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매우 고난도 문제, 친구와의 여행 궁합
친한 친구와 여행 다녀오고 서먹해진 적 있으시죠? 이런 면이 있었나? 적잖이 놀라셨나요? 그럴 수밖에요. 어울려 노는 것과, 같이 방을 쓰면서 일정을 소화하는 건 전혀 다른 거니까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잠버릇, 화장실을 쓰는 태도, 시간을 쓰는 태도, 타인을 대하는 태도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죠. 저렇게 무례했었나? 시간 개념이 이렇게 없는 사람이었나?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던 걸까? 짧은 여행으로, 대하소설을 읽은 기분이 되죠. 피곤하고,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대하소설이요.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사람과, 느긋한 휴식형 인간이 같이 여행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루, 이틀이야 어떻게든 맞춰주죠. 여행 초반 특유의 흥분이 채 가시기 전이니까요. 삼일 째부터 정색하고, 나흘 째부터는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해요. 돌아오는 날엔 말도 안 섞어요. 비행기에서 일부러 떨어져 앉기까지 하죠. 신혼부부도 이혼하네, 마네 하는 게 여행이에요. 함께하는 여행은 차라리 도박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행 전에 서로의 취향을 확실히 알아야 해요.
1. 서로가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리스트를 작성하세요
나는 아무래도 좋아. 이런 사람이 제일 위험해요. 아무래도 좋아가, 진짜 아무래도 좋아가 아니거든요. 자신을 무취향의 소탈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죠. 자신을 모르니까, 쉽게 대답하는 거예요. 양보가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니죠. 쇼핑에 끌려다니다가, 이게 아닌 가 싶을 때 현타가 오죠. 하지만 뱉어 놓은 말이 있으니, 끙끙 앓기만 해요. 그러다가 마침내 폭발하는 거죠. 그러니까 꼭, 꼭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해요. 진짜 없다면, 나는 호텔에서 최소한 세 시간은 쉬어야 한다. 미리 못을 박으세요.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차분하게 떠올려 보세요.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최소한 열 가지는 뽑아 놓으셔야 해요. 그걸 다 하라는 게 아니라, 그중 몇 개라도 해야 해요. 그래야 본전 생각이 안 나요.
2. 먹는 걸로 빈정 상하기 딱 쉬워요
외국 음식을 아예 안 먹는 사람, 아니면 억지로 먹는 사람이 꼭 있어요. 그 사람들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어요? 자신의 입맛이 토종에 가깝다면, 한 끼는 한식을 드세요. 대신 그걸 꼭 조건에 넣으세요.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 상대방도 빈정이 상하지 않아요. 대신 현지식을 먹을 때는, 기분 좋게 먹어 주세요. 네, 연기라도 하세요. 삼시 세 끼 한식만 먹으려고 여행하는 거 아니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향신료는 적응이 안 된다면, 맛집 찾는 거에 좀 더 공을 들이세요. 양식과 현지식을 같이 하는 곳이면 그래도 괜찮죠? 스테이크 같은 건 드실 수 있잖아요. 입이 짧은 게 죄는 아니지만, 특권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식을 먹었으면, 다음엔 네가 먹고 싶은 곳으로 가자. 이렇게 배려를 해주세요. 그래야만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아요. 공동 예산으로 모든 지출을 하기로 했다지만, 가끔은 카드로 쏘실 줄도 알아야죠. 팀워크는 그렇게 살아납니다.
3. 열심히 공부해 온 친구를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셔도 안 돼요
자기가 좋아서 검색해 온 걸 왜 내가 고마워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또 아 다르고 어 다르더라고요. 뒷짐지고 그래, 어디 한 번 안내해 보거라. 이렇게 보일 수 있어요. 막상 가봤더니,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어요. 별로면 별로라고 툭 내뱉게 되죠. 미리 공부해 온 사람의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는 순간이죠. 그럼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하든가!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는 거죠. 내 입으로 별로인데 별로라고 말도 못 해? 이런 자세는 팀워크에 도움이 안 돼요. 불평을 말하는 건, 딱 자기 기분만을 위한 거잖아요. 나는 불평을 못 하면, 없던 암도 재발합니다. 이런 사람은 혼자 다니는 게 좋아요. 즐겁게 종일 불평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으니까요. 자신의 한 마디가, 여행 분위기를 다운시킬 수도 있음을 아셔야 해요. 친구에게 일정을 맡겼다면, 실망도 받아들이세요. 그꼴 보기 싫으면, 자신이 준비한 정보로 앞장서시면 되고요.
4. 너 때문에 난 사고야, 정말 너 때문이잖아
예를 들어서 한 친구가 늦게 일어나요. 그래서 투어 버스를 놓쳐요. 친구가 부득부득 우겨서 간 식당에서 배탈이 나요. 수영 안 하겠다는데, 갑자기 확 밀어요. 물에 빠진 것까지는 좋은데, 팔찌가 벗겨졌어요. 그걸 찾는다고 늦은 밤 수영장을 삼십 분을 뒤져요. 그 친구가 얼마나 미울까요? 어떻게 매 순간 참을 수 있겠어요? 화가 나면 짜증도 내셔야죠. 여행도 사실 삶의 연장선이에요. 우린 모두 실수를 하고, 누군가에게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아예 여행을 안 왔다면, 얼굴 붉힐 일도 없었겠죠. 대신 변변한 추억거리도 없게 되는 거죠. 그런 일들로 배꼽 잡고 웃을 날이 와요. 반드시 와요. 당장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도, 여행이라는 배경화면이 추가가 되면, 추억이 돼요. 백만 원짜리 추억을 만드신 거예요.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하고, 참으라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가 엄청 미울 때, 나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 내 삶의 태도를 배우는, 짧고 굵은 인문학 수업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실수하고, 내가 쥐구멍에 숨고 싶은 순간도 반드시 와요. 여행은 그래요. 그러니까 타인의 실수에 약간만 너그러워지세요.
5. 정말 잘 맞는 여행 친구가 있나요? 평생 친구로 합격입니다
뭐를 해도 죽이 잘 맞는 친구 있죠? 실수를 해도, 다른 사람이 했으면 화가 났을 상황도 웃기기만 한 친구 있죠? 그런 친구를 소중히 생각해 주세요. 절대로 흔치 않아요. 그런 친구들과 집중적으로 여행을 다니세요. 삶의 최고의 전성기는 그때였어. 뒤늦게 깨닫게 될 거예요.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친구, 어느 정도 서로 눈치도 볼 줄 아는 친구, 내가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는 친구. 사실은 서로가 어느 정도는 배려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성숙하고 매력적인 사람끼리 여행을 하면,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나요. 그런 친구들이 평생 친구인 거죠. 늘 고마워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 주세요. 그렇다고 보증은 서주지 마시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매일 글을 쓰지 않았던 날들보다, 매일 글을 쓰는 날들이 더 피곤해요. 그런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자발적이고, 즐거운 압박에는 의미가 있다고 믿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