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만만하고, 쉽지는 않습니다만
73년생이면 인터넷 격변기 세대죠. 리포트를 손으로 쓰다가, 어쩔 수 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야 했던 세대였어요. 손으로 쓰는 건 안 받겠다. 그리 선언하신 교수님들이 하나둘 늘어나니, 손필기로 버티던 저 같은 사람도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죠.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그랬어요. 곧 음성 인식으로 필기가 가능할 거라고요. 그러니까 굳이 타자 연습하지 말라고요. 원래 머리 좋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싶어서 핑계를 잘도 찾아내죠. 제가 그런 시대가 오기를 그 누구보다 바랐어요. 음성 인식 필기는 진즉에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예 안 나온 기술은 아니지만, 누구나 활용하는 단계는 또 아니니까요. 화상 통화가 사실 더 어렵고, 경이로운 기술 아닌가요?
90년대 일반 데스크톱 컴퓨터가 지금보다 더 비쌌어요. 일반적인 컴퓨터도 백오십만 원 이상은 줘야 했죠. 어머니랑 용산에서 직구한 삼보 트라이젬은 백팔십만 원 정도 했어요. 바가지를 쓴 것도 맞는데, 그땐 컴퓨터가 집에서 가장 비싼 가전제품인 것도 맞았어요. 삼성 SPC 컴퓨터, 대우 아이큐 시리즈, 삼보 트라이젬, 효성 컴퓨터 등등이 있었는데, 이름도 못 들어본 삼보 컴퓨터는 곧 망하겠지 했어요. 천하의 삼성이나 대우가 컴퓨터도 접수하겠거니 했죠. 웬걸요? 딤채 김치 냉장고처럼, 쿠쿠, 쿠첸 밥솥처럼 전문 회사 스멜을 솔솔 풍기면서, 컴퓨터 좀 아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죠. 삼보 컴퓨터에는 보석글이라는 게 있었어요. 아래아 한글이나 MS 워드 같은 거요. 컴퓨터가 생겼으니, 미래의 인재가 되는 건가? 집안에 컴퓨터가 들어온 날 어쩔 수 없이 비장해지더라고요. 과거의 나는 잊고, 신문물에 어울리는 내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죠.
천리안, 하이텔. 전화 모뎀 연결해서 대화하고, 커뮤니티에 눈을 뜬 사람들은 나름 얼리어답터였고요. 저는 끝물인 유니텔만 찔끔해보고, 바로 인터넷으로 넘어왔죠. 자주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에서 신청곡을 아이디로 받는 거예요. 아이디를 주르륵 호명하는데,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거예요.
-글렌 메데이로스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신청해 주신 아이디 3158님, 프린스911님 감사합니다.
왜 한국말인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 아이디가 뭐지? 숫자를 부르고 왜 님이라고 하지? 숫자에 인격이라도 있나? 나만 빼고 다들 외계인과 접속하나? 세상이 갑자기 낯설게 보이고, 나만 뒤쳐진 건가? 무지 외롭더라고요. 저는 그때 드림위즈 이메일을 썼어요. 어디 이메일을 쓰든 크게 차이가 없었을 때니까요. 드림위즈를 썼던 이유는 이름 때문이었어요. 뭔가 낭만적이고, 알라딘의 마술 램프 같은 어감 때문에요. 혹시 몰라서 네띠앙, 엠파스, 라이코스, 야후 주소도 갖고는 있었죠. 아이디를 누군가에게 뺏기기 싫어서요. 코리아닷컴 기억하세요? 두루넷에서 55억을 들여서 코리아닷컴 도메인을 사죠. 이 회사는 무조건 된다. 제가 그런 확신을 한 똥멍청이 중 하나였죠. 주민등록번호처럼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코리아닷컴 아이디를 갖게 되겠구나. 아니더라고요. 이름만 갖고는 안 되더라고요. 콘텐츠와 마케팅이 없으면, 휴지조각되는 건 일도 아니더라고요. 대표적인 게 프리챌이 있었죠. 천만 명 규모의 초대형 포털 사이트였죠. 유료화가 참 그때는 반발이 심했어요. 돈 안 내면 커뮤니티 폐쇄. 이렇게 윽박지르니까, 다들 다른 사이트로 도망갔죠. 대안이 있는데, 겁도 없이 협박을 한 거죠. 천천히 달래가면서, 길을 들여야 하는데 너무 조급했어요.
삼성 이재용이 미래의 노다지라고 확신했던 새롬 기술 기억하세요? 무료 다이얼 전화기요. 가장 드라마틱하게 주가가 치솟았던 종목이었죠. 한 때는 삼성 전자를 눌렀으니까요. 그리고는 휴지조각이 돼요. 무료 전화가 떼돈을 벌어줄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죠. 무료 통화 플랫폼이 결국 떼돈을 번 건 맞죠(카카오톡, 라인). 하지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IOS,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빛을 발했어요. 그런 생태계가 없이, 그저 전화만으로는 현금 창출이 되지 않았죠.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코스닥의 황제주가 된 골드뱅크도 기억나네요. 폭삭 망했어요. 광고 효과가 별로니까, 광고주들이 빠르게 이탈한 거죠. 그때의 흐름을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니 거의 같아요. 막연한 기대로 판을 키우고, 도박을 하죠. 나름 근거 있는 분석이라고 내놓기는 하지만, 책임지지 않는 결과론적 분석일 뿐이죠. 망하면 웁스, 쏘리! 이러고 마는 광기의 도박판이었어요. 아니, 옛날 컴퓨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슨 투기 열풍 이야기로 새나요? 이상 통장잔고 백만 원을 자랑하는 선무당의 무근본 의식 흐름이었습니다. 갑자기 제비우스와 엑스리온을 하고 싶네요. 갤러그보다 그게 더 재밌었는데 말이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쓰기 싫은 날도 있죠. 하지만 그런 날들을 여러 번 거치고 나니까, 오히려 글 쓰는 속도가 빨라졌어요. 슬럼프는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인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