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춥고, 끈적이던 집
지금은 아파트가 기본값이죠. 1인 가정이 아니라면, 거실은 기본이고요. 옛날의 집은, 심란했어요. 다들 비슷하게 사니까 심란한 줄도 몰랐죠. 잘 사는 집과 못 사는 집의 차이가 크기도 했어요. 어떤 집이 떠오르세요?
1. 참 더러웠던 개나리 벽지
80년대는 개나리 벽지뿐이었어요. 지금도 아이들 키우는 집은 벽지가 깨끗하지 않을 거예요. 그때는 정도가 심했어요. 낙서는 기본에다가, 코딱지도 그냥 벽지에 문지르고 그랬어요. 껌도 씹다가 붙여놓고, 다음날 또 씹기도 했고요. 더러움의 경지를 넘어, 까맣게 반질반질해질 정도였죠. 벽지만 더러웠겠어요? 바닥재는 모노륨 장판을 주로 썼는데, 아랫목 쪽은 새까매요. 아궁이와 가까운 쪽은 화력이 너무 세니까, 탈 수밖에요. 밥은 식지 말라고, 신앙촌 담요로 아랫목 쪽에 곱게 덮어 놔요. 그 밥이 엎어지면서 담요엔 밥풀이 지저분하게 매달려서 메말라 갔죠. 시멘트로 바른 바닥에서 연탄가스가 새는 일도 흔했어요. 연탄가스로 죽을 뻔한 사람이 동네마다 있었죠. 동치미 국물 마시고 목숨을 구한 집이 얼마나 많았다고요.
2. 풀을 쑤어서 바른 창호지 문, 바람이 숭숭숭
방문은 창호지 문이 많았어요. 미닫이 창호지 문이었죠. 뭔가 운치 있어 보이죠? 전혀 안 그랬어요. 구멍이 숭숭 뚫려서, 너덜너덜 찢어진 창호지가 휘날리는 문이었죠. 여닫이 문이 있는 집은 좀 사는 집이었죠. 창호지는 큰 마음먹고, 풀을 쒀서 제대로 발라야 해요. 그러기 전까지는 대충 붙이거나, 그냥 놔둬요. 겨울이면 거기서 송곳 바람이 불어 오죠. 도둑놈이 드물지 않던 시대라, 그런 창호지 문을 안에서 걸개로 잠그고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해요. 한 여름 찜통엔 도둑이고 뭐고, 활짝 열어놓고 자기는 했지만요.
3. 연탄아궁이와 곤로
겨울에 창고에 연탄이 가득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 연탄도 아끼겠다고, 아궁이 문을 안 쓰는 걸레나 테니스 공으로 꾹 막아 놔요. 활활 타지 말라고요. 가난한 집은 연탄도 시름시름해요. 연탄 덮개와 연결한 온수통이 있었어요. 연탄의 열기로 물을 덥히는 거였죠. 나름 그때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죠. 가스레인지는 구경도 못 했고, 석유곤로를 썼어요. 까만 연기가 올라와서 냄비를 숯검정 만들기 일쑤였죠. 저는 그때 타는 석유 냄새를 참 좋아했어요. 기생충이 많으면, 석유 냄새에 환장한다더라고요. 한 겨울 어머니가 석유곤로를 방 안으로 옮겨와서 해 주시던 호떡이 참 맛있었어요.
4. 온 가족의 샤워실 수돗가
마당에 수도가 있고, 세숫대야, 빨래 방망이 등이 있었죠. 씻고, 빨래하는 공간이었어요. 여름이면 그곳에서 등목을 하고요. 겨울이면 뜨거운 물 한 바가지 세숫대야에 풀어서 머리를 감았죠. 겨울이면 꽁꽁 얼어서, 수도 터지는 일이 흔했어요. 그래서 수돗물 나오는 관을 안 쓰는 옷으로 꽁꽁 감싸줘야 했죠. 그래도 여지없어 얼고, 터져요. 그러면 뜨거운 물을 계속 부어서, 어떻게든 녹이려고 했죠. 수돗가 주위는 꽁꽁 얼어서, 안 미끄러지려면 조심조심 걸어야 했어요.
5. 담벼락 쓰레기통
시멘트로 만들어진 쓰레기통이 집집마다 있었어요. 담벼락에 1미터 높이로 각지게 지어졌죠. 위로도 뚜껑이 있고, 앞으로도 쇠로 만든 뚜껑이 있어요. 버릴 때는 위로 버리고, 청소 아저씨들이 앞 뚜껑을 열어서, 쓰레기를 꺼내고, 리어카에 담으셨죠. 그러고 보니, 그때는 리어카로 쓰레기를 치웠네요. 빗자루까지 싣고요. 집집마다 한참을 서서, 쓰레기를 치우도, 다음 집으로 가서 또 쓰레기를 치우고요. 어이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노동이었는데, 그때는 노동의 가치가 그 정도였어요. 일자리도 없으니, 노동력을 갈아서 세상 돌아가는 데 썼죠. 스카이 콩콩을 타고, 쓰레기통에 올라가야 진정한 스카이 콩콩 고수였어요. 저요? 저도 당연히 해냈죠. 무릎 깨져가면서 이뤄낸 자랑스러운 업적(?)이었습니다.
6. 쇠창살 담벼락과 옥상
양철로 된 대문이 있고, 담벼락은 쇠창살이나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박아 놨죠. 도둑들이 그것 때문에 담을 못 넘겠어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 몫이었죠. 열쇠를 집에 놔두고 오거나, 잊어 먹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래서 담을 넘어서 옥상을 타고, 마당으로 내려와서 문을 열어야 했어요. 어릴 때도, 담을 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양철 대문에는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우편함과 조잡한 초인종이 있었고요. 우유를 받아먹을 수 있는 헝겊 주머니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네요. 그 우유 훔쳐먹는 애들이 또 그렇게나 많았어요. 아버지가 우유 배달을 하셨는데, 속 꽤나 썩으셨죠.
7. 조금은 무서운 다락과 마루 밑
마루 밑에 공간이 있었어요. 지하실로 쓰는 게 아니라, 진짜 어둠의 공간이요. 개나 고양이들이 그곳으로 자주 들어갔어요. 안방이 있는 주인집이 마루라는 것도 있었고, 전세를 주로 살았던 우리 같은 경우는 쪽마루가 있었어요. 방문 앞에 한 명 눕기 좋은 실용적이고, 없어 보이는 마루요. 다락은 안 보는 책들, 가구들, 쌀, 보리 등을 놔뒀는데 쥐들이 많이 다녔어요. 그 쥐를 잡으려고, 길고양이들까지 침입을 했죠.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었어요. 다락은 낭만적인 공간이기는 했지만, 저녁마다 후드득후드득 추격전은 무섭기도 했어요.
그때 저는 마루에 난로가 있는 집이 참 부러웠어요. 그런 마루가 있는 집 자체가 부러웠던 거죠. 난로가 있고, 거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부럽더라고요.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자는 우리 같은 경우엔, 집은 걷는 공간이 아니에요. 좁아터진 곳에서, 자고, 먹고, TV를 볼 뿐이죠. 그래도 온 가족이 모여서 공기놀이도 하고, 민화투도 치고 했어요. 좁지만, 외부의 세상에서 보호받는 아늑함이 있었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하루가 쌓여서 일생이 되고, 작은 글들이 쌓여서 내 인생이 됨을 잊지 않겠습니다. 작은 것들이 위대한 업적보다 못하지 않음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