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8살 때 소원 중 상당 부분을 이룰 수 있는 슈퍼맨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어요. 문과 감수성 80퍼센트지만, 그때는 과학자가 멋져 보이더라고요. 꿈도 은근 구체적이었어요. 고려대학교 유전공학과에 진학해서 제2의 우장춘 박사가 되자. 그런데 확신에 찬 꿈은 아니었나 봐요. 고등학교 때 친구 잘못 만나서, 1초도 고민 안 하고 문과로 진로를 틀어요. 그놈과 같은 대학에 진학해서 수업 같이 들을 때는 좀 뭉클하더라고요. 매일 글을 쓰는 제 감수성 보세요. 이과 감수성은 1그람 정도나 있을까 말까예요. 무슨 생각으로 이과를 가려고 했나 몰라요. 대부분 미래의 꿈은 막연하죠, 뭐. 남들 좋다는 거, 부보님이 원하는 거, 공부 잘해야 이룰 수 있는 거, 그런 꿈들이 우선순위였으니까요. 여덟 살 저는 어떤 꿈을 꿨나를 생각해 봐요. 직업처럼 진지한 거 말고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꿈이요. 간절하고, 또 간절했던 그런 꿈들요.
1. 핫도그 안의 소시지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핫도그를 먹을 때마다, 껍질은 케첩 맛으로 먹었어요. 그냥 밀가루 튀김이니까요. 그 속에 싸구려지만, 찬란한 분홍색 소시지가 메인 메뉴였죠. 밀가루 덕지덕지 발라진 누더기 소시지를 빨고, 또 빨아요. 사탕 아니지만, 씹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죠. 소시지가 내 이로 절단될 때, 너무 마음 아프지 않나요? 자제력이라는 게 참 얄팍해서, 한 번 씹으면 그때부터는 그냥 씹어야 해요. 아무리 참고 참아도 30분이 한계였죠. 소시지가 참 작기도 작았어요. 요즘 편의점에서 소시지만 파는 걸 보면, 뭔가 감동적이에요. 튀김옷을 억지로 먹을 필요도 없는, 오로지 소시지만으로 아름다운 그 자태가 감동 그 자체 아닌가요? 아, 물론 지금 저는 소시지는 먹지 않습니다. 아질산나트륨에 열을 가하면 니트로사민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되기.. 아, 아닙니다.
2. 환타 한 병을 나 혼자 마시고 싶다
집이 구멍가게를 하는데도, 사이다나 콜라는 소풍 때나 마실 수 있었어요. 가게 물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등짝 스매싱이나, 빗자루 참교육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친구네 집에 갔는데 냉장고에 콜라, 사이다가 가득한 거예요. 친구 왔다고 잔에 따라 주는데, 병째 주면 안 되겠냐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더군요. 친구 중에 환타에 밥을 발아 먹는 애가 있었어요.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애도 있었고, 라면에 우유를 타 먹는 애도 있었죠. 참고로 라면에 우유 약간 넣어 보세요. 의외로 겁나 고소합니다. 그때 저는 환타에 밥 말아먹는 애가 제일 부러웠어요.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는데, 저는 왜 그게 미친 짓인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일종의 플렉스 아닌가요? 누구는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걸로 밥을 말아먹는 건데요. 아, 지금도 탄산음료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예요. 몸에 안 좋은 건 맛이 없다. 아재 입맛의 결론은 그런 식으로 나게 되어 있어요.
3. 떡볶이에서 떡 좀 치워줄래?
저는 어묵 먹으려고, 떡볶이 먹었어요. 그때 미아리에선 어묵을 덴뿌라라고 했어요. 오뎅도 아니고, 덴뿌라요. 숭인시장에서 어묵을 덴뿌라라고 팔았으니, 그런가 보다 했죠. 일본식 채소나 해물 튀김을 보통 덴뿌라라고 하죠. 어쨌든 그 어묵이 어린 저에게는 세상 제일 맛있었어요. 떡볶이 먹으면, 두세 개나 섞였을까요? 더 달라고 할 용기는 없었어요. 누가 봐도 떡은 싸고, 어묵은 비싼 건데, 같은 돈 내고 비싼 걸 더 달라고 하면 상도덕에 어긋나니까요. 떡볶이 먹고, 어묵 국물도 두 번은 더 달라고 해서 먹을 건데, 주인아주머니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잖아요. 지금도 어묵은 좋아해요. 하지만 어릴 적 소원대로 어묵만 먹지는 않아요. 떡볶이 안에 있는 어묵이 훨씬 맛있더라고요. 떡이 없으면, 어묵도 빛을 잃더라. 심오한 듯, 심오하지 않은 그런 깨달음을 얻었달까요?
4. 슈퍼맨 망토는 어디에서 사야 하는 걸까?
