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그래서 늘 장애물 경주
드디어 나왔다. 3년은 족히 걸렸지 싶다. 그만큼 걸릴 일인가 싶지만, 책에 없는 백 곳의 식당이 쓰이고, 지워졌다. 어쨌든! 책이 내 손에 있고, 고기리 별다섯커피 마지막 날이다. 이제는 정말 짐을 싸야 한다. 여행 중에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별다섯커피 일을 도울 것이다. 아침엔 별다섯 커피를 내려마실 참이다. 별다섯커피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셔츠를 입고... 새 책을 드리러 대표실을 노크했다.
-작가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일단 별다섯커피 매장 일에만 집중하려고요.
아아, 그러셔야죠. 아아, 맞습니다. 장 대표의 말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책 이야기가 주가 될 줄 알았는데, 일 이야기뿐이다.
-그러면 여행 중에 제가 할 일은?
-일단 보류됐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그때 다시 진행해 보죠.
네네, 알겠습니다. 그러셔야죠. 또, 맞장구를 쳤다. 대화는 부드럽게. 대화가 끝나고 내 자리에 돌아오니, 조금씩 뻐근하다.
잘린 것이다.
잘린 건 아니지. 돌아와서 해 보자고 하잖아. 아니다, 잘린 것이다. 일의 진행 상황이 별로였던 것이다. 싹수가 안 보였던 것이다. 코카서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별다섯커피를 홍보한다면? 별다섯커피 잔을 들고 키즈베기 웅장한 산에서 인생 샷을 찍는다면? 굉장한 효과는 장담 못해도, 해볼 만한 홍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조차 다 싫다. 그냥 잘린 것이다. 여행 중 받기로 했던 150만 원이 날아갔다. 나도 나지만 승민이는? 문상건 작가는? 장 대표가 한 번 보고 싶다고 해서 굳이 불렀다. 만화로 전단지를 만들고 싶다 해서 승민이를 이 먼 곳까지 오게 했다. 문상건 작가도 마찬가지다. 승민이의 만화 이미 시안은 거의 완성된 상태다.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첫 달 큰돈을 받았다. 별다섯커피는 400만 원이란 큰돈을, 그것도 선불로 챙겨줬다. 첫 달은 일이 많을 테니, 출퇴근하는 정직원 월급으로 계산해 준 것이다. 감사히 생각한다. 덕분에 금니를 씌울 수 있었고, 드론 카메라도 살 수 있었다. 별다섯커피 입장에서는 내내 돌아가는 일이 한심한데, 나는 영웅이라도 된 줄 알고 입바른 소리를 해댔다. 내 존재는 한 달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상당히 쓸모없어졌다. 신선한 감정이다. 나를 한심해하는 관중 앞에서, 영혼을 담아 춤을 췄다. 마지막 날인데 직원들이랑 회식이라도 하자는 말이 안 나올 때 알았어야지. 미친 듯이 작성한 초대장, 전단지, 매장 내부 글씨 등에 심드렁할 때 눈치챘어야지. 고등학교 때 나 역시 왕따 경험이 있다. 매우 신선한 방식의 왕따였다. 선생님 주도 하에 나를 아이들과 격리시켰다. 내 주변 친구들을 따로 불러서 민우랑 놀지 말라고 했다. 민우는 너네랑 속없이 놀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다. 집에 가면 자기 할 공부 다 한다. 너네도 그래야 한다. 민우랑 어울리면 네 공부 못한다. 선생님의 격리 이유였다. 그걸 친구들 입을 통해 듣고 있자니 묘했다. 그중 두 명은 나보다 공부도 더 잘했다. 내가 그렇게 성실한 아이인지 처음 알았다. 집에 가서 자기 할 공부를 하면 죄가 되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평생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나의 세상이 나를 목구멍에 걸쳐놓고 오바이트를 하려 한다. 정말 역겹고, 성가신 존재가 됐다. 열일곱 살 왕따의 시간이 되살아난다. 강도는 약하고, 느낌은 비슷하다. 젊어진 느낌이다. 그때의 아득한 공포가 다시 왔다. 열일곱의 느낌으로, 아득하다. 근무 시간을 꽉 채워서 여섯 시까지 있어야 하지만 짐을 싼다. 인사를 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장 대표는 밥이라도 하고 가죠라고 한다. 왜 가냐고 안 묻는다. 잘린 것이다. 나는 다시 젊어졌다. 여행이 갑자기 반가웠다. 이 상황이 좋지 않지만, 이 상황이 반갑다. 자, 다시! 여행 경비? 일단 방콕 맛집 책 인세가 나온다. 200만 원 정도. 원래 내 것 같았던 매달 150만 원은 날아갔지만 뭔가 기쁘다. 존재의 비참해짐으로 한 번, 여행 경비의 증발로 한 번. 누가 봐도 위기. 나는 젊어졌고, 이 여행은 새로워졌다. 아프고, 돈이 넘쳐날 땐 코카서스가 지겹더니, 이제 서서히 들뜨기 시작한다. 내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오라 코카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