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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14. 2021

지금은 사라진 옛날, 일요일 풍경

그때의 일요일은 언제나 봄이었어요

80년대 교실 풍경 - 출처 클리앙 

추억이라는 게 기억의 조작이죠. 80년대 일요일은 저에겐 늘 봄이에요. 겨울의 일요일도, 가을의 일요일도 기억에 없어요. 일요일마다 백 원씩 용돈을 받았어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았는데요. 떡볶이를 개수로 팔았죠. 스무 개를 먹고, 오십 원을 남길 수 있었어요. 열일곱 장이 들어간 동그란 딱지도 10원이면 살 수 있었고요. 공기나 제기도 얼마든지 살 수 있었죠. 마시면 혓바닥이 형광 주황색으로 반짝이는 오렌지 주스도 십 원이었어요. 무려 자판기에서 나오는, 오렌지만 가짜인 제대로 된 주스였죠. 그 가루 주스를 마실 때면, 미국 단독 주택에 사는 빵꾸 안 난 양말만 신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죠. 


늘 이사를 가고, 이사를 왔죠. 길바닥에 책 뭉치들이 노끈에 질끈 묶여서는 작은 탑처럼 쌓여 있어요. 어른들 몰래 '선데이 서울'도 보고, '주간 경향'도 보고 했어요. 용달차에 짐을 싣는 집은 좀 사는 집이고, 리어카에 가득 쌓아서는 온 가족이 영차영차 짐을 옮겼더랬죠. 일요일은 닭볶음탕을 먹는 날이기도 했어요. 그때 우리 집형편이 나쁘지 않아서, 주말엔 주말 분위기를 내야 했죠. 아버지가 사 오시거나, 어머니가 토요일 숭인시장에서 사 오시거나 했어요. 그때 시장통 닭은 모두 살아 있었어요. 어머니가 살이 꽉 찬 닭을 신중하게 고르시면, 닭집 주인은 닭의 발톱을 칼로 사정없이 내려 찍었죠. 그리고는 동그란 구멍이 숭숭 뚫린 원통에 넣으면 푸드덕푸드덕, 털 없는 닭고기가 나와요. 생명과 고기 사이에 굉장히 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믿어야,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일요일 아침 '초원의 집'을 보면서 온 가족이 꽃무늬 스테인리스 밥상에서 닭고기를 뜯었어요.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 시골의 삶과 미아리 우유 배달집 사이엔 아무런 연관성도 없었지만, 시청률 1위 드라마니까 숨죽이며 보고, 감동받고 했어요. 어머니가 살이 없는 목을 쪽쪽 빠시면, 어린 저는 뼈 안에도 숨은 고기가 있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일요일 아침은 믿음을 시험받는 날이기도 했죠. MBC에서 <들장미 소녀 캔디> <은하철도 999> <천년 여왕>을 해주는데, 예배를 드리러 가야 했어요. 교회에 가면 폴라포도 주고, 사과도 주기는 했으니 아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주님 말씀에 집중이 돼야 말이죠. 재방송이 있기를 하나요? 비디오가 있기를 하나요? 한 번 놓치면, 영영 볼 수 없는 만화 영화 생각에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어린이 버라이어티 쇼 '야! 일요일이다'나 'KBS 모이자 노래하자' 같은 걸 보면 화딱지가 났어요. 우리를 진짜 애로 보는 거야? 동요에 영혼 없이 율동이나 하는 유치한 프로그램을 혐오했어요. 그런 형식적인 거 다 때려치우고, 종일 만화 영화만 보여 줬으면. 그게 일요일 저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죠.  


차가 귀한 때니까, 가족 나들이는 무조건 버스였죠. 버스 안에서 누구는 서서, 누구는 앉아서 우이동을 가요. 고기를 사죠. 주로 삼겹살이었는데, 지금처럼 맛있어서가 아니라 싸서 샀어요. 비계는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괴로운 부분이었죠. 보통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줘요. 파란색 도장 자국까지 있는, 조금은 섬뜩한 고기를 우이동 계곡에서 구워 먹곤 했죠. 집에서는 도통 말이 없으신 아버지는 밖에만 나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어요.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이에는 김을 붙이고 구성지게 트로트를 불러 재끼셨죠.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를 좋아했어요. 키가 유난히도 작은 아버지가 참 크고, 자랑스러워 보이는 날이기도 했어요. 


어디를 가나 아이들 천지였어요. 일요일은 특별한 날이니 일부러 멀리 가기도 했죠. 너무 심심하면 호랑이 할머니 집으로 당당히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어요. 꼬부랑 할머니가 막대기를 들고 우리를 쫓으시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어요. 참 오래오래 쫓아오셨어요. 철없는 아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남은 기운을 모두 달리는데 쓰셨죠. 약하디 약한 할머니였는데, 우린 왜 호랑이 할머니라고 했을까요? 초인종을 누르고, 소리도 지르면서 도망가는 건 우리 딴엔 큰 모험이고, 도전이었죠. 철없는 아이들의 몹쓸 짓들이 할머니에겐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제야 느끼는 죄책감은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밤의 미아리엔 달이 유난히 커서, 토끼가 아니라 킹콩이 한 마리 달 속에서 움직이곤 했어요. 아무도 달에 생명체가 산다는 걸 의심하지 않았죠. 달이 이렇게나 밝으니,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요. 다방구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까 조마조마해했죠. 어머니가 등장하면 한 명씩, 한 명씩 끌려가야 했어요. 한 것도 없는데, 논 것도 없는데 일요일은 그렇게 빨려 들어가 버렸죠. 샤워는 무슨. 얼굴과 발만 깨끗이 씻고, 단칸방 가장 안쪽에서 MBC 뉴스 데스크를 몰래몰래 들어가며 잠이 들어요. 오줌만은 지리지 말게 해 주세요. 그때만은 주님의 어린양이 되어서, 빌고 또 빌었던 밤이었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쓰지 않는 삶보다 좀 더 바쁘지만, 지금이 더 좋네요. 무탈하고, 할 게 없는 시간을 꿈꾸지 않아요. 바쁘고, 쉬고, 바쁘고, 쉬고. 단짠단짠의 시간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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