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연예인병 있어요. 네가 왜? 많은 분들이 어이없어하실 거 알아요. 연예인병은 연예인이 걸려야 하는 거죠. 연예인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병인 거죠. 저는 유명하지도 않고, 연예인도 아니에요. '세계 테마 기행'에 나온 저를 기억하는 분들이 가끔, 1년에 서너 명 정도요. 알아보고 인사해 주시면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일부러 사람 많은 곳은 피한다. 그런 연예인 병은 아니고요(누가 알아봐야 피하는 거 아니겠어요?). 연예인들 입장에 과몰입될 때가 있어요.
예전엔 연예인들이 댓글을 쌀쌀맞게 달면, 네 손가락은 황금 손가락이냐? 뭐가 그렇게 까칠해? 저도 꼴 보기 싫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댓글을 달다가 기분 상할 때가 있어요.
-태국 여행 가는데, 맛집 좀 알려 주세요.
-방콕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어디죠?
단문으로 질문하는 글을 볼 때요. 명령조로 느껴진다면 오버일까요?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당연해? 이것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게요.
-방콕 여행 가는데, 맛집 몇 군데만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러면 기분 안 나빠요. 그래 봤자 저도 손가락 몇 번 두들기는 건데도, 이렇게나 생색을 내고 싶어 하더라고요. 수많은 댓글을 보는 연예인들은 더 피곤하고, 더 귀찮겠죠. 늘 성의껏 댓글을 달 수만은 없겠구나. 연예인들의 까칠한 댓글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연예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이것도 일종의 연예인 병 아닐까요?
예전에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어요. 한국 여행자들이 키르기스스탄에 얼마나 되겠어요? 모이는 곳도 뻔하고, 이야기 좀 길어지면 직업이며, 신상이 저절로 까발려지죠. 그래서 제가 여행작가인 것도 알게 되고, 제 책이 꽤나 유명하다는 것도 알게 돼요. 해외여행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중이래요. 즉시 인터뷰 요청을 하더군요. 카메라 돌아가고, 저는 질문에 답을 해야 했어요. 애초에 내 책을 읽은 독자도 아니고, 일본인 친구 카즈마의 호들갑 덕분에, 꽤 알려진 책을 쓴 작가군. 현장에서 알게 된, 주입식 유명 작가였죠. 찍어 두면 써먹을 데가 있겠다.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안 한다고 하면, 대단히 미안한 상황인 거죠. 제가 뭐라고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인터뷰라서 저도 발랄하고, 에너지 넘치게 답을 하지는 못했어요. 영 쑥스럽더라고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저를 신기하게 보는 것도 불편하고요.
-그런데 되게 비싸게 구신다.
정확한 문장을 기억하는 건 아닌데,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 부부가 저에게 비싸게 군다는 거예요. 그때 진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아파서요. 나는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원래 순간의 충격은, 뒤늦게 후벼 파잖아요. 당시엔 입도 뻥끗 못하고요. 오히려 안 비싸게 구는 건 어떤 거지? 안 비싸지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뒤늦게 어찌나 억울하고, 분하던지요. 사인을 해달라. 사진 한 장 같이 찍자. 그럴 때 무표정하게 거절하는 연예인들 참 괘씸하죠. 연예인 병 말기구만. 사진 좀 찍으면 얼굴이 닳아 없어지나? 흉을 보기 바쁘죠. 그깟 사인 한 장, 사진 한 장이 뭐라고요. 그런데 연예인들은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얄미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맡겨놓은 세탁물 찾아가는 거 아니잖아요. 해주면 고마운 거지. 안 해준다고 욕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보셨죠? 네, 저 연예인병 있다니까요. 이렇게 연예인 편에서, 연예인의 까칠함을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고 있잖아요. 대변해 주고 있잖아요. 사람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도 연예인이나 그에 준하는 유명인 될 수 있는 거고요. 가족들 중에 그런 사람 안 나오리라는 법 없고요. 나나 우리 가족은 평생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더 웃기는 거죠. 연예인들도 거절할 수 있는 권리 정도는 있어야죠. 저라도 적극 이해해 주려고요. 그래야 제가 완전 유명해졌을 때, 죄송합니다. 사인은 곤란합니다. 그러면서 내뺄 수 있을 테니까요. 늘 그렇게 거절하겠다는 게 아니라요. 하기 싫을 때도 있을 거 아니에요. 사람이니까요. 늘 친절하지 않아도 될 권리. 이 정도는 누구에게라도 허락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은 뭘 쓸까? 쥐어짜지 않아도, 글은 찾아와요. 세수를 할 때, 음악을 들을 때, 밥을 먹을 때요. 찾아올 때, 찾아왔음을 알기만 하면 돼요. 억지로 쥐어짜는 건, 읽는 사람도 힘드니까요. 그렇게 찾아오는 실마리를 놓치지 마시길. 우린 모두, 무수한 글들을 품고 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