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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an 16. 2021

80년대 점심 시간의 추억, 하이에나들의 전쟁터

배가 고프면, 염치도 없어집니다 

사진은 제주 항공 기내식 옛날 도시락 

중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이 싫기도 하고, 좋기도 했어요. 뭘 먹어도 두 시간만 지나면 배가 꺼지는 때였으니까요. 먹는 시간이 안 즐거울 수야 없죠. 도시락 반찬이 뭐냐가 그렇게나 중요했어요. 도시락 반찬처럼,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없었죠. 가난한 우리 집은 소시지나, 장조림 같은 건 1년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였어요. 두부조림, 감자볶음, 달걀말이, 파래, 콩나물, 김치, 무생채, 가지나물 등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셨어요. 어머니는 반찬 투정하는 꼴을 절대 못 보시는 분이기도 했죠.  제가 반찬 투정을 하면 숟가락을 뺏고 굶기셨어요. 어머니 때는 논두렁에 사는 손가락 만한 참게 장아찌가 반찬의 전부였대요. 너무너무 짜서, 손톱만큼에 밥 한 숟가락은 듬뿍 퍼야 간이 맞았다네요. 저도 아예 철이 없는 놈은 아니니까 두부조림이나, 감자볶음, 달걀말이면 감사합니다 하고 먹었어요. 파래와 콩나물을 한 반찬통에 같이 넣어 주시더라고요. 그게 골고루 섞이니까, 비주얼 대참사가 일어나요. 1년 전 죽은 처녀 귀신이 퉁퉁 불어서, 서해 앞바다에 떠오른 느낌이랄까요? 

 

-나는 민우네 반찬은 손이 안 가더라. 


단짝 친구라는 새끼가, 저에게 비수를 꽂아요. 자기는 잘 산다 이거죠. 그 말에 충격받고 아예 상종을 안 했는데, 그놈은 제가 뭘로 삐졌는지도 모를 거예요. 어머니에게 도시락은 생존형 식량이었고, 저에게는 가난이 들통나는 비참한 증거였죠. 반찬을 빼앗기는 아이들이 저는 그렇게나 부럽더라고요. 우리 때 중학생은 사람 아니고요. 짐승 맞아요. 최소한의 양심도 없어요. 좀 사는 아이가 반찬통을 열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요. 삼십 초 안에 반찬이 다 사라져요. 서로의 손등을 포크로 찍어가면서요. 어떻게든 지키려고 자기 반찬에 침부터 뱉는 애들은 순진한 애들이죠.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비엔나소시지에 침 좀 묻었다고, 그걸 포기할 애들인가요? 좀 더 생각이 많은 아이들은 밥 밑에다가 반찬을 깔아요. 이게 또 숨 가쁜 긴장의 액션 스릴러죠. 깔린 걸 들키면, 피라니아 떼가 환장하고 달려들 거든요. 밥 아래 반찬을 조심스럽게 빼서 씹은 후에, 그 면적만큼 밥을 떼먹어야 해요. 자기 반찬 입에도 못 대본 아이가 서러워서 펑펑 울기도 하고요. 자기 반찬 다 뺏기고도 물 말아서 맨밥을 소중히 씹는 아이도 있었어요(정태민이란 친구였는데, 지금도 존경합니다). 밥만 싸오는 애들도 있었어요. 그런 아이 둘이 남의 반찬을 자기 밥에 담다가, 부딪힌 거예요. 주먹이 오가더라고요. 여기가 무예타이 경기장인가요? 아프리카의 초원인가요? 더 끔찍한 건, 싸움이 아니었어요. 둘의 싸움으로 바닥에 떨어진 반찬을 주워 먹는 아이들이었어요. 바닥에 떨어져도 소시지는, 장조림은 포기가 안 되는 아이들이 하이에나처럼 어슬렁댔죠. 


그래서 수업 시간에 몰래 먹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확실하게 자기 반찬을 챙길 수 있었으니까요. 주번이 되면, 범죄의 유혹에 더 쉽게 무너지죠. 아이들이 체육 시간에 나가면, 모든 반찬통을 뒤져요. 가장 맛있는 반찬을 몇 개씩 뺏어먹는 거죠. 몇 개에서 끝내야 하는데, 선을 넘으면 교실이 발칵 뒤집혀요. 점심시간에, 빈 반찬통을 보는 아이 마음이 어땠겠어요? 점심시간에 뺏어 먹는 것과 주인 없을 때 훔쳐 먹는 건 전혀 다른 문제죠. 애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선생님은 훔쳐 먹은 놈 나올 때까지 전부 두 손 들고 있으라고 벌을 내리죠. 순순히 자기가 했다고 인정하는 놈 한 번을 못 봤네요. 주번 아니면 누구겠어요? 빈 교실에 그놈들 뿐이었는데요. 죽어도 아니다. 억울하다. 끝까지 자기가 아니라고 우기니, 저는 믿었죠. 지금 생각하니 제가 너무 순진했어요. 범죄를 저지른 놈이 세상 억울한 표정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구나. 이제야 그 메소드 연기가 섬뜩해요. 


그때는 도시락 반찬 때문에 학교 가기 싫은 날도 많았어요. 하루는 소시지를 싸주신 적이 있어요. 이런 날도 가끔은 있어야죠. 아이들아, 마음껏 뺏어 먹으렴. 나는 빼앗기는 자가 되는 소원을 드디어 이룹니다. 


-민우야, 이거 뭐야?


어머니가 소시지 비닐도 안 벗기고, 썰어서만 넣어 주신 거예요. 화들짝 놀라서, 열심히 비닐을 벗겼죠. 금방 벗길 테니, 어디 가지 말고 있어. 빨리 벗길게. 기다렸다가 먹고 가. 제가 이렇게나 비굴했다니까요. 처음엔 먹으면 녹는 비닐인 줄 알고, 얼마나 오래 그 비닐을 씹었나 몰라요. 그런데 그렇게 무신경한 어머니 덕에, 지금의 저는 남보다 더 자유로워요. 결혼도 안 하고, 싸돌아 다녀도 너만 좋으면 괜찮다. 저의 자유를 응원해 주세요. 그게 어딘가요? 그깟 장조림 반찬 안 싸주셨어도, 저의 머어니가 최고죠. 겨울이면 난로 옆에서 활활 덥혀지는 양은 도시락 밥이 떠올라요. 참기름을 누군가가 가져와서, 그 뜨거운 밥에 톡톡 뿌리고, 김치를 비볐더니요. 캬아아. 요즘 친구들은 그 맛을 알까 모르겠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잘 써지려면,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어야겠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싶다. 그런 선의지로 꽉 차면, 글이 나와요. 그러니까 더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글이 술술 나오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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