 거죠. 시간이 걸릴 뿐, 결국 가루가 돼요. 가루가 될 걸 안다면, 지금 이 순간 너무 무거워지지 말아요. 심각해지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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