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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y 13. 2021

음식은 절대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교육

우리에겐 무수한 금기들이 있어요

음식 남기면 안 된다. 아주 기본적인 식탁 예절이죠. 대학교 다닐 때 성당 주일학교 교사를 1년 했는데, 여름 성경학교에서였어요. 초등부 아이들이 초코 다이제스티브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날리고 있는 거예요. 처음엔 동그란 딱지인 줄 알았어요. 먹는 게 얼마나 안 귀하면, 저런 짓을 할까? 나름 문화 충격이었네요. 그 아이들도 지금은 삼십 대 중반이니, 애 아빠가 됐을 확률이 높겠네요.


태국 사람들은 매사에 전투적인 면이 없어요. 음식도 마찬가지죠. 한국인 기준으로는 깨짝깨작이에요. 배는 고프지 않지만, 먹어야 사니까 먹기는 하겠다. 세상 나른하고, 세상 무기력한 식사를 해요. 그러다가 한국 가면, 신병 교육대 온 느낌이에요.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바람 소리가 나요. 여의도나 종로에서, 점심시간 식당 풍경을 보면 전쟁이 따로 없어요. 서둘러 먹고,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마음이겠죠. 저러다 탈 나는 거 아닐까? 저도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 사람의 식사 속도에 호흡이 다 가빠지더라고요.


군대에서 잔반 줄이기를 강압적으로 강조한 적이 있어요. 짬 안 되는 이등병들은 생선 가시까지 삼켜야 했죠. 포병이었는데, 포대별로 경쟁이 붙어서요. 이런 거 지면, 내무실 분위기 살벌해져요. 병장들처럼 남은 음식 잔반통에 버리면, 갈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인생 최고의 먹성일 때라서, 생선 가시도 씹어지더라고요. 그 맛없는 임연수어찜을 껍질까지 깨끗하게 클리어했죠. 매일 기합에 얻어맞는 처지여서, 위장이 음식 쓰레기통이 되는 건 쉬운 임무였어요.


음식 쓰레기가 생기지 않게 적당한 양을 책임지고 끝내기. 환경적 측면이나, 생활 윤리로 보나 그게 맞죠. 그런데 태국에 살다 보면, 안 그래져요. 이 나라 사람을 닮아가더라고요. 태국 사람들 음식도 잘 남기고, 남은 음식 싸 달라는 사람도 없어요. 그냥 한 번 먹으면 끝이에요. 냉장고에서 밑반찬 꺼내 먹는 문화도 없고요. 우리처럼 전자레인지나 에어 프라이어기로 데워 먹는 문화가 훨씬 적어요. 문제는 어머니 아버지와 태국 여행을 할 때였어요. 한식도 먹고, 직접 한두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하고, 현지식도 사 먹고 했죠. 그런데 현지식은 부모님 입에 안 맞을 때가 있어요. 특히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식 입맛이라서요. 아버지가 안 드신 양을 꾸역꾸역 입에 넣다가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버리려고 하면 어머니, 아버지 표정이 싹 바뀌시는 거예요. 이리 주라고, 내가 먹겠다고. 입에도 안 맞는 걸, 억지로 드시는 거예요. 절대로 음식은 버려서는 안 된다. 멀쩡한 음식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꼴은 못 본다.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금기였던 거죠. 어머니 같은 경우엔, 집에서 남은 음식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세요. 버리자고 하면 난리가 나요. 어머니가 약간 비만 체형이신데,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게, 뚱뚱해져서 병을 달고 사는 게 차라리 낫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굶주림에 시달렸던 세대라서 그런 걸까요? 교육이 강력하게 개개인을 조종하고 있는 걸까요?


나에게는 어떤 게 있을까? 꼭 음식이 아니더라도요. 누군가가 내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하면, 동물적으로 발끈해지기,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면 쓸쓸해지기, 한국인이니까 일본 미워하기, 나보다 모르는 것 같은데, 아는 척하는 사람에게 망신 주고 싶어지기,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지만, 꼰대 같으면 역시 망신 주고 싶어지기, 사람 분석하기, 분석하고 편견에 빠지기 등등이 있겠네요. 예가 어째 좀 억지스러운데, 이런 생각들도 교육에서 나온 건 분명하니까요. 사고도, 판단도 온전한 나만의 의지로 나오기란 불가능하니까요. 스무 살만 더 젊게 태어났어도, 저의 기치관은 180도 달라졌을 거예요. 당시의 상황과 상식이 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죠. 음식을 남길 권리. 거기에서 묘하게 해방감을 느껴요. 조종에서 탈출한 느낌요. 일단 저는 맛이 없으면 앞으로도 남기려고요. 끝까지 먹는 미덕에 반항하며 살려고요. 나를 조종하는 금기를 하나씩 찾아서,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원 플러스 원으로 산 치실이 오랄비 치실보다 훨씬 후졌어요. 이걸 끝까지 쓰는 게 맞나요? 아니, 제가 글을 이렇게 썼다고 어떻게 버리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세요? 두 개씩이나 되는 걸 버리라고요? 어머니, 아버지 유전자가 어디 안 갔나 보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나칠 수 있었던,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서 글을 발견하고 싶어요. 공기 중의 미세한 설탕이 솜사탕이 되듯이요. 그 미세한 실을 가로, 세로로 엮어서 글이란 걸 만들고 싶어요. 이왕이면 달콤하게, 이왕이면 풍성하게. 꿈처럼, 연기처럼 곧 사라질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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