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우 May 11. 2021

가족 여행의 후유증 - 노부모와의 여행

하지만 다시 또 가야죠

어머니,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그래야 또 여행가죠 

며칠 전에 악몽을 꿨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태국의 한 식당을 들어가요. 여기는 싫다, 나가자. 아버지가 이러시는 거예요. 무슨 음식인지 보지도 않으시고, 싫다고만 하시네요. 꿈속에서 저는 좌절해요. 이젠 아버지의 그 어떤 짜증도 다 이겨낼 수 있다. 그 자신만만함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나를 깨달아요. 그러다가 깼어요. 꿈이라는 사실이 그렇게나 기쁘더라고요. 군대 다시 가는 꿈도 아니고, 부모님과 여행 다시 가는 꿈을 악몽으로 꾸다뇨?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었나 봐요. 재작년 12월에 부모님과 24일간 치앙마이와 빠이에 머물렀어요. 심각하게 담배를 다시 피울까? 거의 흡연자가 될 뻔했다니까요. 물론 행복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피가 마르는 날이 많았어요. 특히 아버지요.


-뭐가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온 거냐?

-너는 여행사 가이드였으면 내가 고소한다. 내 돈 주고 이런 방에서는 못 잔다. 

-왜 여기 앉아 있는 거냐? 나가서 기다려. 나가자고오오오


길가 카페에서 택시 기다리는데,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일부러 택시 기다리려고, 카페에 앉아 있었던 건데요. 말대꾸를 하면 노발대발하시니까요. 길에서 한참을 멍하니 안 오는 택시를 기다려야 했어요. 아버지라고 화나는 게 없으셨겠어요? 참다참다 한 번씩 내지르시는 거죠. 아들이란 놈이 아버지 심기 헤아리지 못하고, 바락바락 대들기만 하니. 이런 무근본 불효자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가출도 했다니까요. 아버지랑은 다시는 여행 안 온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요. 그 밤중에 숙소에서 나와서, 그냥 걸었어요. 12월 31일 밤, 그날을 어떻게 잊겠어요. 이 좋은 날에, 이 좋은 곳에서 뭐 하는 건가 싶더군요. 불빛도, 인적도 없는 외진 길을 저벅저벅 걸었죠. 무섭지도 않더라고요. 어머니, 아버지랑 내일도, 모레도 함께라는 사실이 훨씬 훨씬 무섭더라고요. 


그때도 지금처럼 매일 글을 써서 올렸죠. 치앙마이에서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는 상황을 실감나게 썼어요. 


-아니, 나이 드신 분이 그러실 수도 있지. 그까짓 걸 왜 그렇게 못 견디시나요? 


그런 댓글을 보면 위축되죠. 나는 정말 싹퉁머리 없는 아들이구나. 대들지 말아야지. 무조건 알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저도 불완전한 사람이고, 아버지도 불완전한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자식이면, 자식 된 도리를 해야 한다. 저는 오히려, 그런 강박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참으라는 거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기운도 좋으시지. 화낼 기운 있으면, 건강하신 거야. 이야호. 누구나 이런 효자일 수는 없어요. 억지로 효자 코스프레하면 속이 새까맣게 다 타요. 밴댕이로 태어났으면, 밴댕이인 걸 인정할 줄도 알아야죠. 힘들면 힘들다. 아니면 아니다. 언성은 높일지언정, 곪아서 썩는 느낌은 아니에요.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아요. 효자가 훌륭한 거지, 불완전한 내가 쓰레기인 건 아니죠. 대신 화를 내더라도, 후회는 하세요. 그럴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아버지도 저도 조금씩, 조금씩 배우는 게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이랑 여행요? 당연히 또 가야죠. 인도네시아 발리가 됐든, 형이 있는 아르헨티나가 됐든요. 예전처럼 그렇게 언성 안 높이려고요. 아버지도 힘이 더 빠지셨을 테고, 저도 그때보다는 철이 들었으니까요. 가족이니까 적나라한 모습도 보이는 거고, 그래서 깊은 배움도 있는 거고요. 아버지가 어디 또 안 데리고 가나? 여행 이야기를 먼저 꺼내세요. 코로나로 많이  답답하신가 봐요. 그때는 매일 괜히 왔다. 저를 그렇게 속상하게 하시더니요. 그렇다니까요. 길 위에서 가족끼리 다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그게 사진 속에 생생히 녹아서, 추억이 되는 거고요. 그러니까 여행 중에 상처 주는 말들. 너무 담아두지 마세요. 길 위에서 더 불안한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어르신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나요? 그걸 모르니, 오늘을 전부인 것처럼 쓰기로 해요. 하루를 전부인 것처럼 쓰고, 사랑을 전부인 것처럼 하고, 밥을 전부인 것처럼 먹어요. 모든 걸 활활 태우고, 하얀 재가 되어서 사라지자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중에 한국 사람 만나는 게 그렇게 싫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