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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대가 가장 불행할까?

젊은 세대일수록 더 불행합니다

by 박민우

저는 70년대 베이비 붐 세대예요. 2000년 대 생으로 태어날래? 1970년대 생으로 태어날래? 고르라고 하면, 70년대를 고를 거예요. 지금의 청춘이 훨씬 더 힘드니까요.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렇게 공정하고, 연민에 가득 찬 사람이 못돼요. 사회생활할 때도, 늘 막내였어요. 딱히 젊은 친구들과 접점이 없어요. 정보로 배우고, 글로 배운 이해가 얼마나 정확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친구들이 과거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불행하다고 확신해요. 그러면 어른 세대는(저를 포함해서요), 어이없어하죠. 그래, 그럼 너희들도 배고파 보고, 군대에서 처맞아도 보고, 애 낳은 다음에 밭일하러도 가 봐. 전쟁이나, 군부독재 시절은 어때? 학비도 못 내서, 집으로 쫓겨나는 설움을 알아? 집주인에게 고개 조아리며, 쫓아만 내지 말아 주세요.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세입자를 요즘 친구들이 보기나 했을까? 온몸에 이가 창궐하고, 방은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서 하루만 살아도, 살려달라고 싹싹 빌 걸?


맞아요. 그건 요즘 친구들만 그런 건 아니죠. 지금 어르신들도, 타임머신 타고 그때로 돌아가면 못 살아요. 보릿고개 겪고, 전쟁의 참상을 겪은 분들은 씩씩하게 잘 적응할 것 같죠? 부모님 태국 모시고 갔을 때도, 엄청 까탈스러우시던데요? 먼지에, 파리에, 깨진 보도블록에, 구정물 개천에 밥맛 떨어진다고 인상 찌푸리시던데요? 사촌 누나 부부가 여행사 통해서 인도를 다녀왔어요. 자유 시간에, 밥 한 끼 먹고 오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 내리더래요.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보낸, 지금의 60대들이 버스 안에서 오들오들 떨더래요. 야성은 상황이 만드는 거예요. 안 그러면 생존할 수 없었으니까, 강해졌던 거죠. 지금 그 야성 다 사라졌어요.


객관적 환경이 좋아질수록 행복하다면, 고조선 시대가 가장 불행하고, 지금이 가장 행복해야죠. 그래서 전제가 틀렸어요. 더 잘 살면 행복하다. 호강에 겨운 불평은 그만. 기성세대의 시각은 완전히 틀렸어요. 그러면서도, 자꾸만 과거를 미화하죠. 옛날이 좋았지. 그때가 좋았어. 자신의 삶은 못 살았던 시대가 전성기였고, 지금의 세대는 더 잘 사는 지금이 전성기여야 한다고 주장해요. 모순이죠.


지금의 세대는 어떻게 보면 눈이 높고, 어떻게 보면 낮아요. 눈이 높은 이유는, 잘 살 때 태어났으니까요. 기본적인 생활환경에 대한 기준이 높아요. 인테리어, 여행, 캠핑, 취미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요. 예술을 보는 능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요. 색, 디자인, 소리에 대한 감각은 좋은 교육과 경험으로 높아질 대로 높아졌어요. 그런데 또 야심가들은 아니에요. 큰 꿈을 꾸지 않아요. 눈이 낮은 이유는, 안정된 정직원을 거의 뽑지 않는 시대 때문이죠. 대기업 입사가 식은 죽 먹기였던,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니까요. 합격할 수 있는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데, 나는 붙을 거야. 긍정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논리적으로, 확률적으로 포기하는 게 이치에 맞죠. 그래서 공무원이 최고인 거고, 안정이 최고인 거고, 야심을 갖는 게 과대망상증으로 보이는 거죠. 자신은 욕심 없다고 생각해요. 최소한만 원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최소한을 얻기가 너무나 어려워요. 타협했는데도, 현실적인 인간으로 알아서 낮아졌는데도, 욕망을 실현시키기가 너무나 어려워요. 그래서 억울해요. 그래서 기성세대가 미워요. 해준 것도 없으면서, 우리보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잔소리만 해요. 운 좋은 건, 당신들이라고. 따지고 싶어요. 그들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친구들의 우울증을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돼요. 쉽게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요. 희망을 보지 못해서, 무기력해지는 걸 어떻게 탓하겠어요? 하지만 포기가 답은 아니죠. 안정적인 직업. 이거 하나만 보면서, 젊은이들도 꼰대의 시선에 머물러 있어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역시, 불안에 떨고 있는 삶임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당장의 삶이 힘드니까, 경제적 수입에만 급급해해요. 그런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도, 사직서를 쉽게 내요. 안정적인 직업이, 안정적인 삶이 아님을 뒤늦게야 깨닫죠. 꼰대들의 압박, 업무의 압박이 이렇게나 지독할 줄 몰랐던 거죠. 인간관계, 눈앞에 닥친 장애물을 넘는 면역성은 전혀 준비를 못했거든요. 직업만 가지면, 경제적 문제만 해결되면, '안정'은 자동으로 따라와 줄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안정은 없어요. 안정이라는 허구의 이데올로기에서 나와야 해요. 원하는 직업을 가져도, 피 말리는 싸움은 그때부터일지 몰라요. 그러니까 원하는 직업, 원하는 일을 못 가졌다는 것만으로 패배감과 우울감에 쩔쩔맨다면, 매우 비논리적인 접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취업을 준비할 때도 불안하고, 치열한 삶이고, 직업을 가져도, 불안하고, 치열한 삶이에요. 조건이 나를 좌지우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어쩌면 불행은 불안하지 않겠다. 그 발버둥에서 나오는 걸 수도 있어요. 불안은 당연한 거예요. 어떤 길을 택하든 후회하고, 실수하고, 때론 행복하고, 결국 죽어요. 모든 과정 중에서, 부정적인 것만 콕 집어서 피하려는 욕심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 걸 수도 있어요. 가장 힘든 세대인 건 맞지만, 그게 사실은 변화의 목소리예요. 여러분들이 새롭게, 새로운 세상을 채우셔야 해요. 불안한 세상이 원하는 것, 불안한 세상이어서 더 필요한 것을 찾아내셔야 해요. 어떤 과정도 궁극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돼요. 대학이, 취업이, 결혼이, 내 집 장만이, 통장 잔고가 한 번 이루면 영원히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고정된 상수라고 생각하면 큰일 나요. 그것들은 모두 과정이에요. 결과는 죽음, 최후의 순간뿐이에요. 그 과정들이 평생 이루어야 할 목표가 되면, 삶이 삐그덕 댈 수밖에 없어요. 반찬 한 두 가지로, 평생 건강을 확신하는 것과 같아요. 있지도 않은 안정의 신화에서 탈출하고, 도전이라는 거대한 자유에 마주해 보세요. 지금의 혼돈이 사실은 기회의 파도임이 보이게 될 거예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한계가 있음을 알면, 자유로워져요. 부족한 걸 알면, 채우는 기쁨이 있어요.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보다는, 완벽과 불완전함의 중간이 가장 좋은 팽팽함임을 알아요. 나를 괴롭히는 옛날의 신화에서 이제는 조금씩 나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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