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지 않기, 노력하지 않기. 이게 내 여행.
트빌리시가 싫다.
이 감정에 가장 놀란 건 나다. 단호하다. 조지아에 실망한 여행자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없다. 기대 없이 와서 더 놀란 사람들뿐이다. 나는 놀란 사람들 덕에 실망 중이다. 그 어떤 곳보다 황홀할 거라 확신했다. 문제는 내 욕심이다. 놀라운 풍경은 이미 알고 왔다. 카즈베기로 가면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흔히 스위스와 비교되는 곳이다. 풍경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안 왔다. 현지인과 섞이는 희열이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안에 뭐가 들어 있어요?
마트에서였다. 큼직한 만두 같다. 터진 만두. 혹은 접은 빈대떡.
-meat(고기가 들어 있나요)?
-@#$%^^&*(()))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알아들었는지는 관심 없다. 하던 일로 돌아간다.
-chicken(닭고기가 들어 있나요)?
이렇게 묻고는 실없이 웃었다. 활짝 웃었다. 어떻게라도 잘 보여야 한다.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가 친절할 필요는 없다. 제가 알고 싶은 걸 알고 싶으면 조지아어를 배워와야 할까요? 지금만 그냥 알려줘요.
-*&^^%%$$$#@
조지아 사람이 조지아말로 답하는 게 죄는 아니다. 내가 알아들었는지 궁금해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녀는 할 말만 하고 돌아선다. 내 웃음기도 재빨리 사라진다. 다른 거나 사야겠다. 팔도 도시락면이 안 보인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안 보인다.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정체불명의 왕빈대떡을 먹겠다.
-이거 주세요.
이번엔 남자 직원이다.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덩어리 치즈를 하나씩, 하나씩 다른 자리로 옮기는 중이다. 다섯 개를 옮기고는 처음 나를 상대한 그녀와 히히덕 농담 따먹기를 한다. 깔깔깔, 깔깔깔. 아무래도 내 주문을 까먹은 것 같다. 아니, 내가 있다는 걸 까먹은 것 같다.
-저기요.
한 마디 하려는 참이다. 남자는 왕빈대떡 만두를 종이 봉지에 담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숙소 전자레인지로 덥혔다. 안에 들어있는 건 잼이었다. 빈대떡 팬케이크였던 것이다. 저녁 여덟 시 반이다. 한밤중에 밥으로 잼 범벅 팬케이크다. 절반 먹고 버렸다. 이곳은 지금까지 호스텔 중 가장 거대한 호스텔이다. 공장을 개조했다. 라운지는 웅장하기까지 하다. 호텔 뺨친다. 방값이 8천 원. 제일 저렴한 방이다. 십만 원 넘는 방도 물론 있다. 레모네이드를 5천 원에 판다. 조지아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35만 원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을 끌어모아서는 밥으로, 음료로 돈을 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몰린다. 그게 분위기다. 가치다. 돈 있는 현지인, 멋쟁이들이 이리로 몰린다. 8천 원 방값만 생각한 순진한 여행자들은 숙소 밖 계단에서 2천 원 케밥을 먹는다. 자신들이 이곳의 가치를 올리는 희생양임을 모른다. 이런이런! 구석에 숨은 주방을 못 찾았군. 나는 물어, 물어 찾아냈다. 알아내는 게 쉽지 않다. 친절하게 공지하지도 않는다. 돈 없는 이들이 찌그러져서는 요리를 해 먹거나, 사온 걸 먹어야 한다. 이 거대한 건물을 호스텔로 만들려고 수억 썼을 것이다. 어떻게든 남겨야 한다. 사업으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잔인해 보이지만, 그들의 정책을 비난할 마음 없다. 첫날부터 보였던 토마토 한 알이 슬프다. 가난한 여행자가 가난한 여행자를 위해 식재료를 남겨뒀다. Share food라고 쓰여있는 바구니다. 5일째 그대로다. 일주일이 더 된 것일 수도 있다. 청소하는 사람은 청소만 한다. 썩어가는 음식을 누가 먹든 관심 없다. 무뚝뚝함을 넘어 차가움이다. 나는 썩어가는 토마토를 보면서 잼 빈대떡을 씹었다. 체크아웃하는 날, 몸소 내가 버려줄게.
낮에는 극장엘 갔다.
-알라딘 네 시 거요.
인생 애니메이션 알라딘. 뉴욕에서 십만 원 넘게 주고 뮤지컬까지 봤다. 실사 영화를 놓칠 수 없다.
-영어는 없어요. 러시아어, 조지아 어만 있어요.
-다 더빙을 하나요?
-네, 다 더빙을 해요.
영어로 된 미국 영화를 영어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단 거가 먹고 싶다. 외로우니까 케이크집이다.
-포장 아니고요. 앉아서 먹을 거예요.
-노, 노
-2층에 자리 없어요?
-노, 노
이 여자는 화가 난 걸까? 나를 쫓아내고 싶은 걸까? 매장엔 테이블도 있고, 의자도 있지만! 노노. 두 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다. 개보수 중인 것 같다.
-알았어요. 그냥 포장이요.
그녀는 내가 고른 초코볼과 머랭 케이크를 봉지에 담았다.
-플라스틱 포크 같은 거 없나요?
-노, 노
암탉이 부리로 벌레를 쪼는 모습과 닮았다. 그녀는 암탉, 나는 벌레.
-표를 주세요.
버스에서였다. 영수증을 달라는 건가? 경찰복을 입은 여자가 승차권을 검사 중이다. 동전을 넣을 경우 영수증이 나온다. 나는 충전한 카드를 썼다. 영수증은 확인 안 했다. 영수증이 나오는 거였나? 나는 두 손을 들고 없다고 했다.
-$%^&&**
경찰도 나를 쫀다 콕, 콕, 콕콕콕. 나는 아파서 주머니를 뒤진다. 버스 카드를 보여준다. 단말기에 찍는다. 요금을 한 번 더 찍는 건지, 요금 냈다는 걸 확인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구시렁대며 버스에서 내린다. 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키득댄다. 약간 기분이 좋아진다. 웃긴 상황이지, 심각하게 내가 혼나는 상황은 아니다. 아니길 바란다. 비닐봉지 초코볼을 씹는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단단하다. 부드럽고, 단단하기란 불가능하다. 씹을 때부터 너무 뚱뚱해서 지루해지는 초코볼이, 파먹을수록 촉촉하다. 1.5라리. 600원. 600원으로 지구에서 이만한 쾌락은 없다. 2천 원까지도 적수가 없을 것이다. 트빌리시가 용트림을 시작한다. 끝까지 싫어해 보렴. 초코볼을 먹고도 그럴 수가 있겠어? 작은 것 하나면 된다. 나, 욕심 안 많다. 아주 작은 것 하나에 마음 두고, 얼마든지 녹을 수 있다. 초코볼을 이미 삼켰는데도, 놀랍다. 기적이 목구멍에서 식도까지 잔잔하게 펴 발라졌다. 그래도 안돼. 트빌리시 꺼져.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방을 예약했다. 국경선을 넘겠다. 나는 행복할 것이다. 트빌리시에 머무는 동안 초코볼을 두 번 더 먹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