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빼앗아간 최고의 물축제, 송크란

쥐 죽은 듯이 보내야 하는, 태국 최고의 명절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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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달은 일주일 전에 일어났어요. 통러라고 우리로 치면 청담동 같은 곳이에요. 우리나라 돈으로 400만 원은 쓰고 나와야 하는 초호화 클럽이 있대요. 우리네 룸살롱이랑 클럽이 합쳐진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유명 가수, 배우, 정치인들이 이곳에서 신나게들 놀았나 봐요. 정치인은 운전기사가 간 거라고 잡아떼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 클럽에서만 5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와요. 전염력이 1.7배나 강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라서 더 난리예요.


제가 사는 곳에도 이 클럽에 다녀온 사람이 있었나 봐요. 보셨죠? 태국에 돈 많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요. 제가 사는 아파트는 3백 가구 정도인데, 확진자가 무려 일곱 명이나 나왔어요. 여유가 되는 집들은, 짐 싸들고 떠났어요. 코로나가 턱밑까지 쫓아왔으니까요. 하필 송크란 연휴 기간에 말이죠. 올해는 그래도 송크란만큼은 어떻게든 열릴 줄 알았어요. 예년처럼 성대하게는 못 하더라고요. 송크란은 태국의 설날이에요. 태국은 태국만의 달력이 있어요. 태국력 1월 1일은 4월이 13일이에요. 가장 더울 때죠. 예전에는 우리네 설날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명절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축제의 성격이 강해졌어요. 그것도 세계적인 축제죠.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이때 맞춰서 오려고, 1년 전부터 비행기 티켓을 끊더라고요.


한 번쯤은 꼭 태국 송크란을 즐겨 보셔야 해요. 전 국민이 물에 미치고, 술에 미쳐서 3일을 보내요. 아무나 보고 물을 끼얹고, 차에 올라타서 구석구석 돌며 물을 뿌려대요. 온갖 화려하게 생긴 물총이 송크란 때 총출동하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집중적으로 쏴요. 그러면서 살랑살랑 썸도 타고요. 종일 집 앞에서 지나가는 차나,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면서 춤도 추고, 추워서 벌벌 떨고, 아무에게나 술도 권하고요. 저도 그렇게 많이 얻어 마셨어요. 당연히 춤도 추죠. 저 공짜로 술만 마시고 튀는 놈 아닙니다.


방콕의 종로라고 할 수 있는 실롬에는 거대한 살수차가 등장해요. 공룡 같은 게 떡 하니 버티고, 여기저기 물을 뿌려대죠. 미치기로 작정한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함성을 질러대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얼굴에 석회 가루를 바르고 윙크를 해요. 석회 가루가 더위도 식히고, 복을 빌어주는 의미도 있대요. 완벽한 타인끼리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제대로 섞이기도 힘들 거예요. 그게 송크란의 매력이에요. 그 누구도 외로울 수 없는 물의 축제인 거죠.


어제 태국 전역에 코로나 확진자만 800명이 넘었어요. 코로나 확진자가 아예 안 나오는 몇 안 되는 청정국이었는데 말이죠. 제한적으로나마 송크란 행사를 하기로 했던 태국 정부는, 코로나의 기습 공격에 모든 행사를 중단해요. 저도 예약했던 호텔을 취소했어요. 이런 때는 몸 사려야죠. 코로나로 아픈 것도 걱정이지만, 눈치 없이 싸돌아다니다 병 묻어왔다. 욕먹는 게 더 무서워서요. 방안에 셀프 감금하고, 긴긴 연휴를 보내려고요. 먹을 거 사러는 나가야죠. 연휴가 길기도 해요. 공식적으로는 목요일까지인데, 금요일을 추가로 쉬면서 열흘 이상 쉬는 사람도 많아요. 그 황금연휴를 대부분이 집안에서 TV나 보면서 지내야 해요. 가장 쓸쓸하고, 지루한 연휴가 시작됐어요. 물 한 방울 볼 수 없는, 사막 같은 송크란이라뇨? 코로나가 종료되면, 다음 송크란 때는 태국 사람들이 더 미쳐서 날뛸 거예요. 원래도 몇백 명씩 죽어 나가는 축제였거든요.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그렇게들 많이 죽어요. 내년에 정상적으로 송크란이 열린다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네요. 역대급으로 화려하고, 위험한 축제가 될 거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흉흉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장점도 있어요. 타인의 아픔이, 남 일 같지가 않아요. 진심을 다해서 공감해요. 우리는 모두 위태롭고, 약한 존재인 거죠. 그걸 깨닫는 시간이니, 마냥 손해는 아닌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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