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예지, 김정현 사건으로 난리더군요. 배우 서예지와 김정현이 연인 사이였는데, 서예지가 김정현이 상대 여배우와 스킨십을 금지하는 카톡이 공개되어 버린 거죠. 서예지나 김정현이 입장 발표를 한 게 없으니, 한쪽 말만 듣고 누굴 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김정현이란 남자 배우가 상대 여배우 서현과 팔짱을 거부한 건 분명한 팩트거든요. 그것도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요. 수줍게 서현이 팔짱을 끼려고 하니까 단호하게 뿌리 치더군요. 모든 기자들이 보고 있는데요. 서현은 얼마나 무안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화를 내기란 쉽지 않겠죠. 더군다나 연예인이면,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연예인이 참는 건 아니에요. 황정음 같은 경우엔, '골든타임'을 연출한 권석장 PD를 대놓고 저격했죠. 권석장 PD와는 다시는 작품 할 의사가 없다고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레드 벨벳의 아이린을 저격한 기자 출신 스타일리스트도 생각이 없어서 저격을 했겠어요? 초대형 기획사의 에이스를 저격하면, 자기 밥줄이 끊길 수도 있는 건데요. 그래도 눈이 뒤집히면, 보이는 게 없는 법이죠.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앙갚음을 해주고 싶은 마음뿐인 거죠. 사람이니까요. 왜 나만 당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감정은 어찌 보면 대단히 인간적인 거죠.
적극적인 복수만 있는 건 아니에요. SNS에 흘리는 방법도 있죠. '악마는 멀리 있지 않아'. '상처는 왜 피해자의 몫일까?' 이런 식으로요. 그렇잖아요. 남자 배우가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으면, 수군대기 좋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촬영 현장에서, 여배우가 갑질이라도 했나 봐. 우리는 모르는 뭔가가 있나 봐. 이유 없이 남자 배우가 저러겠어? 이런 모함이 본인에게는 안 들리겠어요? 조금이라도 덜 억울해지려면, 어떤 식으로라도 흘려야죠. 모욕감은 모욕감대로 받고, 의심의 눈초리는 눈초리 대로 감당해야 하고. 저 같으면 잠 못 잤어요. 식음을 전폐했을 거예요. 서현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가해자에게 내가 받은 만큼의 상처를 돌려주고 싶어 해요. 왜냐면 그게 공평하니까요. 내게 괴로움을 준 사람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건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복수가 찜찜할 때도 많아요. 공 들여서, 그 모욕감을 되갚아 줘도요. 개운함 보다는 여전히 벌벌벌 떨리고, 내 손에 피를 묻힌 것처럼 불쾌해져요. 왜냐면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평소에 원하지 않았던, 유치하고, 모진 모습이 되어 버린 거죠. 자존감이 극강인 사람은, 가볍게 무시하더군요. 나는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이야. 이 사람이 나를 홀대하는 건, 이 사람의 문제인 거지. 정신이 아픈 사람이거나. 이렇게요.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한 방법이죠. 내가 받은 상처의 수렁에 빠지기 전에, 가해자가 먼저 수렁에 빠졌음을 재빨리 자각하는 거죠. 나는 망신을 당한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행동에 공격받은 것뿐이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걸 눈치챌 능력이 있어요. 자존감이 약한 사람, 저 같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 먼저죠. 개망신당했다. 이 모욕감은 평생 가겠지? 저 인간을 어떻게 밟아 놔야 직성이 풀릴까?
저의 목표는 튼튼한 자존감을 갖는 거예요. 사사로운 복수가 쾌감이 되지 않는 사람요.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요. 골라서 만날 수 없어요.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돼요.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사람을 어떻게 미리 알고 피하겠어요? 내가 빛나는 존재임을 확신하면, 모욕감은 근처에도 못 와요. 나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없으니까요. 나를 짓밟으려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에요. 조언과 모욕은 달라요. 그건 초등학생도 알 수 있죠.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일수록, 남에게 모욕을 주면서 존재를 증명하려 하죠. 그런 약한 사람에게 휘둘린다는 건, 소중한 에너지의 낭비예요. 마음고생이 많았겠지만, 그 누구보다 의연하게 이겨낸 서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제 서현이 나오면, 호감을 가지고 응원해 주고 싶어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서현 흥해라!
PS 매일 글을 씁니다. 상처 받은 사람, 약한 사람, 불안한 사람에게 제 글이 읽히기를 바라요. 응원하고, 응원받으면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