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에서 1년 일한 게 고작이지만, 중앙일보 계열 잡지 기자들을 늘 부러워했어요. 월급도 많고, 사회적 대우도 남달랐거든요. 저는 열심히 연예인 섭외 전화를 돌려야 하지만, 쎄씨 같은 잡지는 기획사에서 먼저 연락을 해요. 1등 잡지니까요. 서점에 내놓기가 무섭게 매진되는 잡지였으니까요. 기자들 업무 강도가 그 어떤 잡지사보다 세다고 들었어요. 기사 완성도가 떨어지면, 아예 싣지도 않는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확실히 글이나 사진이 좋았어요. 언제 나 좀 안 데려가 주나. 내심 기대도 많이 했었죠. 공식적으로는 휴간이라고는 하는데, 다들 폐간으로 생각하더라고요. 요즘 시대 종이 잡지로 돈 벌기는 하늘의 별 따기니까요. 기자들이 취재비로 펑펑 쓰는 법인카드가 그렇게나 부러웠는데 말이죠.
2. 드라마 왕국 MBC의 몰락
MBC 하면 드라마였어요. 최근 MBC 드라마 '오, 주인님' 시청률이 0.9%가 나왔더군요. 눈을 의심했어요. 드라마 왕국 MBC 기억하시나요?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여명의 눈동자' '사랑이 뭐길래' '전원일기'를 만들었던 MBC에서 0.9%요?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도 딱 두 편이더군요. 주말 드라마도 아예 없어요. MBC에서 운영 중인 케이블채널 드라마넷에선 옛날 드라마랑 예능 프로그램만 틀어주더라고요. 채널 이름이 드라마넷인데 참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네요. 한때는 전 국민이 MBC에서 무슨 드라마를 하나? 그것만 기다리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한참 듣보잡이었던 Tvn이 훨씬 더 잘 나가는 것도 신기해요. 정말 영원한 건 없다니까요.
3. 지구 레코드사의 몰락
조용필, 이미자 앨범을 주로 냈던 음반사였죠. 한 때는 대한민국 앨범의 60퍼센트를 지구 레코드에서 팔았어요. 지금의 SM, YG, JYP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최고의 가수 조용필은 지구 레코드사에서만 작업을 하며, 의리를 지켰고요. 나중엔 저작권 문제로 소송까지 갔더라고요. 결국 조용필이 저작권을 찾아오긴 했지만, 지구레코드사와 조용필의 관계는 해피엔딩은 아니었어요. 지구 레코드, 서울음반, 신촌뮤직, 킹레코드. 참 쟁쟁한 음반사들이었어요. LP판이 생일 선물로 참 좋았던 때였죠. 포장을 해봤자, 이미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는 게 단점이기는 했지만요. 그런 앨범들을 파는 가게들이 동네마다 있었어요. 비가 오고, 눈이 내릴 때마다 음반가게에서 흐르던 음악들이 기억에 남아요. 김범룡의 '겨울비는 내리고'를 한참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4. 일본의 몰락
80년대 버블 경제 일본 니케이 아시아에서 퍼옴
일본은 완벽한 이상향의 나라였죠. 일제, 일본에서 만든 물건은 뭐든지 최고였어요. 코끼리 밥솥, 보온 도시락은 강남 엄마들의 필수품이었죠. 문구 제품도 일본 게 월등하게 좋았어요. 제도 샤프가 국민 샤프였죠. 패션과 화장도 일본 따라 하기 바빴어요. 패션잡지 논노를 모르면, 멋쟁이 소리 들을 생각도 말아야죠. 서점에는 일본을 따라 하라. 광풍 그 자체였어요. 일본을 배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그게 한국 지식인들의 상식이었죠. 그때 그 상식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여전히 이 나라의 지도층이고, 교수예요. 재밌죠? 일본이 이렇게까지 몰락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과연 한국이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망상병 환자였죠. 한국의 드라마, 음악이 일본을 들었다 놓는 요즘이 참 자랑스러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정말 멋진 시대를 살고 있어요.
5. 이랜드 류의 몰락
이랜드 기업 자체로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으니까요. 이랜드 류라고 했어요. 그때 흔하게 입었던 국민 유니폼들이요. 상표만 해도 백 개는 더 될 거예요.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랜드, 언더우드, 브렌따노, 제이빔, 카운트다운, 티피코시, 옴파로스, 헌트, 제누디세, 쉐인, 뱅뱅, 에드윈, 니코보코, 아우토반 정도네요. 단정하고 실용적이 옷들인데, 어엿해 보인다. 그게 마케팅 포인트였어요. 화려하고 주목받는 옷은 아니지만, 가난하고, 불쌍해 보이지 않는 어엿함. 미국 대학생들이 입을 것만 같은 풍요로움. 옷장에 하나 가득 이런 옷들 뿐이었죠. 그런 평범함이 사실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인기였던 것 같아요. 조금만 방심해도 가난함, 찌든 삶이 쉽게 들통나는 시대였으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가 속한 세상은, 중력도 있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기도 한다는데 그걸 느끼기란 쉽지 않죠. 나는 모른다. 내 느낌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려고요. 나는 부족하다. 나는 모른다. 이런 각성이 나는 안다. 나는 누구보다 낫다. 이런 생각보다 절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