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리 귀엽게 장사를 하시나요
Bosch 세탁기를 쓰려면 러시아어를 알아야 한다. 영어가 한 글자도 없는 전자제품을 처음 봤다. 갤럭시 노트에서 구글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글자에 폰카메라를 맞추고 긁으면 알아서 번역해 준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합성' 메뉴에 휠을 고정한다. 다 때려 넣고 빨아도 된다는 거지? 양말, 속옷, 바지 다 넣고 Persil 세제 한 스쿱 넣는다. 새삼 놀라운 집이다. 2만 4천 원(세금, 부가세 포함) 방이다. 멀쩡한 콜게이트 치약 새 거를 박스 째 놔뒀다. 1회용 치약이 아니라, 제대로 치약. 1회용 칫솔 아닌 멀쩡한 칫솔도 비닐째다. 오성급 호텔도 이런 칫솔, 이런 치약은 없다. 교통 카드는 또 뭘까? 내가 충전해야 하는 거겠지만, 돈이 들어있을 것 같다. 안 건드리기로 한다. 아니, 못 건드리겠다. 그냥 사람이 좋아서, 재밌어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 난다. 보통의 욕심, 게으름이 죄가 된다. 닥치는 대로 퍼주는 사람이 큰돈을 벌기는 한다. 푼돈을 버는 사람은 원가를 먼저 따진다. 그게 상식인데, 상식의 함정이기도 하다. 평균적인 생각, 계산은 큰 매력이 없다. 상식을 비켜가야 매력이다. 그녀의 집 두 채는 늘 예약으로 꽉 차 있다. 남는 것도 없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쪼잔한 내 계산이다. 그녀의 계산은 다를 것이다.
-일단 들어와요.
숙소 옆에 wine palace 호텔이 있다. 이 남자가 내 손을 잡아채지 않았다면, 나는 이 호텔 이름을 평생 몰랐을 것이다. 내 눈에 들기가 쉽지 않다. 이젠
-내가 호텔 사장이오.
아, 그러시군요. 정말 호텔 사장처럼 생겼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미남자.
-조, 조!
다급하게 누군가를 부른다. 덩치 청년이 수줍게 등장한다. 조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와인, 코냑으로 꽉 차 있는 방이다.
-다 마셔 봐요. 공짜예요.
아니, 맛보는 건 당연히 공짜지. 일종의 와인 투어구먼. 와인의 원조국이 프랑스가 아니라 조지아란 걸,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다. 후배 한 명은 내게 일본 돈 2만 엔을 주며(달러로 줄 것이지) 와인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좋은 와인이 있으면 수입하고 싶다고 했다. 작정하고 마셔볼 거지만, 지금은 아니다. 식도염에 술이라니. 사장의 호들갑엔 미안하다. 도움이 안 되는 손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백화점 쇼핑도 못 한다. 안 살 거면 들어가지 못하겠다. 실망하는 점원 표정이 슬프다.
-위가 안 좋아요. 술 못 마셔요.
- 그럼, 이거 마셔요. 이건 괜찮을 거예요. 복숭아로 만든 술이라고요.
복숭아? 달달한 과실주인가?
-맛있죠? 40도예요. 저도 한 잔 마실게요. 사장님 없을 때.
목부터 가슴이 활활 타고 있다. 속 아프다니까 이 미친놈은 40도 깔끔한 술을 권했다. 40도란 말에 위로가 된다. 술 때문이다. 식도염은 아무 짓도 안 했다. 반 모금 정도다. 내 몸뚱이가 바삭 감자칩도 아니고, 그 정도로 부서지지는 않는다. 왜 사장은 다짜고짜 나를 붙잡았을까? 짐벌 때문이다. 흔들림 없이 영상을 찍을 수 있는 기구다. 짐벌에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나왔다. 호텔 사장은 짐벌에 반한 것이다. 중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중국 TV에 wine palace 호텔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런 사람은 중국이나, 한국이나다. 나를 놓치면, 중국 시장이 날아간다. 복숭아 증류주가 그리 맛있나? 총각. 사장이 들이닥쳐서 이 총각이 깜짝 놀라는 꼴을 보고 싶다.
-이곳의 술은 뭐가 다르죠?
호텔 로비. 내 질문에 사장은 침을 꿀떡 삼킨다. 야, 조! 조! 네가 좀 해봐. 사장은 조의 도움이 절실하다. 술 한 병 안 팔아주는 나는 당당하다. 편히 말하듯이 해요. 나의 지도에 2인조는 더 당황한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와인 한 병과 조지아, 트빌리시 가이드북을 안긴다.
-공짜 선물은 싫어요.
-숙소에 묵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한 병씩 주는 거예요.
조지아는 와인 참 쉽게 주는구나. 하나 더 알아냈다. 사장이 올까 봐 복숭아 증류주를 서둘러 원샷하는 조의 얼굴, 폰 카메라 앞에서 침을 꿀떡 삼키는 사장. 내 손엔 와인 한 병. 사장이 좀 더 영리했다면 한 달 내내 공짜로 재워 줬어야지. 내 빨래가 베란다에서 기차게 마르고 있다. 내 한 마디, 한 마디에 침을 꿀꺽 삼키는 바보 2인조가 눈앞에 있다. SPAR 마트 50% 할인 품목은 뭐가 있을까? 근처에 빵집이 있는지, 빵 냄새가 은근하다. 깨끗이 씻은 발엔 간신이 매달린 플립플롭이 가볍다. 페루에서 산 털실 바지로 트빌리시의 바람이 숭숭숭 드나든다.
역류성 식도염은 낫고 있다.
행복 겔포스가 위산을 휘덮고 있다. 낫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나는 안다.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