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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자영업자의 고통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우리의 안락함은 타인의 고통, 그 빚은 아닐까요?

by 박민우

이번에 제가 비자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죠. 12월 30일 이전에 연장 신청을 해야 했는데, 1월 7일 부랴부랴 이민국으로 달려갔죠. 전날 이민국에 전화를 했더니, 추방당할 거라고 겁을 주는 거예요. 숨이 턱 막히더군요. 기한도 안 주고, 그냥 쫓아내면 짐은 어쩌나요? 한국 가면 격리는 또 어디서 하고요? 내 삶이 종잇장이라, 찢기고, 휘날리는 기분이었어요. 다행히 그 일은 잘 해결됐지만요. 유튜브에서 먹방을 하던 헬스 트레이너가 떠오르더군요. 소주를 마시던 다른 트레이너도 떠올라요. 헬스클럽이 문을 닫으니 운동 영상이고 뭐고, 먹방이라도 해보는 거죠. 조회수가 늘면, 몇 푼이라도 벌 수 있으니까요. 아, 힘들겠구나. 마음은 아픈데, 그냥 아픈 정도였어요. 제가 추방자 신세가 되니까, 그들의 절박함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매달 나가는 천만 원대의 월세, 공과금, 수입은 0원, 부양해야 할 식구들.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어제와 같은 지옥. 목숨이 붙었다고, 다 삶인 건 아니죠. 24시간 내내 괴롭다면, 죽음이 답은 아닐까? 질끈 한 번의 고통 눈 감으면, 이후로는 차라리 자유 아닐까? 그런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저라면 못 견뎠을 거예요. 먹방이라도 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감동적이더군요. 운동하는 사람들이어서일까요? 뭐라도 하는 강인한 모습이, 이미 기적이란 생각을 했어요.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목숨을 끊을 때도,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어요. 먹고살려고 일을 하는 건데, 일은 어쨌거나 삶의 부분집합인데, 부분집합 때문에 전체를 포기하다니. 분하고, 억울한 건 맞서 싸우고, 쟁취해야겠지만, 목숨까지 끊는 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닐까?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서, 저 역시 괴로웠어요.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였어요. 말레이시아의 동굴이었죠.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사판이었어요. 제비집으로 유명한 동굴인데, 바닥은 바퀴벌레 천지였어요. 바퀴벌레가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바퀴벌레와 바퀴벌레의 사체로 이루어진 흙더미가 바닥이었어요. 바닥이 우글대는데, 그게 다 바퀴벌레인 거예요. 바퀴벌레를 어떻게든 피해서 돌이나, 흙을 밟으면서 암흑을 걸어야 했죠. 이미 반은 정신이 나갔어요. 그렇게 크고, 엄청난 양의 바퀴벌레는 처음 봤으니까요.


-민우 씨, 올라갈 수 있겠어요?


3미터 정도 되는 절벽을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해요. 이상하게 올라가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내가 먼저 올라갈게요.


PD가 먼저 올라가요. 카메라 감독이 또 올라가요. 카메라 감독은 장비까지 있어서, 남들 두 배는 더 힘들죠. PD는 고소공포증까지 있어요. 출연자만 올라가라고 하면 미안하니까, 솔선수범 먼저 올라간 거예요. 못 하겠어요. 이 말이 나올 수가 있겠어요? 이젠 내 차례예요. 미끄덩 진흙 절벽, 믿는 건 밧줄뿐이죠. 밧줄을 얼마나 세게 쥐었던지, 나중에 팔에 화상을 입었어요. 몇 년이 지나도 10센티 화상 자국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깟 화상 자국 신경 쓸 틈이 어디 있나요? 무사히 올라온 게 기쁘고, 그렇게 촬영을 마쳐서 다행이었던 하루였죠. 그 현장에서 못 하겠다. 안 하겠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죠. 그러면 촬영은 엎는 거죠. 다른 걸 찍으면 되지만, 분위기가 산산조각이 나버려요. 그러니까 사실 저에게 선택지는 없어요. 시키는 대로 하면서, 무사하기만을 바라야 해요. 비슷한 일은 라오스에서도 있었어요. 짚라인을 타고, 밀림을 휘젓는 것까지는 좋았어요. 쥐새끼들이 출몰하기는 했지만, 나무 위에 지어진 오두막에서 잠도 잘 잤고요.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 암벽 타기였던 거예요. 에이, 분량도 충분히 나왔겠다. 우리는 그냥 편하게 가죠. 제가 졸랐어요. 그 길 뿐이라는 거예요. 짚라인 직원들도 암벽 타고 퇴근한대요. 어마어마한 바위산을 올라타라는 거예요. 허리에 로프 질끈 매고, 군데군데 박힌 쇠 손잡이에 의지해서 기어올랐죠. 동행했던 오스트리아 커플은 배탈에 오한이 겹쳐서, 산송장이 따로 없더군요. 못 하겠다. 나는 못 한다. 그러면 답이 나오나요? 정글에서 평생 살아요? 헬기라도 띄울까요?


방법이 없어요. 퇴로가 없어요. 그 막막함이 사람을 궁지로 모는 거죠. 여러분도 제 처지가 되면 다른 답이 안 떠오르시죠? 그냥 해야죠.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정말정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최후의 방법조차 보이지 않을 거예요. 저처럼 로프를 타고 기어오르는 방법조차 선택지에 없는 거죠. 그런 삶이 코로나 시대, 얼마나 얼마나 많을까요? 힘내라고, 조금만 견디라고 해서 견뎌지고, 해결될 일일까요?


힘드신 분들께 전혀 도움 안 되는 글인 거 알아요. 코로나 시국에 괜찮은 사람도 많으실 거예요. 얼마나 다행인가요? 이 힘든 시기에요. 하지만 주변 분들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괴로울 수도 있어요. 그 괴로움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지점에 있어요. 도움을 드릴 입장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다들 먹고살기 힘드시잖아요. 그래도 그런 아픔이 있다는 걸 안다면, 마음에라도 담고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덜 지옥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네. 우리 집이 얼마가 올랐네. 이런 자랑이라도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매일 읽는 사람도 있겠죠? 주거니, 받거니 글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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