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에 깼다. 낮엔 평화로웠다. 역류성 식도염이 낫고 있다. 고통보다 괴로운 건 '희망 없음'이다. 나아지고 있으니 됐다. 하루아침에 완쾌를 바란 게 아니다. 허, 그런데 점심쯤이 되자 몸은 거의 완벽해진다. 완벽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침침했던 눈이 맑아지고, 꼬르륵 잠자던 위장이 잉어처럼 출렁댄다. 새들이 노래하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흑백의 세상이 천연색이 되고, 푸른 이파리는 무섭게 짙어진다. 됐다. 해냈다. 성취다. 내 몸은 바닥을 찍었다.
-43만 원입니다.
43만 원이라고 해놓고는 40만 원이라니. 왜, 3만 원 덜 결제하셨죠? 물을까? 미쳤어?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치과를 나온다. 별 다섯 커피 장 대표의 주거래 치과다. 온 가족, 직원의 주거래 치과다. 치과에서 우량고객을 위해 알아서 할인해 줬다. 그걸 왜 할인해 주냐고 묻는 바보도 있나? 금으로 씌울 경우 세 가지 가격대가 있는데, 중간 걸로 했다. 상담사가 그걸로 하라고 했다. 아니, 왜 가장 비싼 걸로 추천하지 않는 거요? 이왕 하는 거 최고로 하고픈 맘 모르오?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치과 상담사에겐 남에게 없는 통찰력이 있다. 주차권 필요하세요? 물을 때마다, 아니요.라고 답한 내게 꼭 맞는 견적이다. 게다가 나는 우량고객이 데리고 온, 준 우량고객이다. 진심을 담은 추천이다. 50만 원 정도는 나가겠거니 했다. 10만 원 아꼈다. 일단 본을 떴다. 금요일 번쩍이는 금니가 내 몸에 장착된다.
백만 원 정도를 환전해야 한다. 환율이 엉망이다. 원화 가치가 급락한다. 나라 꼴이 심상치 않다. 앞으로 위기가 있을 거란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쩌면 달러당 1,300원까지 갈지도 모른다. 있는 돈 전부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나? 안 그러겠다. 나만 무사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고통은 어디서 올까? 공포에서 온다. 실체에서 오지 않는다. 길바닥에서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몰라. 망했을 경우 가장 먼저 드는 두려움이다. 그게 두려워서 삶을 포기한다. 한강 다리에서 몸을 던진다. 몸을 던지기 전에 노숙을 해봐야 한다. 종이 박스의 온기와 그때 먹는 농심 사발면 맛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몸을 던져? 노숙 일주일이 먼저. 그러고도 죽고 싶다면, 그러시든가.
밤에 다시 역류성 식도염이 도졌다. 가슴 쪽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중간에 깼다. 새벽 네 시. 반성한다. 저녁에 짬뽕밥을 사 먹고는 크라운 콘칩 한 봉지를 먹었다. 그것도 밤 아홉 시가 넘어서. 아프지 않아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변명을 하자면 몸이 너무 멀쩡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GS25 앞에서 멈췄다. 1,500원 콘칩 한 봉지를 샀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탈탈 입에 털어 넣었다. 봉지는 배낭에 숨겼다. 배도 안 고픈데 단지 침샘이 촉촉하다는 이유로 콘칩 하나를 급하게 입에 쑤셔 넣은 것이다. 마약 중독자와 다를 바 없다. 다행히 아프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사했다면, 더 함부로 굴렸을 것이다. 첫날이라 콘칩이었지, 둘째 날은 맘스터치 치킨 버거에 하니 버터 칩 대자를 샀을 것이다. 통증은 있지만 극심함에서는 어느 정도 내려왔다. 한숨 돌린다. 나의 여행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병원에 꼼짝달싹 못 하는 당신을 위해 내가 떠난다. 외국어는 아예 입이 안 떨어지는 당신을 위해 내가 간다. 출근길 낙이 없는 당신을 위해 내가 간다. 내 여행은 당신의 것이고, 내 기쁨도, 고통도 당신의 것이다. 당신이 혹 감동하고, 웃고, 위로를 받는다면 그건 내 것이다. 그러니 나는 가게 될 걸 안다. 몸도 나을 걸 안다. 더 간절히 바라 주길 바란다. 내가 짐을 싸는 힘이 된다. 내가 콘칩을 자제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