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없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으시는 분들께
진보인가, 보수인가? 좌파인가, 우파인가? 편의상 나누기는 하는데, 저는 깜짝 놀라요. 한 번도 내가 좌파라거나, 진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저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이 보면, 저는 좌파고, 진보예요. 저도 지지하는 정당이 있고, 입장이 있어요. 반대쪽에게는 답답함을 느끼죠. 저는 제가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대쪽에서 보면 몰상식이 돼요. 요즘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대가리가 깨져도'로 시작하더군요.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대통령만 지지한다는 표현이더라고요. 그들 눈에는 제가 맹목적인 사이비 신도인 거죠.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이유는 소모적이기 때문이에요. 각자가 이미 결론을 냈어요. 그리고 상대방만 변하기를 바라죠. 대화로 설득되는 중도파가 있겠네요. 모두가 볼 수 있는 글에서 중도파는 참전하지 않아요. 확실한 입장이 있는 사람들만 달려들죠. 이게 왜 비극이냐면, 끝나지 않을 싸움인데, 끝내겠다는 의지로 달려들어요. 그러니까 오가는 말은 무시무시한 저주뿐이죠.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죽이고 싶은 악의로 가득해요. 상대방이 전멸하면, 한쪽이 바라는 평화가 올 것처럼요. 그거야말로 큰 착각이죠.
정치적 입장이라는 게, 천사 판독기가 아니에요. 정치적 입장은, 인격의 부분집합일 뿐이에요. 그 사람의 인격을 모두 대변해 주지 않는다고요. 어떤 진영도 별의별 인간이 섞여 있어요. 정치판도 마찬가지죠. 권력을 즐기고 싶은 사람, 선의지를 실천하고 싶은 사람, 진정한 출세는 정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돼요. 목적이 다른데도, 하나의 정당에 이름을 올려요. 무슨 수로 구별하겠어요?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가끔 골프도 치고, 술도 마셔요. 서로 물들어요. 반대편 정당 사람들이랑도 어울려요. 서민들은 너 죽고, 나 죽자 물어뜯는데 '높으신 분'들은 하하호호 깨가 쏟아져요. 알고 보면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이니까요. 당이 달라졌다고, 학창 시절 추억까지 모른 척할 수야 있냐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그들만의 사교를 하죠.
정치적 입장이 형성되는 데는 종교도, 가족도, 고향도, 살아온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치죠. 나이도 무시할 수 없어요. 우리 때는 형, 누나, 동기들이 최루탄 마시면서 독재 정권과 싸웠어요. 운동권 형들이 군에 입대하자마자 사라지고, 고문을 받다가 불구가 돼요. 그런 뉴스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관이 형성돼요.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를 의식한 사람은 없었어요. 서슬 퍼런 공포의 세상만 아니면 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리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만 알았죠. 그걸 누릴 수 있으려면,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되는 정당이 있었죠. 그렇다고요.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르죠. 공포보다는 집값, 성별, 복지가 훨씬 더 중요하죠. 자유에 대한 걱정은 없으니, 먹고사는 걱정을 덜어달라. 아파트 가격 좀 잡아 달라. 일자리 좀 더 달라. 장사 좀 잘 되게 해 달라. 세금 좀 적게 내게 해달라. 이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정치를 원해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요구죠. 과연 그걸 해낼 수 있는 정부가 있을까 싶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유능하니까요. 혹시라도 국민이 요구하는 것들이 대체로 이루어진다면, 저는 무척이나 놀라려고요.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쪽이 백 프로 소멸한다고 싸움이 끝날 것 같나요? 그건 불가능해요. 증거야 차고 넘치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그렇게 대립을 했으면, 각자의 체제 내에서는 평화로웠어야죠. 그 안에서 숙청과 살인은 얼마나 많았나요? 당장은 눈엣 가시인 반대편만 없으면 천국일 것 같죠? 그런 세상은 없어요. 새로운 눈엣 가시가 생겨요. 회사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피눈물 나게 억울한 적 한두 번은 있으셨죠? 그 억울함이 뭉쳐서, 억울하지 않은 사람과 대립하는 게 정치예요. 억울하지 않은 세상이 가능하려면, 이미 천국이어야죠. 모두가 천사가 되어서 날아다녀야죠.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정치를 하는 거다. 대립 속에서 발전적 에너지가 나온다. 이런 원론적인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상대방을 처단하고자 하는 광기가 너무 무시무시해서요. 너희들 때문에 세상이 병들어가고 있다. 제발 죽어줘. 저주를 들이붓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알고 보면 우리의 부모고, 친척이고, 친구, 조카들인데도요. 놀아나지는 않았으면 해요. 너희들만 없으면, 세상은 바른 길로 간다. 함부로 긍정하는 게, 놀아나고 있다는 증거죠. 정치로 일부가 개선되는 건데, 전부를 걸고 있지는 않나요? '옳음'을 외치면서, 지옥을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어리석은 조상들의 소모전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요? 이런 개싸움에서 진화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싸움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가볍고, 웃음 터지는 글만 쓰고 싶어요. 그런데 세상이 또 복잡하니까요. 내 안에 자리 잡은 의심과 의문도 해갈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놀아나지 않는 삶, 주체적인 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중심을 잡고 살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