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을 제일 처음 봤던 건 명절날 큰집에서였어요. 부엌에서 훌쩍훌쩍 울고 계시더라고요. 큰어머니에게 한소리 들었던 거죠. 구박덩어리일 수밖에 없는 게, 친정 식구들 챙기다가 많이 들키셨거든요. 외삼촌, 이모들이 단칸방 신혼집에 눌러살다시피 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삼촌들 학비에 용돈까지 몰래 주다가 들켰으니 할머니, 큰어머니에게 눈엣 가시일 수밖에요.
삼양동에서 떡볶이집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버지랑 대판 싸우고, 짐을 싸시더라고요. 형은 남고, 저만 어머니 손을 잡고 나왔어요. 남겠다는 형이 되려 저는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어머니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어머니는 저의 온세상이고, 우주였죠. 어머니가 버스 장류장에서 한참을 울더니, 제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서른도 안 된 젊은 엄마는 갈 곳이 없었어요. 친정이 잘 살면 며칠 있다가라도 올 텐데, 찢어지게 가난하니 가도 가시방석이었겠죠. 자존심이고, 뭐고 선택지는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이 있는 집뿐이었어요. 그렇게 서럽게 울던 엄마가 이제야 이해가 돼요. 추워 죽겠는데, 왜 저렇게 울고만 계시는 걸까? 철없는 저는 사실 집이 아니어도 괜찮았어요. 엄마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어요. 그때는 그랬네요.
새벽녘이었어요. 어머니 바로 밑 남동생, 외삼촌이 급히 옷을 갈아입고는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요. 미국으로 가는 날이었어요. 폼나게, 정식으로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게 아니라요. 불법 체류를 하러 가는 거였어요. 어릴 때라 그 과정은 정확히 몰라요. 멕시코 어디쯤에서 국경선을 넘었겠죠. 어머니는 그날도 펑펑 우셨어요. 아들처럼 키웠던 내 동생이 먼 나라로 간다는 게 믿기지 않으셨나 봐요. 영영 못 볼까 봐, 억장이 무너지셨나 봐요. 저는 자는 척 실눈을 뜨고, 그 광경을 지켜봤어요. 사우디 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목돈을 벌어 오더니, 더 큰 세상에 욕심이 생겼던 거죠. 삼촌이야 무사히 미국으로 들어가는 게 당장의 큰일이었으니, 눈물 흘릴 여유도 없었겠죠. 신세계 미국이 나를 기다린다. 제가 보기엔 설레는 표정이었어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자리를 잡은 삼촌이 어머니와 이모들을 초대해요. 나름 자리를 잡고, 잘 살게 된 삼촌을 미국에서 만난다니 얼마나 감개무량하겠습니까? 삼촌이 몸이 좀 안 좋았나 봐요. LA에서 사달이 났어요. 갈 때부터 삐걱거렸대요. 삼촌은 차 막히니까, 아예 가고 싶지가 않다. 어머니와 이모들은 우리가 미국에 또 언제 오겠냐? 그러지 말고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오자. 그냥저냥 가기는 했는데, 아픈 삼촌이 웃음이 나오겠어요? 계속 짜증을 냈나 봐요. 삼촌 바로 밑 이모가 입에 거품을 물고, 택시 잡고 사라지더랍니다. 영어도 짧은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이모는 이모대로 내내 불만이 많았대요. 어릴 때나 호랑이 오빠지. 다 늙어서도, 군림하려는 오빠가 내내 못마땅했대요. 미국에서 살면 얼마나 잘 산다고요? 한국에서 자기도 잘 사는데, 미국 사람이라고 유세 떠는 게 거슬렸던 거죠. 삼촌은 LA 한복판에서 노발대발, 어머니는 또 그 자리에서 펑펑 우셨대요. 너희들 너무한다. 서운하다. 그러시면서요.
나중에야 들었어요. 미국 다녀오셔서는 좋았다는 이야기만 하셨거든요. 아버지에게 책 잡히고 싶지 않으셨던 거죠. 너네 집안이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무시당할 걸 아는데, 뭐하러 싸운 이야기를 하겠어요? 미국 여행 후유증이 장난이 아니었나 봐요. 여전히 삼촌과 이모는 말을 섞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까요. 어머니는 늘 우셨어요. 늘 중재자 역할이었죠. 어머니 때문에 사람들이 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엄한 어머니고, 누나고, 언니였지만 늘 양보하는 쪽이었죠. 말년에 복으로 다 받아야 하는데, 그런 해피엔딩은 흔치 않나 봐요. 확실한 건, 어머니의 눈물이 파국을 막았다는 거예요.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었죠. 더 끝장날 수도 있었어요. 진심을 다해 우는 어머니가, 거기까지는 못 가게 막았던 거예요. 먼저 화해해라. 네가 져라. 인간관계, 두부처럼 잘라지지 않는다. 그런 말로 저를 화나게 하는 어머니예요. 무조건 참는 게 왜 미덕이라는 걸까요? 어머니는 나이를 먹을수록 고와지고 계세요. 인상도, 아름다움도 젊을 때보다, 지금이 전성기인가 싶을 정도로요. 늘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 손해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복으로 돌아오나 봐요. 누구보다 건강하고,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세요. 저는 아직 젊어서, 어머니의 지혜를 담을 그릇이 못돼요. 그래도 어머니 아들이니, 조금씩이라도 닮아가지 않겠어요?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셔야 해요. 아버지와 함께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면서, 우주의 질서를 미약하게나마 깨우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리석지만, 꾸준함으로 일구어내는 지혜를 믿습니다. 그 지혜를 향해 거북이처럼 천천히 다가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