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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09. 2021

슬픈 고백, 내 안엔 정말 악마가 사나?

타인의 아픔을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저뿐인가요?

전 중앙일보 기자였던 홍혜걸의 폐암 소식을 듣고서, 깜짝 놀라요. 의사 아닌가? 나이를 어디로 먹나 싶게 젊고, 반듯한 남자가 암이라고? 그리고는 나이를 확인해요. 나보다 여섯 살이 많네. 내가 6년 후까지 암에 안 걸리면 이기는 건가? 지명도나 가진 거야 비교할 수 없지만, 건강만이라도 이기면 그게 어디야? 저란 인간 생각하는 꼬락서니 좀 보세요. 누군가는 하늘이 무너지는 중일 텐데, 저 같은 놈도 사람인가요? 오늘만 이런 모습이겠어요? 유명인의 스캔들이나 안 좋은 소식에 슬퍼만 했겠어요? 바닥으로 추락하는 유명인을 스포츠 중계 보듯 즐긴 적은 없었을까요?  


내 안의 악마는 늘 샘을 내요. 나는 잘 살고 있다. 거짓 최면을 자주 반복하면서, 평상시에는 이성적인 척하죠.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 방법은 무관심이에요. 진짜 무관심해서 무관심한 게 아니라, 사력을 다해서 관심 없는 척해요. 그래서 매사에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듯 보이겠죠. 타인에 대한 적당한 칭찬이 내 안의 지질함을 가리는 효과적인 방패라는 것도 알아요. 나보다 잘난 사람 칭찬을 얼마나 잘하는데요. 준비된 덕담도 능숙하게 잘도 풀어요. 가식이라뇨? 노력이라고 봐주실래요? 연예인이면 인권이고 나발이고, 연쇄 살인범 대하듯 난도질을 당해도 그러려니 해요. 겉으로는 동정하지만, 내 일처럼 가슴 아파하지 않아요. 그만큼 많이 버니까요. 누리는 것도 많을 테니까요. 


요즘 김용호란 사람이 여자 연예인들을 유튜브에서 짓밟고 다니더군요. 저는 무슨 큰 이슈라도 새로 생긴 줄 알았어요. 어떤 남자를 만난다더라. 누구 스폰을 받는다더라.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 치명타를 열심히 날리고 있더라고요. 사실이어도 전혀 법적인 문제가 될 게 없는 것들로 끝을 보겠다는 듯이 씹어요. 사실이어도 뭐 어쩌라고? 결국 개인 사생활인데 말이죠.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짜야? 궁금해하고, 검색해 본 1인이에요. 내 일 아니면, 재미가 되더라고요.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 같은 연예인이, 나라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쾌감에 동참하는 거죠. 뭐가 다른가요? 힘센 양아치들이 교실에서 만만하고 약한 애를 팰 때,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문제집을 푸는 척했던 비겁했던 나와 뭐가 다를까요? 어떻게 기본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패가 가능한 걸까요?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을 왜 아무도 제지하지 않나요?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까요? 나라도, 법도 막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 건가요?


내 안의 악마는 아마 평생 저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좋나요? 악취 나는 이 놈을 죽을 때까지 품고 살라고요? 대신 내가 궁지에 몰리면, 그 벌 달게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잠깐 반성하고, 나는 반성이라도 하지. 겉멋 가득한 선민의식으로 보잘것없는 저를 정당화해야 할까요? 누군가가 자살을 해도, 아이고, 저런! 하루 슬퍼하고, 내 윤리적 의무감은 여기까지. 쿨하게 내 살길만 찾으면 되는 걸까요? 나도 악마고, 저 사람도 악마고, 세상 절반 이상이 악마로 가득해서 솔직히 죄책감도 무뎌져요. 이렇게 사는 게 평범한 삶인 것만 같아요. 채식을 하고, 환경을 위해서 텀블러를 쓰면 뭐하나요? 당하는 사람들을 목격하면서도, 침묵하며 사는데요. 누군가가 자살하고 나서야, 이럴 줄 몰랐더냐? 세상에 대고 한 소리 찍하고 마는데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야, 법이 달라질까요? 양심의 질서가 수면 위로 드러날까요? 나도 죽을 수 있다. 그런 위기감이 모두에게 자리 집지 않는 한, 이 미친 폭력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내 안의 악마가 너무 평범해 보여서 두려워요. 참 두려운 세상이 됐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누구라도 안심하고, 누구라도 자신의 삶을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죠.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요. 언젠가는 내게 돌아올 부당함을 어떻게 막을 건가요? 양심이 허락하는 삶을 살았으면 해요. 누구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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