그 망토만 입으면 우주까지 누빌 수 있으니까요. 스파이더맨도 인기였지만, 거미줄은 망토에 비해선 영 없어 보였죠. 화끈하게 날아서, 지구를 괴롭히는 악당을 내손으로 처단하고 싶었어요. 그게 아니면 메리 포핀스의 우산이라도요. 메리 포핀스의 우산도 저에겐 동심 파괴의 상징이었어요. 왜 모든 우산이 똑같이 생겼는데, 그 우산만 날아다닐 수 있는 거죠? 그걸 8살 아이가 무슨 수로 깨닫냐고요? 저만 피해자 아니에요. 미아리 아이들은 장독대에서 우산 펴고, 그렇게들 뛰어내렸어요. 그렇다고 머리가 깨지는 중상까지는 아니었고요. 무릎 정도가 깨지거나, 깁스를 하는 정도였죠. 우리가 얼마나 믿음이 강했냐면, 순간적으로는 분명히 날았다고 확신했어요. 체공 시간이 두 배는 길어진 느낌이었거든요. 대신 우산이 뒤집어지더라고요. 80년대 국산은 쓰레기였어요. 그깟 장독대도 감당을 못 하는 우산이 무슨 우산이냐고요? 우산은 영국 우산이죠. 건물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절대 뒤집어지지 않는 그런 우산일 테니까요..
5. 꿈에도 소원은 입양 - 미국 사람이 되고 싶어요
TV에서 친부모를 찾는 입양아들이 이해가 안 갔어요. 매일 스테이크 먹고, 초콜릿 먹을 텐데 친부모가 꼭 필요한가? 잔디밭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한국을 왜 그리워하는 걸까? 그때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권이 천국인 줄 알았어요. 바퀴가 달린 카트라는 걸 끌면서, 물건을 담더라고요. 장바구니 들고 시장 가는 게 상식인 저에게는, 그 장면이 충격 그 자체였죠. AFKN에서 찔끔찔끔해주는 만화 영화도 매일 볼 수 있는 나라에 살면서 뭐가 저렇게 서럽다는 걸까요? 미국 아저씨가 내 아들 할래?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국적 팠을 거예요. 그런 패륜아가 저였어요. 철이 없을 때니까요. 배 안 고프고, 덜 가난하면 그게 천국인 줄 알았으니까요. 지금요? 한국 사람이고, 어머니, 아버지 아들인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게다가 장남도 아니고, 차남으로 낳아 주셨어요. 결혼도 안 하고 떠돌아다니는 것도 장남이었으면 꿈도 못 꿨겠죠? 어머니, 아버지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6. 구멍가게가 아니라 문방구 집 아들이었더라면
문방구도 좋고, 서점도 좋아요.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보물섬을 나오자마자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굳이 살 필요도 없이요. 저는 어깨동무를 사봤어요. 객관적으로야 소년중앙이 더 재밌었지만, 어깨동무는 희소성이 있었어요. 소년중앙 보는 애들과 바꿔 보기 딱 좋았죠. 매달 어깨동무 나오는 날 기다리는 것도 힘든데, 소년중앙 다 볼 때까지 기다려서 교환하는 게 얼마나 애가 타겠어요? 게다가 형이 또 먼저 봐야 해요. 내가 그렇게 목 빠지게 기다리는 거 알면서, 평소엔 읽지도 않는 페이지까지 얼마나 열심히 읽는지 몰라요. 스님이 사리가 왜 생기는지, 어린 나이지만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었죠. 문방구 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더라고요. 아, 아니다. 그래도 만화방보다는 또 못하죠. 만화방에는 이현세가, 혀영만이, 이재학이, 박봉성이 전집으로 산더미처럼 꽂혀 있었으니까요.
7. 엄마 유치원 좀 보내 주세요, 네?
유치원에 가면 공부라는 것도 해야 하는데, 그래도 너무 가고 싶었어요. 유치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그렇게 부티가 나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신분 상승 욕구가 또래보다 강했어요. 강하면 뭐하겠어요? 형편이 안 되는 걸. 미아리의 73년 생 중에 유치원은 안 다니는 아이들이 더 많았어요. 사립 국민학교를 보내 달라, 보이 스카우트를 시켜 달라. 울기도 하고, 떼를 써보기도 했죠. 어머니는 꿈쩍도 안 하시더라고요. 여유만 된다면 왜 안 해주고 싶으셨겠어요? 하루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형편에, 육성회비 안 밀린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중학교 때는 드디어 교복을 입어보는 건가? 무척 설렜는데, 갑자기 교복 자율화가 시작되는 바람에 평생 교복운이 없었네요. 누군가는 교복 한 번 안 입어본 저를 부러워할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런 생각도 할 여유가 없을 때가 많죠. 그래도 삶이 우리를 지배하게 놔두면 안 되죠. 바쁘고, 힘들어도 이 시간이 내 것이다. 나는 참 가진 게 많다. 그런 긍정으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요. 마음 부자가 제일 큰 부자가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