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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11. 2021

추억 속 내 응원들, 그때는 미쳤고, 지금은 아닙니다

그때의 마음은 그때에만 있는 거였어요

MBC VS 나머지 채널


저는 MBC 채널을 그렇게 좋아했어요. 지금의 MBC 위상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죠. MBC 주말극을 보려고 전 국민이 TV 앞에 몰려들었어요. 국내 최초로 미니 시리즈를 도입한 채널도 MBC였죠. 가끔 KBS 주말 연속극(예를 들면 '젊은이의 양지'나 '첫사랑')이 치고 올라오면 불쾌하기까지 하더라고요. 감히 우리 MBC를, 소중한 MBC를 욕보이다니. 지금도 MBC냐고요? 이젠 TV 자체를 잘 안 봐요. 웬만한 건 넷플릭스로 보니까요. 요즘엔 '빈센조'를 재미나게 보고 있어요. 


농구대잔치는 현대가 최고! 삼성, 기아자동차, 연세대학교가 미워요 


농구는 현대를 좋아했어요. 이충희와 박수교가 있었으니까요. 슛도사 이충희가 삼점슛 쏘는 거 보려고 농구장엘 갔더랬죠. 그러니 기아 자동차랑 삼성이 얼마나 미웠겠어요? 허재가 진짜 마음에 안 들었어요. 허재가 더 뛰어난 플레이어라는 말에 어이가 없더군요. 어딜 감희 이충희와 비교하냐고요? 쏘면 쏘는 대로 들어가는 이충희는 NBA로 직행했었어야죠. 


여자 배구는 당연히 미도파죠. 현대 꺼져 


여자 배구는 미도파와 현대가 라이벌이었어요. 저는 미도파를 좋아했어요. 왜냐면 미도파 백화점을 좋아했거든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박미희가 진짜 멋졌어요. 우리나라에서 184연승 한 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전설의 팀이었죠. 나중에 현대가 치고 올라오는데, 괜히 대기업의 횡포 같아서 그렇게 얄밉더라고요. 남자 농구는 왜 현대 좋아했냐고요? 슛도사 이충희 때문이죠. 남자 농구는 이충희, 여자 배구는 박미희가 국룰 아닌가요? 여자 농구는 박찬숙! 아, 맞다. 박찬숙의 태평양화학도 엄청 좋아했어요. 


가왕 조용필, 내 사춘기의 우상 


중학교 때 잠실 조용필 콘서트까지 갔던 사람입니다. 저 지금도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다 외워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작사가가 아예 제 얘기를 썼더군요.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건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보세요. 완전 제 이야기 맞잖아요. 조용필의 가수왕을 빼앗은 이용이나 전영록도 눈엣 가시였어요. 전영록의 <저녁놀>이란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렸나 몰라요.  


삼양라면 이겨라, 농심라면 져라 


먼저 나온 게 엄연히 삼양라면인데, 농심라면이 더 맛있을 리가 있나요? 짜파게티가 나왔을 때도 짜짜로니 먹었고요. 신라면 나왔을 때도, 저는 이백냥 먹었어요. 남들이 다들 너구리 먹을 때, 저는 사람들 잘 알지도 못하는 포장마차 사다 먹었죠. 그러면 뭐해요? 기세 등등 신라면 세상이 되더군요. 저의 애정은 거기까지인가 봐요. 도저히 삼양라면 맛없어서 못 먹겠더라고요. 애정 접었더니 불닭볶음면으로 기사회생하더군요. 아무래도 제 애정이 삼양라면의 앞길을 막았나 봐요. 


창경원 VS 어린이 대공원, 당연히 어린이 대공원 


어린이 대공원은 지금의 롯데월드이자 에버랜드였죠. 그러고 보니 에버랜드가 원래는 자연농원이었네요. 그때 창경궁은 놀이 공원이었어요. 일본 식민지 시절 감히 한 나라의 왕궁을 놀이 공원으로 만들었죠. 가깝다는 이유로 창경원을 자주 갔지만, 우리에게 로망은 어린이 대공원이었죠. 거대한 태권브이도 있죠. 무지개 극장도 있죠. 어린이 회관 수영장도 있죠. 없는 게 없었으니까요. 천체 교육관에서는 까만 밤에 별자리까지 보여줬어요.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 꿈의 세상이 그곳에 있었죠. 


삼성 VS 금성, 당연히 금성이죠 


삼성은 이름부터 바꿔야죠. 금성, 골드스타. 무려 황금이 들어가는 이름이에요. 그런데 삼성은 장난하나요? 삼, 그러니까 숫자 3인 거죠? 세 개의 별. 별 수백 개를 모아 보세요. 금이 되나. 그런데 고작 세 개의 별로, 천하의 금성과 맞짱을 떠요? 이런 기업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요? 금성 보세요. 이름부터 돈이 팍팍 들어오게 생겼잖아요. 금성 빨래판 세탁기, 싱싱 냉장고, 충전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미니 카세트 아하. 이런 혁신적인 기업을 누가 이기겠어요? 삼성 신바람 세탁기는 대우 공기방울 세탁기부터 이기고 오라고 하세요. 


씨름은 이만기, 시계는 돌핀, 운동화는 프로 스펙스, 양말은 아놀드 파마, 로션은 니베아, 샴푸는 나너 샴푸, 치약은 럭키 페리오, 스킨은 쾌남 루트, 향수는 버버리 위크엔드, 고약은 이명래 고약, 근육통은 안티푸라민, 소화제는 정로환, 내복은 쌍방울, 신발은 영에이지, 청바지는 겟유즈드, 셔츠는 폴로 랠프로렌, 우산은 피에르 가르뎅을 썼네요. 그때는 적지 않은 의미였어요. 지금은 내 삶과 무관해요. 지금 제가 미쳐있는 것들도, 그렇게 소멸할 테죠. 좋아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좋아하려고요. 지금의 '좋음'도 결코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시간은 정말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우리가 자각하는 능력이 딱 거기까지인 건 아니고?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요. 나의 과거가 제 머리끄덩이를 잡을 때요. 뭔 소리인가 싶죠? 저도 뭔 소리를 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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