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 십오 분. 몸이 가렵고, 속이 부대꼈다. 불을 켠다. 강도는 낮아졌다. 역류성 식도염은 장기전이다. 천천히라도 완화되면 된다. 나방이 날아다닌다. 손으로 친다. 포로로. 바닥에 떨어진다. 그냥 보고, 그냥 몸을 긁는다.
최석기 PD님, 한철이 형, 이병률 작가님, 류진영 씨, 부랄 친구 영석이, 호근이, 준호. 연락을 해야지. 이번엔 해야지. 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내 머릿속 수많은 사람들. 모두 그리운 사람들. 내 마음에 항상 다녀갔던 사람들, 사람들. 이를테면 사촌 조카, 이종사촌 동생, 93학번 친구들, 독자로 만나 친구가 된 오랜 인연들, 여행 친구들.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연락하지 못했다.
오사카에 다녀와야지. 카즈마 아버지가 특히 눈에 밟힌다. 현관 마트에서 장을 봐온 커다란 비닐봉지를 매달아놓고 가셨던... 한국에서 온 아들의 친구, 진심으로 챙기고, 보살피셨다.카즈마 형이 심장병으로 죽었다. 카즈마의 아버지는, 카즈마의 어머니는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얼마나 늙으셨을까?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카즈마 앞에서 왜 펑펑 울 것 같지? 오사카 방문 역시 또 미뤄졌다.
편집장에게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방콕 맛집 책이 아직도 내 손에 없다. 5일 후에 떠난다. 묻기가 두렵다. 묻다가 나는 화를 낼까?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제발 말해 주길. 설마 책을 못 보고 떠나는 걸까? 후 우우, 하아아. 평생 삶 속에 책 하나가 말도 안 되게 늦어졌다. 그냥 그뿐이다. 책이 나올 거니까. 내 머릿속에만 백 권의 책이 있다. 그건 아예 나올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삶이 내게 주는 흥미로운 퀴즈다. 순간순간 나를 흩트러 놓는다. 함정을 파 놓는다. 그럴 때마다 반응하면 퀴즈의 답은 멀어진다. 나는 책을 못 보고 떠날 확률이 높다. 그래도 된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게 슬픔이 되어선 안 된다. 분노는 타다 만 쓰레기. 쓰레기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
가려움이 잦아들었다. 잠이 올 차례다. 지금 이 모든 걸 포기한다면? 예를 들면 이번 여행? 그냥 방콕으로 날아간다면? 내 행복은 방콕이다. 태국이다. 나는 지금 엉뚱한 곳에 있다. 엉뚱한 곳에서 긁고 있다. 내 영혼은 몹시 핼쑥하다. 짐을 잘 챙겼나? 엄청난 걸 빼먹지는 않았나? 아제르바이잔 바쿠라는 곳으로 입국한다. 혹시 아제르바이잔 출국 항공권을 요구할까? 조지아에서 한국으로 날아오는 항공권도 안 된다고 할까? 발권이 거부될까? 인천공항도 아니고 연결 편을 기다리는 러시아에서? 여행 중 악몽 같은 순간은 늘 있다. 나는 허겁지겁 공항 카운터에서 아무 항공권이나 달라고 할까? 아니면, 아니면
방콕 항공권을 주세요.
방콕으로 날아가서 숨을까? 혹시, 모든 걸 포기할 이유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잠이 온다. 가려움증은 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