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해졌다고 했지, 좋다고는 안 했습니다만
살다 살다 내 프라이팬에 비둘기가 똥을 다 싸네요. 바깥에 잠시 말리려고 내놨더니 이런 참사가 다 일어났어요. 한국에서라면 베란다에 프라이팬을 내놓지도 않았겠지만, 비둘기가 베란다를 제 집 드나들듯 하지도 않았겠죠. 우리 단지 옆 가정집 주인이 전생에 비둘기였나 봐요.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비둘기들을 먹여 살려요. 새들이 새까맣게 그 집 지붕에서 진을 쳐요. 집안에만 있으면 새인가요? 그래서 우리 단지 베란다 어디든 틈만 보이면 와서 똥을 싸고, 지푸라기로 둥지를 틀어요. 이렇게 민폐를 끼치면, 들고일어나야 하잖아요. 어떻게 그 엄청난 비둘기들이 깡패짓을 하는데도, 따지는 사람 하나 없을까요? 에어컨 실외기에도 이것들이 자꾸만 비집고 들어오려고 해서, 페트병을 실외기 위에다가 촘촘하게 채워놨어요. 그랬더니 요놈들이 이렇게 복수를 해요. 프라이팬에 똥을 싸고, 얼마나 의기양양했을까요?
작년에는 전자레인지 문으로 꼼지락꼼지락 바퀴벌레가 지나가지 뭡니까?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잡히지가 않는 거예요. 뭐지? 4차원, 5차원 공간의 생명체를 인류 최초로 목격한 건가? 전자레인지 문이 두 겹인 거 아셨나요? 사이에 공간이 있는 건요? 바퀴벌레가 어떻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는, 인간 생명체인 저에게 약오르지 메롱을 시전하고 있지 뭡니까? 바퀴벌레 생생 디스플레이니까 아이들 생물 교육엔 딱이겠네요. 와, 환장하겠더군요. 이놈을 어찌 빼내냐고요? 버릴 생각까지 했는데, 그러면 바퀴벌레에게 지는 것 같아서 땡볕에 좀 말렸어요. 이후로 보이지 않기는 하는데, 완벽하게 박멸됐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죠. 밥솥에서 바퀴벌레가 우글우글 튀어나온 적도 있어요. 저 진짜 심장 터져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구형 밥솥이에요. 한국에서는 볼 수도 없는, 밥만 되는 아주 기본적인 밥솥이요. 밥은 확실하게 맛없게 되는, 쌀을 익혀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기계였죠. 이런 걸 왜 샀나 몰라요. 밥 한 봉지에 400원도 안 하는데요. 깨끗한 물로, 이왕이면 직접 해 먹자. 의도야 좋았죠. 밥이 너무 맛없으니, 건강이고 나발이고 안 해 먹게 되더군요. 바퀴벌레들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따뜻하지, 어둡지, 외부에 노출 안 되지. 1년 정도 방치하다가 생각나서 꺼내 봤더니, 아래 구멍에서 바퀴벌레들이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거예요. 제가 그 광경을 보고도, 기절하지 않았다니까요. 이렇게나 담대한 사람이 바로 저란 사람입니다.
동남아시아에 오면 쥐 때문에 충격 많이 받으실 거예요. 크기가 어지간해야죠. 성인 팔뚝 만한 쥐들이 밤이면, 쓰레기 더미에서, 하수구에서 호로록호로록 잘도 지나다녀요. 바퀴벌레도 두 종류가 있어요(실제로는 더 많겠지만요). 집에서 나오는 건 그래도 작은 거고요. 길바닥에 엉금엉금 다니는 바퀴벌레는 성인 손가락만 해요. 이거 보고 동남아시아에 정 떨어진 사람 많을 거예요. 먹을 게 풍부한 나라들이니, 쥐나, 바퀴벌레에게도 천국인 거죠. 찡쪽(필리핀에서는 또꼬라고 해요)을 처음 본 건 필리핀에서였어요. 사람 사는 방에, 손가락 만한 도마뱀이 천지인 거예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자나? 사색이 될 수밖에요. 지금은 찡쪽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찡쪽이 바퀴벌레의 천적이거든요. 찡쪽만 있으면, 바퀴벌레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요. 저희 집에도 찡쪽이 몇 마리 들어왔어요. 그중 한 마리는 꽤 오래 같이 살았죠. 밥풀을 잘 먹어요. 매일매일 밥풀과 물을 성실하게 챙겨줬었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더라고요. 그전엔 아무리 문 열어놔도, 나갈 생각도 않더니요.
여전히 바퀴벌레야 혐오스럽지만, 평균적인 한국인에 비하면 벌레에 관대한 편이에요. 파리가 윙윙대면 밥맛이 떨어지시나요? 왜요? 저에게 파리는 그냥 공기 같은 존재라서요. 파리가 없는 세상은, 참세상이 아니죠. 그런 저에게도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태국 친구네 고향에서 며칠 잔 적이 있어요. 밥이며, 반찬이며 파리가 쉴 새 없이 달려드는 거예요. 소쿠리 같은 걸로 남은 밥과 반찬을 덮어 놓거든요. 그 소쿠리에도 까맣게 파리가 모자이크처럼 달라붙어요. 그런데도 다들 너무나 태연한 거예요. 저도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이에요. 거미, 메뚜기, 귀뚜라미를 날개, 대가리까지 꼭꼭 씹어 먹었던 사람이라고요. 그래도 파리떼가 소복이 앉은 밥상에서는 굳을 수밖에 없더군요. 깨끗한 자연 속 파리는 괜찮대요. 파리면 파리지, 어떤 파리는 유기농 파리로 대접해 주더군요. 동남아시아에 올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평균적인 위생관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이곳 사람들도 청결 엄청 따져요. 길바닥에서 바퀴벌레, 쥐가 보인다고 너무 야만스러운 나라로 보지는 마시라고요. 이제 저는 모기들도 잘 안 물더군요. 처음엔 그렇게 저한테만 달려들더니요. 수입산을 모기들이 귀신처럼 알아보거든요. 지금은 현지인보다도 덜 물려요. 모기들도 외면하는, 거의 현지인이 되어 버렸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쓰려고 했나? 아니거든요. 가끔씩이지만, 이런 신비체험 때문에 저는 저 자신이 신기해요. 이건 제가 쓴 게 아니라, 태국 곤충, 도마뱀, 비둘기 협회에서 시킨 거예요. 저는 조종당한 거고요. 그렇게 믿겠습니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