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다 내 마음 같지 않을까요?
이십 년도 더 됐네요.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중국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인터넷이 정말 정말 귀했어요. 랜선 다섯 개를 영어 학원에서 컴퓨터실에 깔아 줬어요. 자신의 노트북을 연결해서 인터넷을 쓸 수 있었죠. 얼마나 경쟁이 치열했겠어요? 중국 아이들은 자리를 대신 맡아 줘요. 그걸 봐줄 한국 사람입니까? 그런 게 어딨냐며, 가방 밀어 넣고 내 컴퓨터를 연결했죠. 자기네들끼리 중국말로 뭐라 뭐라 하더군요. 그래 내 욕 실컷 해라. 나도 너희들 속으로 욕하는 중이니까. 노트북으로 중국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듣는 거예요. 그냥 참으려고 했어요.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니까 머리가 다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이어폰을 꽂고 들으라고 했죠. 대단히 황당하고, 억울한 표정을 짓더군요. 자기 옆 중국 친구랑 또 소곤소곤. 저 한국 놈은 왜 시비야? 내가 듣고 싶은 음악도 못 들어? 뭐 그랬겠죠? 중국이란 나라는 미래가 없구나. 좀 사는 집 놈들일 텐데, 사고방식이 저 모양이니까요. 공공장소에서 음악 크게 틀어 놓는 게 왜 잘못인지 모르는 놈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면 나라꼴 잘도 돌아가겠네요. 나중에 중국에서 좋은 사람 많이 만나서 중국 혐오는 누그러졌지만, 그땐 진짜 중국 사람들이 사람처럼 안 보였어요.
어제는 스타벅스에 갔어요. 태국도 요즘 코로나로 뒤숭숭해요. 예전엔 아예 한 명도 안 나왔는데, 어제 하루만 사백 명 넘는 확진자가 나왔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총 일곱 명의 확진자가 나왔네요. 집 안에만 있어야지 했는데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언제 또 모든 가게와 카페들이 문을 닫을지 모르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갔어요. 어떤 남자가 제 옆 테이블에 앉더니,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더군요. 이어폰 안 쓰고요. 오른쪽 두 테이블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더군요. 저도 자리를 옮겼죠. 태국에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한다는 건, 칼부림 하자는 거거든요. 99%는 착해요. 하지만 자존심도 말도 못 하게 세요.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면, 1%는 총이고, 칼이고 꺼내는 게 또 태국 사람이거든요.
아버지가 떠오르더군요. 태국 빠이를 여행 중이었어요. 근사한 카페로 모시고 갔죠. 산과 널찍한 초원이 펼쳐져 있는, 전망 끝내주는 카페였어요. 무슨 카페를 쓸데없이 자주 가냐던 아버지도 갑자기 표정이 좋아지시더니, 어머니와 카페 주변을 한참을 걷고 오시더군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아버지가 유튜브로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보시는 거예요. 제가 급하게 이어폰을 드렸죠. 인상을 쓰시더니, 나가자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택시가 오면, 그때 나가면 되는 거였는데 아버지는 무작정 나가자는 거예요. 화가 단단히 나신 거죠. 길바닥에서 짐 다 들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요. 분이 안 풀린 아버지는, 멀찌감치 떨어지셔서 입을 꾹 닫고 먼 산만 바라보시더라고요.
감히 누가 나를 지적하냐는 거죠. 집안의 왕이었으니, 자존심이 상하셨던 거예요. 나이를 먹으면, 이어폰을 꽂는 게 많이 성가실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연세가 있으시니까요. 남들이 소리 크게 틀어 놔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어요. 당신 기준으로는, 전혀 문제 될 행동이 아닌 거죠. 남들이 음악 크게 틀어 놔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런 이유로 지적을 받으면 화가 나겠구나. 아버지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을 소시오패스라며 혐오하던 저는, 아버지를 보며 충격을 받았던 건 사실이에요.
층간 소음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도, 음식의 단맛, 짠맛도 모두가 다르게 반응하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너무도 힘들어요. 힘든 사람에겐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가 되니까 알아서 조심하자는 거고요. 그런데 살아온 환경이나 연령대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함께 하지 않은 아이들은 식사 예절을 배울 기회가 없어요. 그런 아이들은 악의는 없지만, 친구들은 같이 밥 먹기 싫어하게 되죠. 단 한 번만 누구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받았다면 해결될 문제인데 말이죠. 노인들에겐 모두 새로 배워야 할 규칙들이에요. 그전엔 안 그래도 됐던 것들이거든요. 음식 먹을 때 쩝쩝 소리 내는 건 박력있게 먹는 거였으니까요. 음악을 크게 듣는 게 어때서요? 누구라도 듣기 좋아서 음악 아닌가요? 이렇게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룰을 만들어 버려요. 알아서 열심히 모범 시민인데, 누군가가 지적을 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날 수밖에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말이에요.
저는 여전히 타인의 음악이나 영상으로 내 공간이 침해되는 걸 못 참겠어요. 하지만 그냥 피하려고요.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는가? 지적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까지 정의롭지 않아서요. 불편한 상황을 피하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거죠. 만에 하나 이어폰을 아예 꽂을 수 없는 귀를 가지고 있다거나, 이 시끄러운 공해를 누군가는 진짜 음악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 저만 예민 덩어리, 프로 불편러가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 서둘러 도망가는 게 최선이죠. 가방을 힘껏 들고 자리를 옮겨요. 혹시 나 때문인가? 그런 의구심이라도 들라고요. 제발!
PS 매일 글을 씁니다.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절망의 시대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세상이건, 빛을 보는 사람도 있죠.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걸 믿고 싶어요. 보이지 않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