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부모님은 잊으셔야 해요
부모님이라고 해도 다 같을까요? 저 역시 저희 부모님과의 여행이 기준일 수밖에 없어요. 여행 경험이 많지 않고, 외국인은 외계인과 다를 바 없는 저희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 글을 써요. 24일간 부모님과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왔었거든요.
1. 방은 꼭, 꼭 따로 잡을 것
이것 역시 개인차가 있겠죠. 어디서나 잘 자는 사람이면, 방 같이 쓰세요. 하지만 층간 소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글이 제일 흔한 나라가 한국이에요. 예민하지 않다는 게, 둔감하다는 건 또 아니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자면서 새벽에도 우리는 화장실을 참 자주 가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돌아가면서 코를 곤다는 것도요. 내가 불을 끄고 잠을 자야, 부모님도 잠이 드세요. 저도 나름 일과가 끝나고 내 시간을 갖고 싶은데, 불을 켜놓고 있을 수도 없어요. 부모님은 자식이 없으면 불안해하실 수 있어요. 그럼 방이 두 개인 곳을 찾으세요. 부모님과 함께 다닐 때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같이 즐기면 더 좋죠.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계속해서 긴장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개인 시간이 있어야 해요. 저녁엔 자신만의 시간을 꼭 가지세요. 다음날을 위한 충전이라고 생각하시고요.
2. 어릴 때 부모님이 더 이상 아니에요
나이를 먹으면, 다시 아이가 돼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를 일방적으로 책임져 주셨던 그때의 부모님 모습은 잊으세요. 아니니까요. 몸이 약해지면, 당연히 겁도 많아져요. 의심도 많아지고요. 낯선 냄새, 의심스러운 음식, 불결해 보이는 위생에 생각보다 더 예민하실 거예요. 자신이 약해졌으니, 더 보호하고픈 심리죠. 우리가 어릴 땐, 부모님이 우리를 보호하셨어요. 늘 강하고, 믿음직하기만 한 부모님인 줄 아셨죠? 바통 터치라고 생각하세요. 이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구나. 여행을 통해서, 꼭 알아야 할 걸 깨우쳤다고 생각하세요. 논리로 해결하려고 하면 여행 망쳐요. 왜 자꾸 아이처럼 구세요. 이런 말로 상처 주지 마세요. 미래의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명심하세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3. 숙소는 이왕이면 화려한 곳을 택하세요
화려한 곳 좋은 거 누가 모르나요? 비싸니까 망설이는 거죠. 제가 그 마음 왜 모르겠어요? 저도 부모님께 이백만 원 정도 챙겨 오라고 부탁드렸어요. 한 달 씩이나 머무니까, 제가 감당이 안 돼서요. 매일 좋은 곳에서만 묵지도 못 했어요. 어엿한 곳에 묵으시면, 너무너무 좋아하세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풍경이니까요. 어린이들에겐 에버랜드가 있듯이, 부모님에겐 5성급 호텔이 그런 곳이에요. 꿈에서도 그려보지 못한 곳에 와 있는 느낌인 거죠. 부모님들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자식이 이런 곳에 데리고 가줬다. 두고두고 흐뭇해하세요. 매일은 아니어도, 그런 곳을 반드시 섞어서 일정을 잡아 주세요. 좋은 숙소면 또 편한 게, 본인이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요. 호텔 자체가 관광이 되니까요. 혼자 한두 시간의 자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죠.
4. 한식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에요
노인분들은 외국 음식에 훨씬 더 취약해요. 한식만 삼시 세끼 드시고 싶어할 수도 있어요. 무게가 덜 나가는 라면, 마른반찬 등을 준비하세요. 밥에 밑반찬만 있어도 잘 드세요. 비싼 외국 음식보다 밥에 깻잎을 훨씬 더 맛나게 드시더라고요. 커피믹스도 아주 유용했어요. 태국 현지 커피믹스도 나중에는 좋아하시더라고요. 쌈장이 아주 효자 반찬이에요. 시장에서 배추, 풋고추, 오이 사다가 쌈장만 올려놔도 훌륭한 한식이 되니까요. 현지 대형 마트 가면 요즘엔 웬만한 한국 음식 다 팔아요. 반찬 떨어졌다 싶으면 마트를 샅샅이 뒤지세요. 한류 덕에 없는 게 없을 정도니까요. 한식 맛집도 형편 닿는 대로 가세요. 같은 한식인데도, 외국에서 드시면 더 행복하신가 봐요. 한식집만 가면 아이처럼 좋아하시더군요.
