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2년 넘게 말입니다
매일 글을 쓰는 저는 누구보다 끈기 있고, 성실한 인간일까요? 졸업식날 중3 담임 선생님이 저만 따로 교무실로 부르셨어요.
-너는 말만 줄이면 서울대 간다.
보셨죠? 선생님이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다니까요. 네, 저는 서울대 근처도 못 갔어요. 아니, 말을 어떻게 줄이냐고요? 그 재미난 쾌락을요. 그 힘든 걸 쉽게 말씀하신 선생님 덕에, 재수까지 했잖아요. 그럼 수다쟁이들은 서울대에 갈 수 없는 걸까요? 말을 줄이라는 게, 집중하라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도 아이들을 가르쳐 봤는데, 진짜 실력은 집중력이더라고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딴 거 해야 해요. 공부로 재미 볼 생각하면 안 되죠. 저의 산만함이 나이 먹으면 조금씩 고쳐질 줄 알았어요. 대학생이 돼도, 공부라는 걸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복학 첫 학기는 다들 눈에 불을 켜고 하잖아요. 한다고 했는데, 마의 4.0(4.5점 만점)을 못 넘더라고요. 아, 나는 안 되는구나. 공부에 미련 버렸죠. 친구놈들도 저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정 떨어지게 돌변하더라고요. 같은 놈이 맞나 싶게, 공부에 매달리더라고요. 지금 다들 잘 먹고 잘 살아요. 우리 과 정원이 70명이었는데, 제 학점이 60등에서 70등 사이였을 거예요. 저보다 낮은 학점이 거의 없더라고요. 서른 살쯤에 깨달아서, 서른 살쯤에 충격 먹었어요. 저는 그 누구보다 성실하지 못해요.
그런데도 어떻게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냐면요. 저는 백수이기 때문이에요. 취업 준비다, 살림이다, 직장생활이다. 남들처럼 바빴다면 저는 쓰지 못했을 거예요. 직장인이면서, 살림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진짜 대단한 거죠. 저는 글이라도 써야, 존재가 증명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써요. 제가 가정이 있기를 하나요? 아이가 있기를 하나요? 글 매일 쓴다고 생색내면 안 되는 사람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꼭 매일 쓰지는 않더라도요.
첫째, 글은 철저히 수단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이게 먼저여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면 글 진도가 나갈 수가 없어요. 콘텐츠가 없다는 얘기니까요. 문장 하나가 별로라고, 글 전체가 다 망가지는 거 아니에요. 진짜 이야기만 담겨 있다면, 사람들은 알아서 감동해요. 굳이 걱정을 할 거면, 어떻게 보일까 보다는, 강렬하게 전달하고픈 이야기가 왜 없을까부터 고민하세요. 강렬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쓰세요. 문장도, 맞춤법도 걱정하지 마시고요.
둘째, 글을 다듬는 기회가 충분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글은 처음 쓰고 끝이 아니에요. 다듬을 기회가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정리되지 않은 초고를 보는 눈도 생겨요. 처음이 막막하지, 다듬을 때는 훨씬 마음이 편해요. 밑도 끝도 없는 '무'의 세상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처음부티 기운 빼지 마시라고요. 어차피 다듬을 건데, 왜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욕심내냐고요? 과욕 때문에 시작도 못하게 되냔 말이죠. 다듬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세요. 처음의 글은 그때, 두 배, 세 배 발전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시작은 훨씬 더 쉽게 하세요.
셋째, 쉽게, 짧게 쓰세요
쉽게 쓴다는 건 짧게, 간결하게 쓰라는 거죠. 그럼 긴 문장은 나쁜 문장인가? 지금 저는 시작이 어려운 분들께 드리는 조언이라서요. 처음부터 복잡한 문장에 매료되면, 글쓰기가 너무 경건해져요. 문장에만 집중하게 돼요. 어떤 내용을 전달할 것인가. 대략적인 스케치를 할 때 방해가 돼요. 짧은 문장 훈련을 먼저 하세요. 짧게 표현한다고, 결코 가벼운 문장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 훈련은 생각을 정리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어요. 자신의 헝클어진 생각을 벽돌 쌓듯이 정리해 보세요.
넷째, 언젠가 쓸 거야로는 안 돼요. 그냥 쓰세요
쓰고 싶은데, 언젠가 꼭 해야지. 미뤄만 두고 계시나요? 그냥 시작하세요. 매일 일에 치여서 시간이 안 나시나요? 그럼 토요일을 시작일로 잡으세요.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쉽게 쓸 거니까요. 대충 쓸 거니까요. 각 잡고, 미루고, 완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어요.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 시작은 필요가 없으니까요. 당장 시작하세요. 이 악물고 시작하지 마시고, 힘 빼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시작하세요.
다섯째,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을 상상하세요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는 상상을 하세요. 이왕이면 강렬하게요. 그러면 본인에게도 기쁨이 돼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 기다림이 된다. 살면서 그런 희열, 흔치 않아요. 그런 희열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글이 숙제가 아니라 누리는 기쁨이 돼요. 고된 글 노동이 아니라, 글로 행복해지는 삶으로 바뀌는 거죠. 관점이 가치를 만들어요. 내 글을 보면서 웃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혹시 더 쓴 건 없나? 내 블로그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우울한 사람이 내 글로 힘을 얻는 상상을 해보세요. 왜 글을 쓰냐고요? 자신을 위해서 쓰는 거예요. 그 기쁨의 에너지가, 글로 전파되는 거예요. 기쁨의 공유, 그 무한한 즐거움을 포기하지 마세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잡념이 사라져요. 저만의 명상법입니다. 생각이 많을수록, 글로 도망가는 시간이 저에게는 필요해요. 공중부양이 꿈인, 야망 있는 사람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