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마주하는 세상은 전혀 다르니까요
여행을 하기 전의 나와 여행 후의 나. 가장 큰 차이는 뉴스를 접하는 태도예요. 뉴스는 효과적으로 인간을 조종해요. 긍정적인 뉴스는 누가 보기나 하나요? 테러, 살인, 사고들이 뉴스를 채우죠. 공포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남미로 갈 때, 목숨 내놓고 가는구나. 두려움뿐이었어요. 첫 도시가 멕시코시티였는데, 십 미터 걷고 가방 안을 확인했다니까요. 보이는 사람이 모두 예비 살인자, 예비 강도로만 보였어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그런 안정감은 한 달 정도 지나야 찾아오더군요. 뉴스에서 보던 살인과 테러는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어요.
저는 뉴스를 믿지 않아요. 아니 뉴스를 부분적으로 믿어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에서, 몇 가지 사고를 소개한다고 그게 진실이 되는 게 아니에요. 부분적으로 일어날 뿐이죠. 그런데 우리는 뉴스를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런 정보로 무장하고 어떤 나라든지 자신 있게 평가해요. 이 나라는 이렇고, 저 나라는 저렇다. 이 종교는 어떻고, 저 종교는 어떻다. 막상 그 나라에 가보면 당혹스러울 거예요. 대표적으로 이슬람교가 있겠네요.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정직하고, 여행자에게 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지금 뭘 봤나? 어디에 온 건가? 뉴스에서 접했던 잔인한 원리 주의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믿음을 지키고 싶어서, 부정적인 것들만 찾아내고 싶어질 거예요.
그렇다고 뉴스에 나온 정보가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분명 사실을 전달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뉴스는 절대로 그 나라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도하지 않아요. 재미없으니까요. 사람들도 찾지를 않으니까요. 무슬림은 여행자들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친다더라. 그게 무슨 뉴스가 되겠어요? 누가 그런 거에 관심이나 갖겠어요? 무조건 위협적인 나라여야, 뉴스도 팔리고,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증오 놀이'도 만끽할 수가 있거든요.
저는 남미에서 결국 강도를 만나요. 그것도 세 번씩이나요. 뉴스에서 말했던 불안한 치안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어요. 모든 뉴스를 부정했더니, 저의 오만함을 꾸짖듯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치안이 불안한 건 맞아요. 빈부의 차도 심하고, 타락한 정부, 부패한 관료들이 남미에는 유독 많아요. 서민들이 참 살기 힘든 나라들이죠. 생존을 위해서 강도짓을 할 수밖에 없어요.
강도까지 만난 마당에, 저는 뉴스에 대한 입장을 정정해야 해요. 부정적인 뉴스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없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요. 맞아요. 정보를 아예 부정하는 것도 어리석죠. 하지만 여전히 저는 정보가 스케치라고 생각해요. 완성된 그림과 스케치가 같나요? 직접 접해보지 않고서는, 진실 근처도 갈 수 없어요. 저는 불안한 남미를 가고 싶지 않았어요. 여행이란 자고로 즐거워야 하는 법이니까요.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위험한 곳을 가냔 말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가기는 했지만, 가서도 한 달 동안은 후회뿐이었죠. 조금씩 스며들고, 즐거움을 발견게 돼요. 남미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어요. 인류에게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날씨와 내일 죽어도 오늘은 놀아야 하는 기괴하다 싶을 낙천성과, 낯설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조건 좋아해 주는 현지인들이 있어요. 내숭 없는 색감으로 건물을 칠하고, 추파춥스 칼라로 지붕을 덧칠해요. 울긋불긋하고, 강렬한 색감이 온 세상을 휘덮고 있어요. 위험하기만 한 세상이 아니라, 위험하고, 따뜻하고, 맛있고, 아름답고, 웅장하며, 신비로운 곳이었어요. 살점이 많은 생선인데, 가시만 이야기하면 그건 생선의 진실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든 뉴스를 생선 가시처럼 대해요. 살점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거죠. 그것도 악의적으로요. 그 생선이 살아 있을 때의 멋진 생동감도 짐작할 수 없죠. 빈약하고, 날카롭고, 화가 난 세상만 보여줘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언어를 이해하게 돼요. 물이 물이고, 하늘이 하늘이다. 그 단순한 걸 깨우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에게 여행은 그런 깨우침이에요. 우리가 감히 어떤 세상을 언어로, 정보로만 해석하고, 나는 그곳을 안다.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모른다. 내가 부족하다. 세상의 정보는 빈약하다. 그걸 가까스로라도 깨우쳤다는 거에 감사해요. 맞아요. 여행도 쾌락이니, 좋아해도 되고, 싫어해도 돼요. 하지만 그곳을 직접 걸어보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과, 앉아서 글로, 정보로 짐작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거의 모른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요.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는 배신감이 들 정도로요.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세상의 뉴스를 곧이곧대로 맹신하게 되지 않게 된 거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렇게 살 줄 몰랐어요. 그런 느낌이 좋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예측할 수 없어서, 신비로운 그런 삶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