5. 입이 떡 벌어지는 장소가 꼭 있어야 해요
방콕을 예를 들자면 루프탑이 있어요. 야경을 볼 수 있는 루프탑은 어르신들이 평소에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죠. 강을 타고 야경을 보는 크루즈 여행도 강력 추천해요. 묵지 않더라도, 5성급 호텔 구경 가세요. 오는 손님 절대 안 쫓아내요. 무슨 일로 왔냐고 묻지 않아요. 혹 만에 하나 묻는다면, 식당 왔다고 하세요. 오성급 호텔들이 좀 예쁜가요? 정원과 로비에서 실컷 사진 찍어 드리세요.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행복해하시면 로비나 루프탑에서 커피나 칵테일 한 잔 하시고요. 생각보다 안 비싸요. 가성비만 본다면 호텔 구경처럼 남는 장사가 없어요. 사원이나 박물관은 생각보다는 반응이 별로였어요. 재래시장은 어머니만 좋아하시더군요. 아버지는 좀 피곤해하시대요. 시장에서는 벌레를 제일 좋아하셨어요. 벌레 튀김을 또 그리 맛나게 드시더군요. 향신료에는 질색하고, 태국 메뚜기, 번데기는 맛나게 드시니 이 얼마나 난해한 취향입니까?
6. 어머니, 아버지 실수에 너무 예민해지지 마세요
제가 그랬어요. 창피한 거예요. 아버지가 음식점에서 소리를 내면서 드세요. 태국 사람들은 절대 안 그러거든요. 한국 사람 특유의 리액션 있잖아요. 국물 먹으면서, 어어어 한다든가, 후루룹, 쩝쩝 음식물 먹는 소리요. 한국에선 의식할 필요가 없는데, 외국에 나오니까 안절부절못해지는 거예요. 어머니는 피곤하면 신발부터 벗고 발을 주무르세요. 저는 눈을 부라리면서,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죠. 저의 태도를 반성해요. 물론 외국인들 눈에도 기본적인 에티켓 있으면 좋죠. 부모님이 조금 실수한다고, 세상의 도덕 지수가 급락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나라 사람에게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은 안 해야 하지 않나? 너무 당연한 거 맞아요. 하지만 그걸로 부모님을 공격하면, 부모님에겐 상처가 되더라고요. 이왕에 말할 거면, 조심스럽게 한 번만 지적을 하세요. 안 고쳐지면 어쩔 수 없어요. 가족은 타인에게 흉이 되는 것도 때로는 안아야 해요. 함께 안고 가야 해요. 우리가 어렸을 땐, 부모님이 그러셨으니까요.
7. 감사의 마음을 가져 보세요
쉽지는 않아요. 극강의 스트레스를 동반하니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지니까요. 별의별 일들이 다 있었어요. 남의 집에서 에어비엔비로 묵는데, 냄비를 태워 먹지를 않나. 어머니, 아버지가 안에서 문을 열어 주셔야 하는데 스마트폰 와이파이를 다 닫아 놓지를 않나. 아버지가 스마트폰 시끄럽다고, 와이파이를 다 끊어 놓으신 거예요. 와이파이가 볼륨 조절이라고 착각을 하신 거예요. 그러니 제가 아무리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려고 해도, 받지를 않으시죠. 한참 자고 있을 집주인에게 전화까지 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제 속이 얼마나 시커멓게 타들어갔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래도 두 발로 걸으실 수 있고, 음식물을 씹고 드실 수 있는 건강한 부모님과 이 먼 곳에 왔음을 감사하세요. 죽기 직전에 누구나 한평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면서요? 부모님의 한평생이 조금은 다채로워졌어요. 저의 한평생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함께 했으므로 더 이상 찬란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낸 거예요. 장례식장에서 울고불고하는 것 말고, 그전에 할 수 있는 걸 하세요. 부모님이 여행이 가능하다면 무조건 하세요. 그게 불가능한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는 노래를 잘 못 불러요. 춤도 잘 못 춰요. 그래서 씁니다. 글을 잘 써서라기 보다는, 글을 안 쓰는 건 더 못하기 때문에 씁니다. 쓰면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