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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17. 2021

착한 사람들의 분노 - 태국 사람들의 슬픔법

그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분노할 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뉴스는 태국 아침 뉴스예요. 왜 저런 것까지 보여줄까? 한 남자가 줄에 매달려서 발만 보여요. 발버둥을 쳐요.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고요. 남자의 발은 이내 힘없이 축 늘어져요. 아내는 말해요. 자살 시도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이번에도 안 죽을 줄 알았다고요. 더 놀라운 건 태국에 사는 한국인 부부라더군요.


육교 위에서 투신자살하는 것도 다 보여줘요. 얼마 전에는 경찰이 아내를 총으로 쏴 죽였어요.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다고요. 본인 턱에도 한 방 쐈는데 빗맞았어요. 이미 죽은, 피로 낭자한 아내를 안고는 울어요. 바닥에서 허우적허우적 죽은 아내를 쓸어내리면서요. 태국 사람들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이런 뉴스를 봐요. 그렇게 겁이 많은 태국 사람들이, 이런 잔인한 뉴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초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중이었어요. 아내는 옆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고요. 차가 전복돼요. 그때 아이가 튕겨져 나가요. 그리고 전복된 차에 깔려 버려요. 아버지는 쓰러진 차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요. 제발 아이가 차가 아닌,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반나절을 돌아요. 뉴스 기자는 그런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요. 혼이 반은 나간 아버지는 중얼거리듯, 그 질문을 다 받아줘요. 태국은 어찌 보면 예의가 없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자기 아이가 차에 깔려 죽었는데 무슨 상황이냐고,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다니요? 아예 기절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 일일이 답을 해줘요. 그 누구에게도 예의 바른 사람이고 싶은가 봐요.


그렇다고 태국 사람들이 다 온순하다는 건 아니에요. 살인사건도 엄청나게 일어나요. 운전하다가 시비가 붙으니까, 엄청 큰 칼을 가지고 나와서 휘두르더라고요. 도끼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도 뉴스에서 봤어요. 평균적인 태국 사람은 웬만하면 참고 봐요. 하지만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요. 끝을 봐야 해요. 예전에도 한 번 썼던 얘긴데, 예전 남자 친구가 자꾸만 찾아와 성폭행을 하는 거예요. 현재 남자 친구가 그 남자에게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켜요. 남자는 불에 활활 타요. 태국 뉴스는 어떤 장면까지 보여주냐면요. 그 남자가 불에 타서, 눈만 껌뻑이면서 걷는 걸 쫓아요. 그런 어마어마한 화상을 입어도, 걸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저는 몰랐아요. 엄청난 육신의 고통이 한차례 지나간 남자는 계속 걸어요. 그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아요. 아무도 구급차를 불러주지 않아요. 자신이 떳떳하지 못함을 알아요. 동정받지 못하는 죄인은 그러니 걸을 수밖에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집으로 가는 걸까요? 후회를 하는 걸까요? 뉘우치는 중인 걸까요? 복수를 다짐하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그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숨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둠이나 외진 곳을 찾는 박쥐처럼요. 조금 전까지 들끓던 욕정과 집착은, 있기나 했던 걸까요? 껍질이 된 남자가 유난히 하얀 흰자위를 꿈뻑이며 걸어요. 내 평생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죠.


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걸 보면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파요. 오죽하면 거리로 나왔을까? 웬만하면 참고 말아요.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배고프고, 적당히 억울하면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에요. 내 아이를 죽인 원수도, 용서할 수 있는 게 태국 사람들이에요. 나를 불구로 만들어도, 업보라 믿으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의 분노라 더 슬퍼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의에 눈빛이 돌변하는 사람들. 그들이 화를 내고, 그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건 그래서 사실 더 대단한 거예요. 더 가슴 아픈 피울음인 거죠. 하지만 그런 목소리도 어쩐지 요즘 시들해지는 것 같아요. 미움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힘을 보태주지 않으니까요. 먹고살만한 기득권들이야, 바뀐 세상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씁쓸해요. 그들이 원하는 건 최소한의 최소한일 뿐인데 말이죠.


PS , 매일 글을 씁니다. 부족한 사람이 쓰는 부족한 글이에요. 정답이 없으니, 부족함도 그 핑계로 글로 나올 수 있는 거죠. 완벽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 그것만큼은 잊지 않고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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