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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07. 2021

똥줄의 법칙, 나는 왜 쫓겨야만 글이 써지는가?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살면서요


군대 후임이 돈 좀 벌어보겠다고 방콕에 왔어요. 한국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저에게 받아달라고 한 소포가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받으러 온다는 거예요. 후임 머무는 곳도 시내에서 제법 멀어서, 중간쯤에서 만나면 좋겠지만 아시잖아요? 좀 바빠야죠. 매일 글도 두 편이나 쓰고, SNS에 아침 인사도 올리고요. 그래서 집 앞으로 오라고 했어요. 오후 두 시로 약속 시간을 잡은 이유는, 오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죠. 오기로 한 시간이 딱 삼십 분 남았어요. 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오전 내내 뭐하고요? 그러니까요. 밥 차려먹고, 방청소 정도 했어요. 낮잠도 좀 잤고요. 그랬더니 얼렁뚱땅 두 시가 다 되어가요. 왜 쫓기는 시간이 되어서야, 글을 쓰는 걸까요? 방학 숙제는 개학이 코앞에 닥쳐야 손을 대는 이유가 뭘까요? 어른이 되면 좀 나아지려나 했어요. 잡지사 기자일 때 마감이 내일모레면, 여전히 빈둥대요. 마음 편히 노는 것도 아니에요. 머리로만 바빠요. 생각으로만 초조해요. 생각으로라도 초조하면, 아주 쓰레기는 아닌 느낌적 느낌이 드니까요. 편집장님이 분노 조절에 실패하고, 손에 잡히는 걸 마구 던질 때가 와요. 그때부터 초싸이어인이 돼요. 하루에 일곱 꼭지를 턴 적도 있어요. 보통 기자당 열 꼭지 정도를 배당받아요. 그런데 일곱 꼭지를 하루에 토해내요. 진즉에 나누어서 조금씩 하면 좀 좋아요? 너 같은 놈은 밥도 아까워. 저 같은 아들 낳았으면 굶겼을 거예요. 왜 막판에 바쁜 척이냐고요?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로운 짓을 왜 반복하냐고요? 


결국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달고 살지만, 염치가 있는 인간이라 그게 거짓말임을 고백해요. 시간은 많아요. 늘 차고 넘쳤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허비했을 뿐이죠. 요즘 그래도 생산적으로 사는 편이에요.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과연 글을 아예 안 쓰던 때보다 바쁜가? 바쁜 건 맞지만, 숨도 못 쉴 만큼 파괴적인 바쁨은 아니에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알 뿐이에요. 예전에는 대충 계산했어요. 그 차이예요. 게으름을 합리화하며 살았어요. 이 일을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끝내지 못하면 큰일 난다. 그때가 오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발광하고, 몸부림치며 바쁜 척을 해요. 우리의 마지막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수명의 끝을 알게 된 날, 비로소 서두르겠죠. 평범한 인간이라, 하루씩 바쁨을 골고루 배분하며 살기란 쉽지 않아요. 지혜롭고 싶지만, 그런 그릇이 못 되는 거죠. 오늘이 매일 반복되는데, 그 오늘이 내일 사라질 리 없으니, 논리적으로 게으름을 피우게 돼요.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애초부터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었어요. 전체를 꿰뚫어 볼 능력이 없으니, 눈앞의 쾌락, 눈앞의 다급함에만 집중하는 거죠. 전부를 일부라 생각하고, 일부를 전부라 생각하면서요. 간편한 후회라는 카드가 또 있잖아요. 잘못 살았다 싶으면, 후회하면 돼요. 말장난 같지만, 후회처럼 간편한 게 없어요. 뉘우치고, 후회하면 돼요. 그럭저럭 뭉개면서 살았던 시간, 돌이킬 수 없으니 괴로워도 해보고요. 앞으로 잘 살면 되지 않냐고요? 그러니까요. 앞으로 잘 살게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어떻게든 되겠지. 이따위 태도는 오늘로 끝이에요. 자, 이제 후임을 만나러 나가야 해요. 보세요. 마음만 먹으면 삼십 분 안에도 쓸 수 있어요. 하지만 늘 후임이 오는 것도 아니고, 두 시에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의 각성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차차,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다짐했던가요? 평생 똥줄 타며 살아야 할 팔자인가요? 일단 다녀오고, 나중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이미 깨달은 사람보다는, 나는 부족하다. 노력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되어, 성장하고 싶어요. 성장이 끝난 사람보다, 진행형의 성장이 더 완벽한 삶의 상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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