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락을 막는 세상의 필사적인 도움

따뜻한 인연의 힘

by 박민우




20190510_075138.jpg

토요일 오후 네 시. 고기리 별 다섯 카페. 손님으로 가득하다. 고기리엔 카페들이 많다. 별 다섯 커피 공장은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곳이다. 안쪽에 꽁꽁 숨어있다.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니다. 아무리 커피기 맛있어도, 여기까지 오다니. 여기 커피는 진짜 달라. 너무 깨끗한 맛이 나. 한 여자가 가족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돈 받고 연기하는 재연배우 같다. 굳이 커피잔을 들고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별 다섯 커피는 홍보가 딱히 필요 없다. 1년 후면 이쪽 일대가 폭발할 것이다. 꼭 마셔야 하는 사람들로 도로가 막힐 것이다. 민원이 들어오고, 이사를 가야 한다. 별 다섯 커피는 주차공간까지 확보된 더 큰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이사'일 수도 있다. 별 다섯 커피 홈페이지 작업 때문에 디자이너가 방문한 적이 있다. 원두를 가정에 배달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하자, 모험이라고 했다. 시큰둥한 디자이너는 커피를 한 모금 꿀꺽하고는 와, 무슨 맛이 이렇게 깨끗해요? 놀란다. 별 다섯 커피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다. 집에서 생두를 볶아서 먹는 커피 마니아였다. 그런 사람이 호떡처럼 뒤집어진다. 깜짝 놀란다. 커피 맛이 거기서 거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별 다섯 커피의 깨끗한 맛은 없다. 적어도 내 혀의 기록엔 없다.


-작가님을 찾던 손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옆 테이블 어떤 분이 스피커폰으로 대화를 했대요. 스피커폰을 꺼달라고 했는데, 그걸 또 언짢게 들으셨나 봐요. 시비가 붙어서요. 집에 가신 것 같아요.


이런, 이런. 고기리까자 와서 스피커폰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걸 말리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토요일 찬란한 5월, 자기만 불행할 수 없는 자가 상처를 냈다.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난 두 명은 누굴까? 독자겠지. 그들에겐 누더기 같은 토요일이 됐다. 박민우 작가가 있을까? 없어도 한 번 가보기나 하자. 어? 박민우가 토요일이지만 온다는데? 그럼 기다려나 볼까? 그랬던 사람이 고기리를 떠났다. 선량한 토요일 오후가 어떻게든 회복되었기를...


토요일인데 굳이 온 이유는 차승민 때문이다. 승민이는 작곡가 겸 연주자다. 게다가 만화가다. 시를 숭배하고, 시에 자신의 멜로디를 입혀 세상에 내놓는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연주자다. 나는 이 아이를 보면 외계인이 떠오른다. 지구인들은 어쨌든 무대에 오르면, 연주를 끄떡없이 해낸다. 무대공포증이 심하면 연주를 포기하거나,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한다. 그래서 내겐 차승민은 외계인이다. 예전에 세계 테마 기행 라오스 편에 차승민이 출연했는데, 현지인 결혼식 피로연에서 사시나무 떨듯 떠는 것이다. 그러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다. 그저 박수 쳐줄 라오스 시골 사람들 앞에서 혼자 서러워했다. 그런 아이가 대금을 놓지 못한다. 음악을 안고 산다. 음악도 친절하지 않다. 나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할 거야. 고집과 집중이 느껴진다. 그녀가 작곡한 '그믐'이란 곡(https://www.youtube.com/watch?v=k3Xj2jKSkdc&feature=youtu.be&fbclid=IwAR2ufhnBypTnyeu2NbuGv8otIHqU0qP7YDjIhUVjBQsmfIwAsq8afyE280k)을 듣고 놀랐다. 아니, 그렇게 덜덜 떨면서,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고, 어려워. 어려우면서 신비롭고, 비범해. 더 비범해졌어. 그녀는 발전하고 있다.


-별 다섯 커피를 만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장 대표의 말에 승민이가 떠올랐다. 승민이는 우울증을 앓다가 제주도로 피신했다. 서울대학병원에 예약까지 해놓고는, 충동적으로 제주로 갔다. 병원을 가야 하나? 기로에서 제주도로 날아갔다. 큰 도박이었다.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승민이는 가끔 서울에 온다. 오늘이 그날이다. 승민이가 제주도에서 콩가루가 듬뿍 묻은 인절미 머랭을 가져왔다. 임 대표는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왔다. 승민이는 커피를 못 마신다. 아니, 끊었다. 다른 거 달라고 하면 말이 길어질까 봐 커피 마신다고 했다. 한두 모금 빨고 말려고 했다. 자꾸 손이 간다며, 끝까지 마신다. 별 다섯 커피 주식이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사놔야겠어. 나는 이 커피를 조금 더 대단하게 보기로 한다. 장 대표도 공황장애로 고생 중이다. 일부러 양해를 구하고 서로가 공황장애임을 밝힌다. 아픈 사람끼리, 약한 사람끼리 두런두런. 머랭이 바삭한 달고나 같다. 바삭한 달고나와 깨끗한 아메리카노. 다들 일 이야기에 바쁜데, 나는 커피맛, 머랭 맛이다. 별 다섯 커피는 애완견이 와도 되고, 아이들도 환영이며, 외부 음식도 안 말린다. 커피 리필도 무료. 몰랐던 사실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안 된다는 말을 아낀다. 착한 사람들이다. 이곳의 네 명은 착해 빠졌다. 나도 착한 사람이다. 착하니까 어울리는 것이다. 아마 착한 사람의 커피는 착한 만화가의 손을 통해 그려질 것이다. 마침 돈이 떨어진 승민이에겐 내 연락이 놀라웠을 것이다. 내가 돈이 떨어지거나, 아플 때 꼭 어딘가에서 연락이 온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추락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배려 안에서 산다. 모를 뿐이지, 우린 촘촘한 배려의 그물망에서 산다. 고기리 오후 네 시의 네 명은, 훨씬 덜 불안해진 상태로, 서로에게 작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린 누군가의 수호천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간청소를 하다. 숨기고 싶은 투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