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카 호스텔은 언뜻 설국 열차를 닮았다. 계급이 나뉘고, 공간이 나뉜다. 공장을 개조한 호스텔이다. 공장을 개조했으니, 그래봤자 공장? 감각을 덧씌우면 신분은 세탁된다. 가장 싼 방은 8천 원대. 비싼 방은 십만 원이 넘는다. 8천 원 도미토리 호스텔에서 십만 원 넘는 방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화장실을 나눠 쓰는 하층계급과 베란다와 욕실을 독점하는 상류층은 같은 지붕을 쓴다. 트빌리시에서 8천 원 도미토리는 싼 가격이 아니다. 2천 원대 도미토리까지 있는 도시다. 그런데도 타월 값을 받는다. 6라리. 2,500원. 두 번째로 옮긴 숙소는 하룻밤 3,500원에 타월 두 장을 준다. 큰 거, 작은 거. 공짜다. 가격도 상품이다. 아니다 싶으면 안 가면 된다. 교묘한 상술까지 미리 알기는 어렵다. 가난한 여행자는 이곳에서 상처 받는다. 호스텔에서 주방은 중요하다. 밥을 해 먹고, 수다를 나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내 인생 가장 거대한 호스텔은 내 인생 가장 작은 주방을 숨겨놨다. 물어봐야 알 수 있다. 찾아낼 수 있다. 자체적으로 혹은 임대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으라는 얘기다. 큰 건물 하나가 자리를 잡으면, 상권이 형성된다. 식당, 카페, 옷 가게, 이발소가 숙소 건물 안에 혹은 옆에서 성업 중이다. 하루 방값보다 비싼 밥을 강요한다. 이곳의 아침 식사는 웬만한 호텔 조식을 능가한다. 가격은 19라리(8천 원). 내 방값과 같다. 나는 매일 8천 원을 쓴다. 이 돈으로 이런 조식은 어디에도 없다. 막 구워주는 팬 케이크, 누구도 불평할 수 없는 바게트, 오믈렛, 여러 종류의 치즈, 후무스(병아리 콩을 삶아 만든 스프레드), 과일 요거트, 주스, 소시지, 채소, 제철 과일이 나온다. 내 방에 머무는 이들은 조식 식당에는 없다. 굶거나, 빵 한 조각 사서 먹는다. 거대한 1층 라운지는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공식적으로는 공짜다.
-네, 뭐라고요?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요?
두 명의 터키 남자가 우리 방 여자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한 모양이다. 이곳의 도미토리는 혼숙이다. 전 세계 도미토리는 혼숙이 일반적이다. 유치원생 수준 영어로 떠듬떠듬 두 남자가 사정한다. 여자는 어이없어서 웃는다. 저는 영어 선생님이 아니에요. 상냥하게 거절한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런 어이없는 부탁을 할까? 잠깐 머무는 손님에게 뭘 배울 수 있을까? 어리석고, 맹목적이다. 원시의 밀림에서 탈출해 문명을 처음 접하는 족장의 두 아들일까?
-방금 터키 남자 두 명이 나한테 영어 선생님이 되어달라는 거야. 웃기지 않아? 이 방엔 나만 영어를 할 줄 알아.
영어 선생이 될 뻔한 여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이 방은 12개의 침대가 있다. 6개의 2층 침대. 그녀는 내 건너, 건너 침대 2층에서 잔다. 누워서 갤럭시 노트로 페이스북을 보는 중이었다. 내가 있는 걸 모르는 걸까?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확신하는 걸까? 이때쯤 영어권 친구가 전화를 걸어주면 딱인데. 자기 예쁜 걸 너무 잘 아는 여자다. 당당하고, 목소리가 크다. 나라도 쌩까면 좀 겸손해질까 싶어 눈도 안 마주쳤다. 바깥 날씨는 30도를 훌쩍 넘겼다. 트빌리시 건물들은 타다 만 화제현장. 사람들은 불친절하거나 무심하다. 트빌리시를 걷는 게 재미가 없다. 나가기 싫다. 그래서 빈둥대던 중이다. 저 여자는 귓구멍 뚫린 동양인을 뭘로 보고 함부로 지껄이는 걸까? 내가 있는 걸 아예 모를까 봐 인기척도 못 하겠다. 오만방자한 손님 놀라실까 봐 알아서 얼음이 된다. 제길! 그녀가 나갔다. 공용 테이블에 앉는다. 노트북을 켠다. 여자가 들어온다. 제길, 제길! 맥주와 종이 상자에 담긴 볶음국수가 손에 들려있다. 서둘러 노트북을 끈다.
