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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y 14. 2021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할까?

악의는 없지만, 그래도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

가장 많이 했던 거짓말은 아버지 직업이었어요. 우유 배달이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계셨지만, 입 밖으로 내기가 두려운 거예요. 평균에 못 미치는 신분이 들통날 것 같은 두려움요. 그래서 아버지 직업은 상업이었어요. 선생님이 꼬치꼬치 물으면, 식은땀이 다 나더라고요. 결국엔 우유 배달이 아니라, 우유 대리점으로 아버지 신분을 격상시키고 두려움에 떨었죠. 이 거짓말은 언젠가는 들통나고 말 거야. 아버지가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 걸 목격할 때면, 숨 막히는 추격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어요. 자전거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허리를 구부려 신발끈을 묶고, 갑자가 시선을 돌려서 아무 가게의 아무 간판을 봐요. 친구들은 저 녀석이 왜 저러나 싶었을 거예요. 아버지에게도 들키면 안 되니까, 두 배로 숨이 막혔죠. 


대학을 들어가니까, 너네 아버지 뭐 하시노? 이렇게 노골적으로 질문하는 친구들은 없더라고요. 사생활을 당당하게 묻는 게 조금은 무례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나 봐요. 조금씩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거고요. 부모님 직업이 교수라든지, 의사면 저절로 알게 되더군요. 비밀로 할 이유가 없는 직업이니까요. 대학교 1학년 때, 전국 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주도해서, 지방 친구네 집에서 먹고 자는, 민폐 여행의 극치였죠. 지금은 등 떠밀어도 그렇게 못 다니죠.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 그런 자신감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있었어요. 실제로 넘치는 대접과 추억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죠. 지방 친구들이니까, 과수원 있고, 오두막 있는 시골집을 떠올렸어요. 어엿한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들이더라고요. 여력이 되니까 반겨주고, 먹여주고 하신 거겠죠. 


하루는 신세를 지던 친구 아버지께서


-부모님들은 뭘 하시나? 


한 명씩, 한 명씩 부모님 직업을 말해야 했어요. 가구점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교수인 친구도 있었고,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그때 저의 아버지는 일본에 불법 체류하시면서, 오사카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계셨어요. 입이 떨어져야 말이죠. 


-사업을 하십니다. 


이렇게 답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더군요. 솔직한 답을 할 용기가 생겨야 말이죠. 불법 체류가 자랑도 아니고요. 저만 빼고는 어찌나 그렇게 다들 어엿할까요? 비슷하게 가난하고, 비슷하게 사연 있는 친구들이겠지. 저만의 착각이었던 거죠. 꼬치꼬치 더 깊이 묻지만 말아 주시길. 감사하게도 친구 아버지 질문은 거기서 끝이었어요. 지금도 거짓말해요. 특히 나이요. 서양 친구들은 아시아인들의 나이를 가늠조차 못하잖아요. 자신들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어려 보이나 봐요. 그래서 나이를 이야기하면, 입을 못 다물 때가 많아요. 어쩔 수 없이 열 살 정도 줄여서 말해요. 배낭여행을 하면 보통 스무 살에서 스물다섯 살 차이가 나요. 나이 먹고 배낭여행하는 게 잘못도 아닌데, 괜히 위축이 되더라고요. 관심 종자 맞는데, 나이로 관심받는 건 엄청 불편하더군요. 분위기 깨고 싶지 않아서, 나 때문에 놀라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면서 거짓말을 해요. 그런 두려움 속에는, 사실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나이 먹고 느낀 깨달음이 있다면,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일종의 왕자병인 거죠. 내 삶이 대단한 화제가 될 거야.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어요. 전전긍긍한다는 건, 누군가의 나이나 직업에, 나 스스로가 그렇게나 관심이 많다는 반증이죠. 


내가 모든 직업에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모든 나이에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도 나와 같을 테니까요. 내 생각이, 사실은 타인의 시선을 만들어요. 거짓말을 할 때마다, 목표를 만들어요. 지금은 수치스럽지만, 이 답을 정직하게 할 때, 나에겐 더 큰 자유가 올 거야. 저의 부족함을 알리는 알람으로, 거짓말을 활용해요. 강박적으로 모든 걸 까발릴 필요는 없지만, 비밀이 탄로 날까 봐 덜덜 떨며 살고 싶지 않아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때 돌아가면서 아버지 직업을 답할 때요. 누군가는 저와 같은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요. 다들 비슷한 처지지만, 자신만 외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나요? 부러워하는 직업인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중간에서부터 아래까지는 다 고만고만하죠. 보통의 사람들이 조금씩 부러워하고, 조금은 으스대면서 결핍의 활력으로 살아가는 거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성격이 지랄 맞아야 글을 잘 쓴다고요. 저는 덜 지랄 맞고, 편한 글을 쓰고 싶어요. 나를 갉아먹는 글 말고, 함께 상생하고, 적당히 살도 오르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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