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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Feb 15. 2021

정 떨어진 나라들, 그런데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친절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란의 정말 예쁜 마을, 마술레 


여행 좀 다니다 보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나라들이 있죠. 저는 필리핀과 이란이요. 필리핀은 치안이 너무 안 좋아요. 거리를 걸을 때마다, 머리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요. 어린아이들이 달려 들어서 돈을 달라고 해요. 그것도 너무 많은 숫자가요. 음식도 주변 나라들에 비해 단조롭고요. 이란에서는 너무 찬밥 신세였어요. 세계에서 최고로 친절하다고 해서, 더 상처 받았어요. 그 친절한 나라에서, 저는 왜 이리 구박 덩어리였을까요? 


마음을 빼앗긴 곳도, 정이 떨어진 곳도 결국 사람이었어요. 사람이 주는 매력이 치명적이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유럽 여행이 밋밋했던 것도, 그냥 찍고만 와서예요. 만약 그곳에서 현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면,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았겠죠. 스페인과 프랑스는 친구들이 살아서, 전혀 다른 느낌의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유럽에선 아주 모범적인 관광객이 돼야 해요. 아, 여기가 박물관이군. 아, 여기가 에펠탑이군. 사진을 찍고, 엽서를 사고, 숙소로 돌아와요. 분명 재밌어요. 하지만 얼얼할 정도의 무언가가 없어요. 사람이 빠졌으니까요. 


아, 저 아르헨티나도 싫어했어요. 인종 차별이 말도 못 하게 심하더라고요. 인종 차별이 아니라, 그냥 불친절한 거겠지. 좋게, 좋게 해석하고 싶어도, 아닌 건 아닌 거예요. 서양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 저에게 그 흔한 불친절도 친절로 변하더군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백인과 백인 아닌 인종의 차별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남미 여행을 끝내고 나서, 저는 친형을 아르헨티나로 가라고 해요. 지금 조카까지 낳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잘 살고 있죠. 몇 번 서럽기는 했지만, 나라 자체가 너무 볼 게 많고, 풍요롭더군요. 이 풍요로움은 경제적 지표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경제적 지표로 보면, 아르헨티나는 막장 국가예요. 2019년 뉴스만 검색해 봐도 아르헨티나 페소는 14% 이상 하락하고, 물가는 50% 폭등, 기준 금리는 무려 66%나 돼요. 나라가 유지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죠. 제가 여행할 때만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대부분이 이탈리아, 스페인계 이주민이라 음식이 아주 맛있었어요. 중남미에서 가장 맛있는 나라를 꼽으라고 하면, 저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를 꼽겠어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고기를 다루는 경건함은 세계 최고예요. 아르헨티나식 바비큐를 아사도라고 해요. 보통 숯에다가 굽는데, 두 시간 이상 구워요. 우리나라 사람은 속 터져서, 그렇게는 못하죠. 숯의 열기로 천천히 구워서 먹어요. 다른 양념은 일체 없이 고기 맛으로 승부하죠. 나중에 소금에 오레가노를 섞어서 양념장으로 먹긴 하지만요. 그 찬란한 육즙은, 다른 나라에선 흉내도 못 내요. 고기 마니아라면, 아르헨티나를 꼭 가보셔야 해요. 예전 잘 살았던 흔적이 음식 문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북쪽 끝으로는 이과수 폭포가 있고, 남쪽 끝은 빙하의 세계예요. 지구의 축소판 같은 나라죠. 여행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있어요. 아르헨티나는 보석 같은 나라죠. 


아르헨티나를 달리 보게 된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 때문이기도 해요. 그렇게 정이 많은 거예요. 십오 년이 흘렀는데, 지금도 안부를 물어요. 스페인에서도 살고, 호주에서도 살아요. 같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다르지? 아르헨티나 정부가 죄인이죠. 먹고 살기 팍팍하니까, 사람들이 웃음을 잃을 수밖에요. 내세울 것도 없는 그들에게 백인 후손이 그나마 남은 자부심인 거죠. 그걸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었던 거예요. 오, 당신 유럽 사람이야? 오, 당신 백인이야? 나도 백인이야. 그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억지라고요? 그런 식으로 인종 차별을 합리화하냐고요? 맞아요. 잘못은 잘못이죠. 아르헨티나에 이민 간 1세대 한국인들 말로는, 옛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그렇게 또 친절했대요. 나라꼴이 말이 아니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지 않았다면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는 거죠. 


이란은 한 번쯤 다시 가보고 싶기는 해요. 왜 저한테 그렇게 야박했나요? 따지고 싶어서요. 농담이고요. 워낙 볼게 많은 나라니까요.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뭐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없지만, 각오하고 가려고요. 다른 나라에서 만난 이란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요. 얼마나 친절한지 몰라요. 꼭 다시 오라고, 우리 집에서 꼭 자고 가야 한다고요. 이란도 아르헨티나와 비슷하죠. 화폐 가치는 휴지 조각이고, 물가는 폭등하는데 어떻게 친절하기만 하겠어요? 그래서 다들 이란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요. 눈칫밥을 먹어도, 이란보다는 나으니까요.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유쾌한 사람들일 거란 생각을 해요. 사실 친절은 굉장한 쾌락이죠. 친절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제 기억 속 불친절들이 그래서 아프게 남는 밤이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동시에 전 세계 누군가와도 연결될 수 있어요. 이 신기한 걸, 안 할 이유가 없죠. 그래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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