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죠?
한국만큼 깨끗한 나라도 드물죠. 미국 피닉스에서 대형 쇼핑몰을 간 적이 있어요. 화장실 사방 벽이 갈색의 얼룩으로 덕지덕지한 거예요. 똥이 아니면 뭘까요? 일부러 피넛 버터라도 가지고 간 걸까요? 규모가 작은 구멍가게도 아니고, 도색을 했어야죠. 청소를 하긴 했는데, 흔적은 선명하더군요. 우리나라라면 난리가 났을 텐데요. 파리나 뉴욕에서 지하철 타보셨나요? 이게 나라인가 싶죠. 나라를 대표하는 대중교통인데, 오줌 지린내, 벗겨진 벽, 선로에 가득한 쓰레기, 쓰레기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쥐새끼들. 뉴욕 지하철에서 쥐새끼가 졸고 있는 승객의 목까지 타고 올라간 영상 보셨나요? 2013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1년 뉴욕 지하철 276개 역을 조사한 결과, 30%인 83개 역이 청소를 1년에 3회 이하로 한대요. 요즘엔 좀 나아졌으려나요? 재작년 뉴욕에 갔을 때는, 여전히, 매우 더럽더군요. 미국은 돈이 없는 나라일까요? 돈 쓸 일이 너무 많은 나라일까요? 지하철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요?
우리나라는 88년 올림픽 전후로 급격히 깨끗해진 것 같아요. 그전엔 진짜 말도 마세요. 지하철역에서 화장실 문 열 때마다 무서워요. 더러운 건 이해해요. 왜 똥을 엉뚱한 곳에다 배설하는 걸까요? 물 안 내리는 건 기본이고요. 어떤 때는 거의 모든 칸이 똥 천지예요. 급하면 대안이 없잖아요. 그 안에 들어가서,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서 볼일을 봐야 했어요. 국민학교 때 수세식 화장실을 학교에 설치했는데, 좌변기에 올라가서 누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양변기에 두 발을 올리고 아슬아슬 볼일을 보는 거죠. 쓰는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친구네 집을 놀러 간 적이 있어요. 방에서 오줌 지린내가 진동을 하는 거예요. 새벽에 오줌 마려우면 그냥 방구석에다 눈대요. 못 사는 집도 아니었어요. 친구 왔다고 김밥을 말아 주시는데, 김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군요.
여름이면 식당 어디나 끈끈이 테이프가 있었어요. 거꾸로 매달린 투명한 미역처럼 생겼죠. 파리들이 거기에 달라붙어서 주렁주렁 죽어 있어요. 손님들은 파리 시체를 보면서 밥을 먹어야 했죠.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대적으로 청결 운동을 펼쳐요. 위생 상태를 고발하는 뉴스도 자주 해줬죠. 시장 국밥집 커다란 국솥 위로 파리떼가 새까만 거예요. 그 국물을 퍼다가 밥을 말아주면, 사람들은 감격하며 먹는 거죠. 고향의 맛이, 이 맛이로구나!
겨울에 샤워요? 꿈도 못 꾸죠. 목욕탕 가는 날이 몸을 씻는 날이죠. 뜨거운 물이 귀했으니까요. 아주 잘 사는 집 아니면, 머리 정도나 감을 수 있었어요. 한국 사람이 체취가 거의 없는 편이에요. 대신 집집마다 청국장, 된장찌개를 끓여 먹잖아요. 그런 음식 냄새가 켜켜이 쌓인 옷을 매일 입고 나가요. 민감한 사람들에겐 묵히고 묵힌 음식 냄새가 얼마나 강렬했겠어요? 게다가 치실이라는 건 구경도 할 수 없었죠. 그러니 구취가 말도 못 하죠. 음식 썩는 냄새가 입에서 풍겨져 나오는 사람이 열의 셋이었어요. 몸에는 늘 벌레들이 살았어요. 머릿니가 머리카락 사이에서 꿈틀댔죠. 참빗으로 빗으면, 꼼지락꼼지락 벌레들이 흰 종이 위로 기어 다녔어요.
자고 일어나면 고추가 부어 있을 때가 있었어요. 쥐가 깨물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방으로 쥐새끼가 들어와서는 자는 사람을 샅샅이 뒤지고, 맛보고 했다는 거죠. 빨랫비누, 세숫비누엔 쥐들이 갉아먹은 자국이 선명했어요. 부엌 수챗구멍에서 쥐새끼들이 찍찍대며 대가리를 들이밀었죠. 단칸방에 공중전화 부스 크기의 부엌이 딸린 집에서 살았어요. 그 부엌이 밤이면 화장실이에요. 마당을 가로질러서, 화장실 가기가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니까요. 밥그릇이 있고, 냄비가 있는 곳에서 다 튀겨가며 소변을 눠요. 한 여름 재래식 화장실은 더 끔찍했죠. 거대한 똥이 막 움직여요. 구더기들이 꿈틀대는데 흡사 똥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죠. 그 위로 재빠르게 쥐새끼들이 뛰어다니고요.
그 어느 나라보다 깨끗한 나라가 됐어요. 청결에 관해서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나라도 드물 거예요. 한국에선 어딜 가든 그래서 마음이 편해요. 그런데 누구는 또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너무 깨끗해서, 사람들 면역성이 떨어진다고요. 더러운 환경을 접하면, 더 쉽게 배앓이를 하고, 아프기 쉽다고요. 그렇다고 재떨이에 가래침 뱉고, 밥그릇을 재떨이로 쓰던 시절로 어찌 돌아가나요? 우리보다 조금 못 사는 나라를 가면 눈살 찌푸려지는 일 많으실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만 아는 거죠. 익숙하니까 더럽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해요. 콜롬비아 수상 가옥에선 그냥 바다에다 똥 누고, 오줌 눠요. 그런데 꼬마들이 거기서 놀아요. 입을 그 물로 헹궈가면서요.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요. 그런 나라들도 개선이 되겠죠. 우리나라가 그랬듯이요. 냄새와 청결에 유난히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에게 지구촌은 이런저런 충격의 세상이에요.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요. 며칠만 지나면 그러려니가 되더라고요. 아침마다 페트병 들고 똥 누러 가는 인도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 쫓아가 보고 싶더라고요. 페트병 하나 들고요. 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을 쓴다는 건, 힘차게 발구르기를 하면서 다이빙을 하는 것과 같아요. 공중에 솟구치면, 이전의 긴장감은 의미가 없어요. 철저하게 내가 되어 공중제비를 돌죠. 결국 내가 들통나는 건데, 무슨 계산을 그리 했을까요? 열심히 솟구치고, 돌고, 입수하면 돼요. 공중제비에 집중하는 글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