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예인, 운동선수들의 학폭 사건으로 뉴스가 도배되고 있어요. 폭력에 대한 저의 반감은 심한 편이에요. 어릴 때 어머니의 오빠, 지금은 돌아가신 외삼촌이 술만 마시면 우리 집에 왔어요. 가구를 부수고, 어머니를 때리고, 돈을 가져갔어요. 누군가가 문만 두드리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죠. 어릴 때부터 어떤 소음이나 소리에 경기를 일으킨 이유가 외삼촌 때문이었어요. 그래도 같이 살지 않아서 망정이죠.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면, 저는 훨씬 더 황폐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예요. 학창 시절의 학폭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죠. 본인들도 한두 번 아이들 때려 봤고, 맞아도 봤으니까요. 어른이 아니니까, 철도 없는 거지. 그렇게 치기 어린 행동으로 봐주려고 해요. 그런데 당하는 입장에선, 매일매일이 지옥이거든요. 한두 번 맞았다면, 대부분 자연 치유가 돼요. 반복적으로 때리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그게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버려요. 어른이 되어도 악몽 속에 남아서 괴롭히죠. 굳이 그런 아픈 과거를 들춰내서라도, 사과를 받고 싶은 이유예요. 여전히 괴로운데, 가해자들이 잘 살고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지. 전혀 상관없는 삼자들까지 상처에 염산을 뿌려대죠. 참으면 피해자만 고통인 건데, 그걸 왜 참아야 하냐고요?
그런데요. 요즘 저는 제가 정의로운 사람일까? 무척이나 의심스러워요.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연예인들이 출연한 드라마가 편성이 연기되고, 출연이 취소돼요. 이전처럼의 삶은 불가능해 보여요. 그게 바로 정의 구현이지. 통쾌하기까지 해요. 이제 가해자들이 발 뻗고 자는 세상은 아니니, 얼마나 좋아진 건가요? 그런데 저의 태도가, 꼭 정의로운 것 같지만은 않아서요. 마치 게임 캐릭터가 장애물을 하나씩 격파하듯, 오냐 잘 걸렸다. 이번에는 너다. 쓰러지고, 난도질당하는 걸 즐기고 있어요. 이중에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은 과연 없을까요? 하지만 이미 늦었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너무 정의로워서, 억울한 사람을 살필 여유가 없어요. 누군가가 자살을 하고, 그제야 억울함이 대서특필되면, 저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반성하겠죠. 아이고, 미안해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돌을 던졌구나. 또 휩쓸렸구나. 그게 다예요. 머리만 긁적이고, 며칠 죄책감에 불편해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요. 어리석은지라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또 신나게 죄를 응징할 거예요. 저는 정의로운 사람이고, 찔릴 거 없는 사람이거든요.
단죄의 세상이 짜릿해요. 알고 보면 친구의 조카고, 먼 친척의 친척들인데도 참 쉽게 돌을 던져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른 채, 남 일이겠거니 신나게 남의 집 아이들을 응징해요. 저는 정의로운 사람이 확실해요. 그런데 좋은 일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아요. 잘난 척 하기는... 나보다 어린 친구가 입바른 소리를 하면, 뭘 안다고 나대? 나이를 들먹이며, 부정부터 하려고 해요. 나도 가만 있는데, 네까짓 놈이 뭐라고. 기부하는 사람을 보면서, 세금 아끼려고 기부하는 거 모를 줄 알고? 선행을 깍아내리기 바빠요. 세상 정의에 선택적으로만 참가해요. 나보다 잘난 사람이 목소리가 크면 영 꼴불견이에요. 그런 주목은 내가 받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나요? 저는 정의로운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분명 찔리는 거 없는데, 내 컴퓨터를 뒤적여서 검색기록을 까발리면 당장 매장당할 것만 같아요. 체면이고, 권위고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요. 그래서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해요. 너는 켕기는 거 있나 봐. 이런 의심 안 받으려면, 누구보다 핏대를 세우며 단죄의 앞줄에 서야 해요. 내가 혹시 단두대에 올라가면 어쩌지? 약해빠진 소리는 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도 목소리를 죽이면 안 돼요. 나는 억울하다. 나는 당당하다. 나는 아니다. 무조건 아니다. 핏대를 세우는 연습을 왜 했겠어요? 언제나 억울한 사람이어야 해요. 연기는 금방 들통나요. 그러니 진심으로 억울해해야 해요. 사이코패스 같다뇨? 저는 전략적인 인간이에요. 살아남기 위해 재빠르게 진화한 신인류라고 해주실래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뭔가? 이런 생각도 좀 해보면 좋지 않을까? 작은 파문을 원해요. 아주 작은 파문이요. 조금은 멈출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도 들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