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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y 18. 2021

해외여행 같이 가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맞습니까?

24시간 밀착된 시간의 힘

태국 친구 중 한 명은 한국이란 나라, 절대로 가고 싶지 않대요. 무서운 나라일 게 뻔하다고요. 한국이라고만 하면 껌뻑 죽는 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의외였죠. 공항에서 일을 하는 친군데, 남녀가 뺨을 철썩철썩 갈겨가며 싸우더랍니다. 십 년 이상 공항에서 일하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대요.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국 사람이 죽기 살기로 싸우더래요. 여행 와서 저렇게 주먹다짐을 할 정도면, 한국은 얼마나 폭력적인 나라인가? 한국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대요. 


폭력적인 나라, 한국


이 의견에 동의하시나요? 여행 때문에 본성이 들통난 거니까, 폭력성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싸운다고 손찌검부터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행이 아니었다면, 그 본성 안 들통났을 수도 있죠. 여행이 그래요. 몰랐던 면을 보게 돼요. 주위에서 숱하게 보셨잖아요?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끼리도 길바닥에서 언성 높여가며 싸우는 거요. 가족도 가깝기는 해도, 나는 아니죠. 상대방에게 계속 맞춰 줘야 해요. 싸우려고 온 거 아니니까요. 그런데 양보가 쌓이잖아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억울해져요. 나도 즐기러 온 건데, 나는 없고 '양보'만 있으니까요. 자기주장이 너무 확실한 사람과의 여행은 그래서 피곤해요. 타인의 취향은 모른다. 내 취향은 확실히 관철해야겠다. 한 마디로 이기적인 사람인 거죠.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요. 여행이 아니었다면, 눈 감아줄 수 있었을 거예요. 여행이 은근 감정 노동이거든요. 긴장 조금만 놓치면, 길바닥을 헤매는 경우가 많아요. 택시가 안 잡힌다거나, 가끔 오는 차를 놓친다거나 하며 입이 바짝바짝 마르죠. 본인도 속이 타는데, 어떻게 좀 해봐라. 제대로 정보 확인도 안 하고 온 거냐. 옆에서 들들 볶으면, 오만 정이 떨어져 버리죠. 함께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짜증에 짜증을 얹는 사람. 신혼여행을 왔는데, 그런 면이 딱 보여 봐요. 이 사람과 평생 살아야 하나? 이런 작은 일에도, 자기만 쏙 빠지고 상대방 탓만 하는 사람이랑? 슬프지만 이혼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더 늦기 전에 찢어지는 게, 차라리 잘 된 거야. 인생을 통째로 날릴 뻔했는데, 차라리 구원받은 거야. 긍정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사람 대하는 모습에서 정이 떨어지더군요. 더 못 사는 나라에 산다고 노예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말 못 알아듣는다고, 눈치까지 없을까요? 그런데 한국말로 욕이나 짜증을 남발하는 사람들 있어요. 아니, 아주 많아요. 


-이러니까 가난하지.

-저런 더러운 곳에서 밥을 먹고 있네. 추접스러워라. 

-뭐가 이렇게 느려 터졌어? 직원 교육이 하나도 안 됐네. 이러고도 먹고사는 거 보면 진짜.

-이거 무슨 냄새야. 우웩

-X발 지금 이 택시 돌아가는 거야. 이 새끼 사기꾼이라고오오


저도 성인군자 아니에요. 어떻게 짜증 한 번 안 내고 여행 다닐 수 있겠어요? 그런데 부정적인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 있어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물건처럼 대하는 사람 보면 씁쓸하더라고요. 나 안 보일 땐,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까? 하나를 보면 열까지는 몰라도, 두셋은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말 좀 못 알아듣는다고, 자신이 서비스를 구매했으니 갑질 좀 해도 된다? 그런 사람들 보면 마음이 식더라고요. 택시가 돌아가는 것 같으면 짜증 내야죠. 바가지 쓰는 것 같으면 발끈해야죠. 그런데 너무 격해지지는 마세요. 아슬아슬해 보이더라고요. 바가지일 수도 있지만, 오해일 수도 있어요. 상대방이 순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태국 뉴스에서 칼부림을 얼마나 자주 보는데요. 흥분이 지나치면, 그깟 돈 몇 푼에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어요. 


동행은 특별한 경험이에요. 코고는 소리에,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까지 공유하면서 24시간을 같이 보내요. 죽이 잘 맞으면 이보다 더 큰 축복도 없죠. 황홀한 여행의 기억을 공유하는 건데요. 같이 여행 간 친구와 좋은 기억뿐이세요? 인복 인증하신 거예요. 다녀와서도 영 찜찜하고, 사람이 달라 보이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여행 같이 가는 거,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언제나 함께 하고픈 여행 친구가 있지. 그런 친구라면 평생 함께 하세요. 큰 복이라고 생각하시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가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어요.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일 없을 거고요.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닌데, 절대로 하지 않고 살아요. 나를 둘러싼 알을 깨야 할까요? 가끔은 내가 답답할 때가 있어요. 알에 갇혀서 부화되지 못하는 병아리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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