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찢어지도록 먹어도 되는 날
전날부터 심장이 콩닥콩닥, 비는 오지 말아야 할 텐데. 전날이 뭐예요? 일주일 전부터 소풍날 비가 오는가에 대해 우리는 늘 궁금해하고, 초조해했어요. 저학년 때는 어머니들도 함께 소풍을 갔어요. 저도 입학하기 전에 형 소풍을 쫓아간 기억이 나요. 팬티스타킹을 착장해야 소풍 패션의 완성인데, 형만 입혀주고, 제 건 없다는 거예요. 그때 제가 집안을 다 뒤집어 놨어요. 울고, 불고. 팬티스타킹 없이 소풍 못 간다고 떼를 썼죠. 발가벗고, 길을 쏘다니는 것과 뭐가 다르냔 말이죠. 쉬 한 번 하려면, 몇 번을 벗어야 하는지 모르는 팬티스타킹이 그때는 참으로 소중했어요. 친구들 다 입는데, 저만 못 입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사는 건가요?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죠.
여섯 시만 돼도 눈이 번쩍 떠지더라고요. 어머니는 해표 식용유에 참기름, 맛소금 섞어서 일단 밥을 비벼요. 진주햄 분홍 소시지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당근이나, 시금치, 단무지는 소시지를 먹기 위한 일종의 벌이었죠. 그 벌칙을 수행하면, 마침내 입안에서 소시지가 굴러 다녔어요. 어머니가 김밥을 말면, 형과 나는 꽁다리를 먹기 위해서 새 새끼처럼 고개를 빼고 김밥을 주시했죠.
시내버스 8번을 타고 우이동 계곡이나 4,19 탑을 갔어요. 그냥 걸어서 갈 때도 있었어요. 앞산이었는데, 버스 타기도 좀 모호해서 그 어린애들을 걷게 하더라고요. 소풍이 아나리 고난의 행군이었던 거죠. 막상 가면 뭐 할 것도 없어요. 계곡에서 가재를 잡거나, 우르르 몰려서 장기 자랑 정도 하고 돌아오는 거죠. 그래도 김밥이 있으니까요. 김밥만 있나요? 배낭에는 오란씨, 칠성 사이다가 있고, 삶은 계란도 있었죠. 김밥도 있는데, 굳이 삶은 계란을? 삶은 계란조차 쉬운 음식이 아니었으니까요. 소풍 때는 쉽지 않은 음식들로 호사를 부리는 날이었으니까요. 캔음료가 나오기 전이라, 병따개도 꼭 챙겨가야 했어요. 배낭 안에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린 탄산음료들은 뚜껑이 열리면 공중으로 솟구치기 일쑤였죠. 마침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라서 웬만한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야구단에 가입했어요. 우리 집은 원년도에 오비 베어스에 가입해서(아마 리틀 베어스였을 거예요) 한쪽으로만 매는 요상한 흰색 배낭을 받았어요. 그걸 소풍 때 가져오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프로야구단 로고가 새겨진 셔츠나, 모자가 꼬맹이들 국민 일상복이었죠. 저는 MBC 청룡을 그렇게나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형과 아버지는 무조건 해태 타이거즈였어요. 아버지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해태였고, 형도 딱히 해태에 불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MBC 청룡이었어요.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서울 사람 아닌가요? 괜히 더 세련된 느낌의 MBC 청룡이 저의 원픽이었죠.
도시락을 아예 못 싸오는 아이들도 한 반에 한둘 꼭 있었어요. 선생님이 챙길 때도 있는데,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느낀 건지 점심시간에 사라졌던 친구들이 기억에 남아요. 김밥을 썰지도 않고, 그 기다란 걸 통째로 입에 넣는 아이, 그냥 집에서 먹던 반찬 그대로 담아온 아이도 기억에 남네요. 김밥 한 줄 싸는 것도, 여의치 않은 시절이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뭔가를 팔아 보겠다고, 잡상인들이 따라다녔어요. 불면 갑자기 훅 길어지면서 피리 소리가 나는 풍선 피리, 바람에 열심히 돌아가는 바람개비, 고무줄로 이어져서 깡총 뛰는 작은 망아지 인형 등이 기억나네요. 막대기 끝에 용 대가리 모양의 빨래집게 같은 게 달린 것도 기억나요. 그런 걸 왜 그렇게 사고 싶었나 몰라요.
국민학교 2학년 봄소풍, 미아리에는 비가 철철 내렸지 뭡니까? 비가 내리면 연기를 해야지. 학교 교실에서 소풍이 웬 말인가요? 그것도 늘 앉아서 수업받던 그 교실에서요. 어이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즐겨야죠.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홉 살 박민우는 MBC 코미디언 이기동의 쿵따라닥닥 삐약삐약 개다리 춤을 춰줬죠. 그렇게 열심히 흔들어 댔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은 거예요. 저랑 같이 배틀을 떴던 놈이 차원이 다른 개다리 춤 장인이었거든요. 무릎이 거의 백팔십도 수준으로 제쳐지면서, 표정까지 땅딸이 이기동과 완전 판박이인 거예요.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더니. 미아리에 이런 출중한 재능러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땐 소풍이 왜 이리 소중했을까요? 김밥 때문이었을까요? 오란씨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수업을 안 한다는, 파격적인 특혜 때문이었을까요? 아무것도 몰라서였을 거예요. 막상 별 것도 없지만, 대단한 게 있을 거라고 멋대로 기대했기 때문일 거예요. 소풍 때 딱 한 번만 쓰는, 필요 없이 예쁘기만 한 물병을 꼭 사야 했고,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고소미나, 맛동산도 꼭 가지고 가야 했어요. 알고 보면 별거 없더라. 그걸 깨우치면서 모든 신비는 사라지죠. 어른이 되는 통과 의례이기도 하고요. 잠을 못 잘 만큼 설레는 무언가가 남아 있나요? 저는 이제는 없어요. 또 모르죠. 장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런 설렘이 또다시 저에게로 찾아올지.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내게 들리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내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가? 모든 사람에게 새소리가 들리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주어진 것들만 살뜰히 누리며 살려고요. 그것도 어쩌면 큰 욕심일 수 있어요. 깨어 있어야만 들리고, 보이는 것들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