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총체적 두려움이다
새벽에는 활짝 열렸던 방문을 닫았다. 베란다로 나있는 미닫이 문을 열어놨더니, 꽤나 쌀쌀했다. 다섯 시 반 눈이 떠진다. 경기도 광주 태전동 15층 아파트의 15층. 열기가 감지된다. 습기를 머금은 열기다. 5월 중순이지만, 대놓고 여름이다. 그나마 말랑말랑한 더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는 6월에 올 것이다. 6월에 오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폐 쪽에 이상이 발견됐다며 병원에 다녀오셨다. 결과는 며칠 후. 어머니는 무좀이 재발되어서 식초에 발을 담그신다. 나의 식도염은 큰 폭으로 오르내린다. 간청소 다음날엔 완치였다. 기적이었다. 퍼즐의 마지막을 드디어 찾아냈구나. 의학잡지에 실릴 만한 쾌거였다. 밤이 되니 몸이 가렵고 다시 명치 쪽이 타들어갔다. 약한 트림이 나올 때 본격적으로 목과 가슴이 활활. 대한민국 사람 절반 정도가 앓는다는 병이다. 믿을 수가 없다. 희귀한 병들의 통증은 그럼 얼마나 지독한 걸까? 아침엔 한결 나아진다. 거의 정상이다. 회복 중인가? 악화 중인가? 집안 내력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건강 유전자다. 외가, 친가 암으로 죽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통증이 오는 순간을 분명히 의식하고, 고삐 단단히 잡는다. 곧, 고통이 미친 말처럼 튕겨져 오른다. 대비를 하니, 또 견딜만하다. 나아지는 건가? 견딜만해지는 건가?
어디에도 나가지 않는다. 어머니의 핸드폰을 새로 주문한다. 35만 원짜리 갤럭시 S8. 공기계로 구입한다. 나의 갤럭시 노트 S9은 2년 약정이다. 잘 따져보면 공짜나 다름없는 폰도 있을 것이다. 귀찮다. 어머니에게는 자유를 드리고 싶다. S10이 그렇게 좋다지만, 어머니는 옛날 사람이니까 S8이면 된다. 아니다. 어머니들 사이에서 신제품은 더 화제고, 자랑이다. 알지만 S8. 이게 나의 최선이다. 요즘 돈을 재벌처럼 쓴다. 보통은 얼마나 쓰고 있는지 확인한다. 안 한다. 그냥 지른다. 결제일 날 당당히 확인하겠다. 감으로는 백만 원 환전할 돈이 아슬아슬 남아있지 싶다.
나방이 컵에 붙어있다. 그렇군. 여기저기 나방이다. 여러 마리다. 그렇군.
나사가 빠진 상태. 모든 게 다 그렇군. 어머니가 파리채로 나방을 잡는 걸 보면서, 나방은 잡아야 하는 흉물임을 안다. 어머니의 퉁퉁 부은 발목을 주물러 드려야 하지만 내방으로 가서 눕는다. 어머니가 핸드폰 메시지를 해석 못 하신다. 나를 찾는다. 어머니, 물을 생각만 하지 마시고, 좀 읽어 보세요. 나는 짜증을 한 번 내고, 확인해 드린다. sk 텔레콤에서 잔여 음성 메시지가 얼마 남았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마트에서 조청 유과를 사 오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 먹으면 또 속이 부대낄 텐데. 하지만 먹는다. 먹고는 아프다. 내 모든 벌은 내가 준다. 죄도 내가, 벌도 내가. 나는 신이다. 조청유과라는 벌은 순간의 쾌락이 어마어마하다. 이제 딱 일주일. 일주일 남았다. 일주일 후에는 인천 공항이다. 그때까지 식도염은 차도가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장기전이 될 거라고 한다. 안 된다. 코카서스 3국에선 먹어야 한다. 지금도 나는 코카서스 3국 맛집만 검색한다. 조지아의 키즈베기 산에서 교회를 찍어야 한다. 요거 하나만 알고 있다. 먹지 않는 여행은 내겐 여행이 아니다. 너무 쌩쌩하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불안하고 아픈 사람들과 한 편이다. 우린 모두가 소중한 글이다. 아프지 않은 자들의 평탄함이 부럽다. 부럽지만 또 글은 아니다. 우리가 글이고, 우리가 감동이다. 우린 너무나 가진 게 없다. 우리가 빛이다. 빛은 순간. 그 순간을 밝히는 엄청난 힘은 고통. 우린 모두 빛을 숨기고서, 빛인 줄 모른다. 모르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