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인종 차별 읽기

우리에겐 생각보다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이 숨어 있는지도 몰라요

by 박민우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인종 차별이라는 게 참 어려워요. 샘 오취리가 의정부 고등학생들의 검정 분장에 발끈했었죠. 그리고 본전도 못 찾았어요. 샘 오취리의 과거 부적절한 언행과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가 화근이 됐죠. 뭐든지 역지사지를 해보면 되죠. 이제 그 역할을 좀 바꿔 볼게요. 서양 친구들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해요.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요. 싸이를 흉내 내고 싶어서, 양쪽 눈을 당겨서 스카치테이프로 고정하고요. 찢어진 눈이 표현이 돼야 제대로 된 싸이가 되는 거니까요. 그 나라에 사는 한 한국인이, 이건 명백한 인종 차별이다. SNS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요. 그러자 사람들은 과거에 이 사람의 적절하지 못했던 언행을 찾아내요. 너나 잘해라. 너네 나라로 꺼져라. 다른 한국인들은 괜찮다는데 왜 너만 오버냐? 온갖 비난이 쏟아져요. 일단 저는 그런 분위기를 상상하니 모욕감이 느껴져요. 아, 앞으로 눈 찢는 걸로 웃기려는 사람들에게 입도 뻥긋하면 안 되겠구나. 닥치고 못 본 척해야지. 이런 생각부터 들 것 같아요. 스카치테이프를 붙인 아이들이 무슨 악의가 있겠어요? 어떤 아이들은 '쿨'해 보여서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외국에 오래 산 동양인들은 한 번씩 이런 놀림을 받아 봤거든요. 웃기지 않아요. 웃음 안 나와요.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 될까 봐 입을 닫는 거지. 이게 재밌거나, 받아들일 만한 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샘 오취리의 인격을 들고 와서 비난을 하는 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죠. 불편하고, 모욕감을 느낀다는데 가해하는 쪽에서 오버하지 말라고 해요. 철저한 가해자 중심 시선인 거죠.


얼마 전에 한 유튜버가 독일 캠핑장을 갔더라고요.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헛구역질을 하는 거예요. 화장실 세면대 옆에서 다른 여자 체취에 급 당황했나 봐요.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누구를 비하하는 게 아님을 강조하더군요. 자신은 비위가 약할 뿐이라고요. 그 영상의 댓글들은 이래요.


-외국인 암내 맡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인데 괜찮나요?

-독일은 맥주와 암내가 유명하죠.

-암내, 그거 진짜 독까스지 ㅋㅋㅋ

-암내 텐트 ㄷㄷㄷ

-저의 추억이 이 영상에 있어서 낯설지 않네요 화장실은 진짜 구역질 나오긴 해요ㅠㅠ


순서대로 상위 댓글만 모아 온 거예요. 많은 분들이 그러실 거예요. 냄새난다는 걸 냄새난다고 하는데, 뭐 어쩌라고? 예전에 칠레에서 한국인 여자가 헬스클럽에 소송을 건 적이 있어요. 헬스클럽에 민원이 엄청 들어왔어요. 한국 여자에게서 마늘 냄새가 너무 나서 운동에 집중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헬스클럽에서, 그만 나오라고 얘길 해요. 여자는 발끈해서 소송을 걸어요.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으니까요. 칠레 뉴스를 탄 일이니, 당시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었던 거죠. 헬스클럽에 나오지 말라고 한 것과, 냄새난다고 표현한 건 다른 거라고요? 같은 경우라고 예를 든 게 아니라요. 우리도 그런 대접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행 중에 만난 한 한국인은 자주 요리를 하더군요. 마늘 듬뿍 넣어서, 불고기를 만들어 먹더라고요. 나와 여러 국적의 친구들이 일일 투어를 가기로 했는데, 그 한국인 친구가 같이 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인 친구가 귓속말로.


-쟤는 왜 이렇게 마늘 냄새가 심해?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저는 그 냄새를 못 느꼈 거든요. 한국인끼리 마늘 냄새로 괴로워 본 적이 있을 리가요. 그 친구가 같이 동행을 했는데, 제 마음이 종일 안절부절못했어요. 다들 억지로 참는 표정이더라고요. 내 마늘 냄새도 누군가가 괴로워하는 건 아닐까? 오만 생각이 다 들더군요. 인종차별은 별거 없어요. 나에게 일어났을 때도 괜찮은가? 우리에게도 일어났을 때 괜찮은가? 그걸 물어보면 돼요. 그런데 대부분은 상상력이 부족한지, 제대로 감정이입을 못 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막상 닥치면, 불편하거나, 발끈할 텐데도요. 체취가 강하면, 인상이 구겨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표현은 안 할 수 있어요. 사람이라면 눈치가 있으니 표현 정도만이라도 자제해서, 덜 각박한 세상에서 살자. 이 정도인 거예요. '표현의 자유' 이전에, '존재의 자유'가 우선이니까요.


-동남아시아인 처럼 생겼어.

-흑형, 흑형

-서양 사람들은 빨리 늙어. 늙어 보여.


이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죠. 사적인 곳에서야,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최소한 누구나 보는 sns에선, 불쾌해할 만한 표현은 삼가자는 거죠. 그들을 위해서요? 아뇨. 우리를 위해서요. 우리도 어디선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당당하게 따질 수 있게 밑밥 까는 거예요. 우리가 분하고, 서러운 일을 당했을 때 잠자코 있을 민족인가요?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가 조금은 더 열심히,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는 거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고민을 하면서 성장하기를 바라요. 언제라도 귀 기울이고, 교정하고,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매일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사람이고도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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