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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08. 2021

감동의 나이는 따로 있는 걸까?

감동할 수 있을 때, 열심히 감동하셔야 해요

얼마 전에 봤던 '나의 아저씨'는 인생 드라마가 됐어요. 보통은 회를 거듭할수록 허접해져요. 제작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니까요. 중간에 반응 봐가면서, 시청률 안 나온다 싶으면 고치고, 시청률 좋다 싶으면 PPL도 양껏 끼워 넣어야죠. 드라마 작가도, 연출가도 사람인지라 시작할 때의 의욕이 고갈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려니 하고 보통은 봐요. 세상이 완벽을 강요하면서, 서로를 강박의 벼랑으로 몰아붙인다고 생각해요. 불완전함은 인간적인 거야. 제가 이렇게 관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신기할 정도로 완성도가 유지되더군요. 차라리 초반이 늘어져요. 주인공(이선균, 아이유)의  삶이 숨이 탁 막힐 정도로 기구해서, 보기 싫더라고요. 그 고비를 넘기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고비를 넘기고 나면, 상처 받은 자들이 끝내는 연대하는, 현실적인 것 같지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환상의 해피엔딩을 설득력 있게 풀어놔요. 그런 이웃도, 관계도, 결말도 과연 실제로 존재할까요? 드라마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요? 누군가는 이선균과 아이유는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고 해요. 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스무 살 어린 여자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살림을 신경 써 주고, 여자의 할머니까지 챙기는 모습을 쿨하게 응원해 주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요? 이선균의 아내(이지아)야 그런 시비를 걸 자격이 이미 없지만요. 바람이냐, 아니냐. 이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요. 그런 아슬아슬한 설정 속에서도 결국 모두가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완성도를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누구라도 아이유를, 이선균을 응원할 수밖에 없어요. 나에게 있는 어두운 모습이 겹쳐진다면 괴로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상처도 제대로 드러내면 힐링이 된다는 걸 '나의 아저씨'가 보여주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흔들고, 나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드라마는 아니에요. 황순원의 '소나기', 알퐁스 도데의 '별', '여명의 눈동자'나 '빌리 엘리어트'가 과연 '나의 아저씨'보다 나은가? '8월의 크리스마스'나 '첨밀밀'이 더 훌륭한 작품일까? 작품성만 놓고 본다면, 전 '나의 아저씨' 손을 들어주겠어요. 하지만 내내 생각나고, 또 보고 싶고, 볼 때마다 전율이 일었던 작품들은 전자예요. 어릴 때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찾아온 감동은, 절대적인 느낌이 있어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사랑이, 기구함이 나에게도 아픔이 돼요. 괴로움이 돼요. 내가 모르는 세상을, 뛰어난 작가가, 감독이 차분하게 그려서 보여줘요. 그대로 믿고, 숭배해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나도 아는 세상을 잘도 그렸네. 공감에서 그쳐 버려요. 흡수하는 과정이  훨씬 미지근해져요. 현실이 더 아프고, 기구하니까 내 안의 연민도 새로운 기구함에 절대적으로 몰입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인생 작품들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봤던 작품들이 차지하게 되나 봐요. '트랜스포머'나 '매트릭스'가 너무도 놀라웠나요? 혹시 사춘기 때 보지 않았나요? '트랜스포머'의 CG 기술이 놀라운 건 맞는데, 두통이 오더라고요. 혁신적인 CG에 반응할 수 있는 나이와 능력이 내겐 없었던 거죠.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 영화도, 사랑의 구질구질함까지 아는 사람에겐 몰입감이 떨어져요.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알면, 사랑에 매달리는 주인공이 귀엽게도 보이고, 딱해 보이기도 해요. 너무 많은 영화들을 봤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가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도 알죠. 그렇다고 반전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반전을 위한 반전은, 유치해지기 마련이죠. '식스센스' 이후로 얼마나 많은 영화에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인 척했나 몰라요. 그렇다고요. 흔들릴 수 있을 때 열심히 흔들리시라고요. 여행만 가면 좋아 죽겠나요? 그 감정 평생 가는 거 아니에요. 누가 뭐라든, 있는 돈 털어서 열심히 다니세요. 그 여행도 시큰둥한 때가 와요. 비행기를 타는 게, 출입국 수속이 다 귀찮은 때가 분명히 와요. 내게 찾아오는 감동에 열렬히 반응할 것.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특혜를 챙기는 지혜예요. 저는 그래도 인생 영화를 기다려 보려고요. 늙은 감수성으로 똘똘 뭉친 중년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기를 바라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어디선가 천재가 이를 갈고, 걸작을 만들고 있을 테니까요. 아니면 제가 직접 만들든가요. 하하하.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금 잘 살고 있나? 막연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잘 살고 있다는 기준은 뭘까요? 정답은 스스로가 찾아야죠. 순간의 몰입, 순간의 감사함. 그걸 충분히 느낀다면, 잘 사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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