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있을까? 그런 막연한 감정이,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면서 진짜 여행이 되죠. 여행지 정보를 검색하고, 숙소를 예약하면서 마음은 그곳에 가게 돼요. 성격 급한 사람은 유튜브나 구글어스로 그 지역을 미리 탐색하죠. 이런 분위기구나. 이런 사람들이 사는구나. 곧 있으면 내가 그곳에서, 그들 사이로 걷게 되겠지. 그런 상상이 실제 여행보다 더 즐겁지 않나요? 우리는 대부분의 꿈을 이루지 못해요. 상상은 상상에서 그치죠. 여행은 그래서 신비로워요. 우리가 상상한 곳이 그곳에 분명히 있거든요. 예상은 번번이 틀리기는 하지만, 상상보다 더 멋진 곳을 끝내는 보여주죠. 그런 쾌락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요?
2.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피곤한데 설렘
공항버스도 빈자리 없이 꽉꽉 차는 날이 많더라고요. 혹시 자리가 없을까 봐, 조금은 초조해져요.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도요. 무사히 공항버스를 타면, 일단 한시름을 놔요. 풍경이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하지만 버스 창으로 시선을 돌리면 괜히 웃음이 나죠. 진짜 시작이다. 곧 다가올 여행에 심장 박동이 빨라져요. 공항 리무진은 여행 가는 사람만 타는 게 아니죠. 승무원, 공항 직원, 외국인 노동자,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사람들이 섞여 있어요. 일상의 무거운 공기와, 떠남의 설렘이 뚜렷하게 나뉘는 기묘한 공간이 되죠. 긴장을 좀 풀어도 되겠지. 그것도 차가 안 막힐 때 얘기죠. 차라도 막혀 봐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요. 차가 막혀서 비행기를 못 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늘 똥줄이 타요. 불안이 습관인가 봐요. 그만큼 내 여행이 소중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3. 정신없음, 긴장감과 짜증 - 인천 공항
공항은 이상한 힘이 있나 봐요. 좋다는 느낌보다는,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에요. 우선 발권을 해야죠. 내 항공사는 알파벳 어디더라. 아시아나나 대한항공을 타고 갈 때가 저에겐 좀 예외적일 때예요. 시베리아 항공, 에어 아시아, 비엣젯 항공, 동방 항공 등등을 열심히 바꿔가며 탔어요. 마일리지도 쌓을 겸, 아시아나나 대한항공만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게 차라리 나아요. 돈 몇 푼 아끼는 것만 생각하지, 짐 부칠 때 돈 내라. 기내식 없다. 손님들 돈 빼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게 저가항공들 아닌가요? 눈 앞의 몇 푼 싼 것만 생각하다 보니, 마일리지는 쌓일 일이 없죠. 없이 살면, 멀리 보지 못한다니까요. 부치는 짐(수하물)에서 가위가 나왔다. 뚫어뻥 총(홈쇼핑에서 산 건데, 막힌 싱크대가 뚫린다고 해서 사봤어요)이 나왔다. 죄인처럼 불려 가서는, 포기하겠다. 그 아까운 걸 버리고, 비행기에 타요. 짐 검사까지 끝내면 진이 다 빠져요. 그래도 이제 비행기만 타면 돼요. 어려운 과정은 다 끝났어요.
4. 창가 지라냐, 복도 자리냐? - 복도 자리가 마음 편합니다
복도 자리를 좋아해요. 비행기 탈 만큼 타 봤으니까요. 화장실 가기 편한 자리가 최고죠. 예전엔 무조건 창가였죠. 창가 자리에서 구름도 보고, 내가 살던 세상이 작아지는 것도 봐야죠. 도착하기 직전 윤곽을 드러내는 그 나라의 풍경도 가장 먼저 보려면 창가여야죠. 저는 이제 자기 바빠요. 전날부터 설친 잠을 그때 보충해야죠. 창가 자리에서 넋 놓고 입을 벌린 사람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해요. 제게는 사라진 설렘이니까요. 입국 카드를 또 작성해야 해요. 볼펜을 안 가져왔을 때, 그렇게 화가 나더라고요. 승무원에게 달라고 하면, 빌려 주기는 하는데 아주 작은 걸로 기분이 나빠져요. 아무리 꼼꼼히 준비하면 뭐 하냐고요. 볼펜을 까먹다뇨? 자기 볼펜으로 열심히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부럽고, 얄밉더라고요.
