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올림픽 때 태국 선수들이 뭔가를 먹는 모습을 TV로 보여주더군요. 찹쌀밥을 뜯어서는, 태국 양념장에 콕콕 찍어 먹는 거예요. 경기장 바닥에서,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이요. 태국 음식이 화려하고 맛있지만, 저렇게 먹으니 정말 없어 보이더군요. 젓갈도 듬뿍 들어간 음식들이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코부터 괴로울 거예요.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집밥의 소중함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죽었던 적도 없으면서, 이제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온몸의 세포들이 반응하고, 혈류의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져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이유가, 음식도 큰 이유죠. 익숙한 음식이라 귀한 줄 몰랐지만, 해외에 나오면 하루만 지나도 깨닫게 되죠. 내가 이렇게 한식파였나? 아닌 줄 알았던 사람들도, 여행 다녀오면 한식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지기도 해요. 여러분은 해외에 나가면, 가장 그리운 음식이 뭔가요? 저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떡볶이, 달걀말이가 우선적으로 떠올라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집밥은 뭘까요?
1. 독일인들의 빵사랑
여행 중 만난 독일 친구들은 빵을 그렇게나 그리워하더군요. 빵은 빵 아닌가? 아니래요. 독일빵은 버터가 들어간 간드러진 빵이 아니라, 물, 소금, 이스트만으로만 맛을 내는 게 특징이래요. 묵직하고, 담백한 빵인 거죠. 말만 들어도, 정말 맛없을 것 같지 않나요? 하긴 우리의 밥에서 나는 그윽한 향과 고소함을 서양인들은 또 어찌 알겠어요? 독일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공항에 마중 나온 아버지에게 사 오라고 부탁한대요. 차 안에서 허겁지겁 뜯어먹었답니다. 독일에서 첼로를 공부한 아는 누나도, 독일빵을 그렇게나 그리워하더군요. 특별한 맛보다는 일상의 맛이 오랜 시간 익숙해지면 그리움이 되나 봐요. 저도 프랑스의 바게트는 가끔 생각나요. 겉은 돌처럼 단단한데, 안은 병아리 깃털처럼 부드러운 프랑스의 바게트가요.
2. 스웨덴은 미트볼의 나라
스웨덴 친구에게 물었어요. 스웨덴을 대표하는 음식이 뭐냐고요? 미트볼이래요. 미트볼이 없는 나라도 있나? 우리에겐 완자가 있을 테고요. 만두소도 사실 고기 완자죠. 미트볼이 대표 음식이라니. 스웨덴 미트볼은 출중하게 다르려나요? 지구에 만두가 없는 나라도 있을까요? 이탈리아 라비올리, 인도 사모사, 중앙아시아의 삼사, 스페인, 남미의 엠빠나다가 다 만두거든요. 덴마크 친구도 미트볼이 자기네 나라 대표 음식이라네요. 응? 핀란드 친구도 엄마가 해준 미트볼이 가장 그립단 소리를 듣고 저는 북유럽 환상이 깨져버려요. 먹으려고 여행 다니는 저에게 북유럽은 뭘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미트볼 먹으러 가고 싶지는 않네요. 보통 미트볼은 스웨덴을 종주국으로 보더군요. 그런데 뜬금 스웨덴 정부가 미트볼은 터키에서 왔다고 커밍아웃을 해버려요. 어쨌든 북유럽 친구들은 고향 음식 하면, 미트볼이 우선 떠오르나 보더라고요.
3. 영국은 콩조림이 매우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영국 친구랑 홍대에서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날이었어요. 잠깐만 기다리라더니, 뭘 가지고 와요. 캔이더라고요. 식당 가는데, 왜 캔을 가지고 나오냐고 물었죠. 한국에는 영국식 브런치를 제대로 하는 곳이 없대요. 식당에 가더니, 캔에 있는 음식을 접시에 올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진상도 저런 진상이 다 있을까요? 베이크드 빈이더라고요. 부대찌개 올라가는 콩조림 있잖아요. 토마토소스로 조린 콩이요. 그게 올라가야만, 영국식 브렉 퍼스트가 완성된다는군요. 우리로 치면, 풋고추에 곁들여 나오는 쌈장 같은 걸까요? 너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먹더라고요. 저에겐 참 의미 없는 콩일 뿐인데요. 영국 국민 음식은 피시 앤 칩스죠. 그냥 가자미 튀김에 감자튀김이에요. 튀김옷은 어찌나 두껍고, 성의 없는지 몰라요. 먹다 보면, 튀김 껍질만 따로 너덜너덜. 손꼽히게 맛없는 음식이었어요. 다른 나라 고향 음식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왜 영국 음식 흉을 보냐고요? 9개월 머물면서, 단 한 번도 영국 음식으로 감동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이게 가능하냐고요? 영국에선 가능해요.
4. 자부심이 지나친데 인정할 수밖에 없느 프랑스
프랑스 친구들과 음식 이야기를 나누면 기분이 나빠져요. 자기네 나라 음식 빼고는 다 쓰레기래요. 와인도, 빵도, 요리도 비교할 만한 나라가 없다는 거예요. 이탈리아는 충분히 비벼볼 수 있지 않나요? 아니래요. 무조건 프랑스가 최고래요. 외국에서 유난스럽게, 자기 나라 음식 먹고 싶어하는 나라로는 중국, 프랑스, 인도, 한국을 들 수 있겠네요. 비교적 다른 나라 음식에 유연하지 못해요. 이것도 음식이냐? 확신에 차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죠. 제가 프랑스 북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결국 프랑스의 자부심에 항복하고 말아요. 이비스(Ibis) 호텔은 중저가 호텔이라, 조식을 딱히 기대하지 않았어요. 치즈며, 빵이며, 잼이며, 생오렌지를 눈앞에서 착즙해서 마시는 주스며 그 어떠 오성급 호텔보다 맛나더군요. 다른 나라 음식이 성에 안 찰만도 하겠다. 충격적으로 맛있었어요. 복권 당첨되면, 프랑스 구석구석 미슐렝 식당들만 돌아보려고요. 아, 그런데 전 복권을 안 사는군요.
5. 일본은 고향 음식이 이젠 서양 음식?
일본인 친구가 비쿠리 동키 얘기를 저에게 백 번은 더 했던 것 같아요. 이 세상 맛이 아니라는 거예요. 비쿠리 동키가 뭔가 했더니, 식당 이름이더군요. 비쿠리 - 놀랍다. 동키 - 당나귀. 놀라운 당나귀. 식당 이름이 좀 귀엽죠? 여행 내내 비쿠리 동키 얘기를 했어요. 일본 전통 음식인가 했죠. 함박스테이크 집이더라고요. 오사카 교외에 있는 맛집인데, 거기를 또 가봤지 뭡니까? 맛은 있는데, 울컥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서양 음식이 고향 음식이 돼요. 캠핑 나온 일본인들이 스파게티를 해 먹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요즘 캠핑 음식은, 엄청 다양해졌죠?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고향 음식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아닐 거예요. 양념 치킨과 치즈볼 아닐까요? 맘스터치나 롯데리아려나요? 외국에 가면 떠오르는 게, 한국식 햄버거라면, 그것도 좀 웃기긴 하네요. 먹는 이야기를 했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집 앞 쌀국수나 먹으러 가야겠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거북이처럼 살고 싶어요. 천천히, 성실하게 하지만 목표는 있는 삶을 꿈꿔요. 무엇을 이루어도 좋지만, 이루지 않아도 좋아요. 매일의 과정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