-테이블에서 먹어. 나도 먹으러 나갈 참이었어.
-아냐, 침대에서 영화 보면서 먹을 거야. 어쨌든 고마워.
-아무래도 침대는 좋은 식탁은 아닌 것 같아. 두 번만 더 생각해 줘. 그래도 편해? 오케이. 너도, 나도 편한 곳에 있자.
일부러 장황하고, 빠르게 나불댔다. 그녀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는데, 근 며칠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그녀는 굳이 침대로 올라갔고, 나는 노트북을 다시 켜고 깨작거렸다.
-펑
샴페인 터지는 소리.
-오, 미안. 안 믿기겠지만, 맥주야.
침대 위에서 맥주병을 땄다. 펑.
-무슨 영화 같아. 호호호. 그래도 너만 있어서 덜 창피해.
-그런데, 왜 안 나가니? 밖에서 마셔도 되잖아.
- 주말이 아니니까.
-원칙이야?
-서류 뗄 일이 있어서 잠깐 온 거야. 여행 온 거 아니야. 러시아 사람이야. 몸은 조지아 사람이고. 부모님도 조지아 사람인데 나는 러시아에서 자랐어. 나는 내가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 정말 궁금한 게 있어. 조지아 사람들 왜 이렇게 불친절해? 인종차별일까?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내가 지금 이 국수를 사고 잔돈 받는데 20분 걸렸어. 그것도 덜 줬어. 닭고기 볶음 국수를 시켰는데, 채소 볶음 국수를 받았어. 닭고기 국수로 바꿔달라고 했어. 국수 하나 시키면서 일어난 일이야. 일하는 사람이랑 눈 마주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조지아 사람은 무심한 걸 쿨하다고 착각해. 네가 조지아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완전히 달라질 걸? 기본적으로 불친절하지만,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그냥 그게 기본값이야. 외국인보다는 조지아 사람에게 더 친절해. 내가 생긴 건 조지아 사람인데, 말은 러시아 말을 써. 그러니까 더 불친절한 것 같아. 솔직히 요 며칠 매일 나가서 마셨어. 마시면 뭐해? 아무도 말을 안 걸어 줘. 내가 무섭게 생겼니?
이 방에서 이틀 묵은 스벤이란 독일 친구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그 여자애(이름은 니카다) 너무 당당해. 내 스타일 아니야.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행동이 무뚝뚝하면 거만해 보인다. 참 게으른 논리다.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미인이지만, 그래서 외로워질 수도 있다. 우린 모두 몸부림친다. 각자의 허상으로 만든 껍데기를 달고 구애한다. 조지아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해석했다. 진짜로 무시했을 수도 있다. 니카는 남자들이 자신을 겁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늘 발끈할 준비를 할까?내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있는 싸가지일 뿐이다. 똥 밟았네 하고 만다. 내가 얼마나 만만하면 감히...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사람. 나 같은 사람. 내 존재가 남의 눈에, 손아귀에 달린 사람. 그런 사람들은 주로 방에 갇힌다. 방이 편하다.
저녁엔 카드판이 벌어졌다. 터키 남자 두 명이 방에 있는 모든 이를 초대했다. 아제르바이잔 남자가 합류했고, 2층 침대 2층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던 니카도 합류했다. 나는 자겠다고 했다. 사실 지구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 보드 게임, 카드놀이다. 답답하다. 지루하다. 늘 혼자 맥주를 마시던 니카의 웃음소리가 가장 크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밀입국을 하고 싶어 하는 아제르바이잔 남자 제이빗(데이빗 아니다)이 웃통을 까고 갑자기 물구나무를 선다. 두 번 실패하더니 세 번째는 성공한다. 내 어릴 적 삼촌이 제이빗 같았다. 결국 미국 시민이 됐다. 니카는 시인이다. 운율을 살린 단편 소설을 준비 중이다. 시인으로 먹고 살기 불가능한 건 한국이나 러시아나 같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녀의 눈빛이 따뜻해졌다. 눈치 없는 네 명은 새벽 한 시 반까지 카드 패를 돌리며 낄낄댔다. 잠 자기는 다 틀렸군. 괜히 웃음이 난다. 민폐 손님들 때문에 에어컨 쌩쌩 방이 따뜻하다. 어쩌면 , 어쩌면 터키 남자 둘에게 영어 선생님이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상식의 감옥에 갇혀 산다. 기적은 무모한 사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