5. 언제까지나 소중한 기내식
처음처럼 신기하고 맛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먹어도 돼. 아직 그 정도 경지는 아니에요. 무조건 먹어야죠. 궁금하기도 하고요. 더럽게 맛없을 때도 몇 번 있었지만, 대체로 먹을만해요. 일단 양이 적잖아요. 아무리 맛없어도 몇 번 먹으면 사라지는데요, 뭐. 기내식의 아주 중요한 기능은 시간을 나눠 준다는 거예요. 기내식을 먹기 전과 후. 기내식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기내식을 먹고 나면 졸음이 몰려와서 또 자요. 기내식 덕분에 지루한 비행시간의 상당 부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어요. 기내식이 없었다면, 폐소 공포증,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들은 비행기가 더 지옥이었을 거예요. 기내식 기다리기, 먹기, 소화하기. 이건 정말 정말 중요한 기내 일정이에요. 저는 에미레이트 항공 기내식을 가장 맛나게 먹었던 것 같아요.
6. 피로함, 두려움, 지루함 - 체공 시간의 3요소
비행기를 타기까지 다들 좀 피곤했겠어요? 그런데 또 비행기가 공중에 떠 있잖아요. 난기류 만났을 때는, 당장 고꾸라져서 죽을 것만 같죠. 그런데 파일럿 친구 말로는 난기류가 생각보다는 위험하지 않대요. 죽지는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체감 공포로는 그만한 게 없지 싶어요. 롯데 월드 자이로 드롭을 왜 돈 주고 타냐고요? 난기류 한 번 제대로 만나면 열 번은 공짜로 쑥쑥 내려가요. 그 불쾌한 하강감은 진저리가 나요. 내장과 뇌가 먼저 내려가고, 몸이 뒤늦게 뒤쫓아 가는 더러운 기분. 같이 탄 승객들 때문에 더 겁이 나요. 비명 지르는 사람이랑 기도하는 사람이 저를 더 공포로 몰아넣어요. 진짜 끝인가? 웃음기 싹 사라진 승무원들 얼굴도 진심 보기 싫더군요. 저는 비명도 어금니 꽉 깨물고 으, 으, 으윽. 이 소리만 겨우겨우 냈어요. 죽기 직전에 비명이라도 제대로 지르는 사람은 나름 용감한 사람이구나. 그때 깨달았죠.
7. 짝짝짝, 무사히 착륙, 살아서 기쁘고, 여행 속으로 들어와서 더 기쁘고
남미 사람들이 흥이 많잖아요.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니까 박수를 치더라고요. 약속이나 한 것처럼요. 괜히 저까지 들뜨더라고요. Vietjet이라는 신생 베트남 항공사에선 'Hello vietnam'이란 노래를 틀어줘요. 기분이 묘해져요. 멜로디가 말랑말랑 촌스러운 게 올드팝이나 뮤지컬 느낌이 나거든요. 여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베트남이 그리워지는 노래예요. 비행기가 사다리와 도킹하고 내리는 시간이 참 굼뜨죠. 사람들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느껴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나가는 속도가 그렇게 빠를 수가 없어요.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여행이 고픈 사람들은 따로 훈련이 필요 없어요. 무조건 서둘러요. 달라진 공기 냄새를 느낄 여유는 시내로 들어가는 공항버스에서나 느끼겠죠. 일단은 공항을 빠져나가야 여유라는 것도 생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