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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n 10. 2021

틀어진 친구와 영영 보지 않으면 후회할까요?

살아 있으니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가깝게 지내다가 틀어진 친구가 두 명 있어요. 둘 다 대학교 친구예요. 시간이 오래 지나면, 미움도 희미해져요. 그때 네가 나한테 실수한 거 맞지?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크게 의미는 없고요. 이를 악물고, 죽을 때까지 저주하겠어. 그런 전투력 역시 전혀 없어요. 그냥 편하고 싶어서요. 불편한 상황을 참거나, 피하는 두 가지 카드 중에 '피하는 카드'를 택한 것뿐이죠. 어머니는 이런 저의 태도가 못 마땅하시대요. 사람 관계는 그렇게 무 자르듯이 자르는 거 아니라고요. 어머님은 실천으로 몸소 보여주셨어요.


-내가 너 많이 미워했다. 미안하다.


어머니의 시고모님이, 저에게는 고모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 펑펑 우시면서, 다 지난 일이라고 얼싸안으시더라고요.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한 줄 알겠더라고요. 어머니는 동네북처럼 시댁 어른들의 완벽한 미운털이었지만, 서운함을 굳이 감추지는 않으셨지만, 저처럼 관계를 끊는 법은 없었어요. 증오에 찬 모습도 본 적 없고요. 물론 시대 보정이나 상황 보정은 해야죠.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부정할 짱이나 진보성은 갖고 계시지 않았으니까요. 옛날 사람이니까, 감수했던 것도 분명 있었겠죠. 저는 이런 저의 태도를 후회할 날이 올까요?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봐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해요. 심각해지지 말라고. 용서는 그렇게 어려운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요. 저도 동의해요. 저도 죽음이 내일모레면 무조건 용서해요(그 친구들도 저를 용서해야겠지만). 내 죽음도 힘에 부치는데, 다른 관계가 신경이나 쓰이겠어요? 다 부질없고, 쏟을 힘도 없겠죠. 미운 친구들만 불러서 파티도 할 수 있어요. 유치한 신경전도 다 추억이라며 하하호호할 자신도 있고요. 당장은 안 죽을 것 같아서요. 괘념치 않는 자유는, 죽음이 임박해야만 오는 걸까요? 너무 늦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라. 용서든,  화해든. 아무리 강조해도, 쌩쌩한 사람에겐 그 말이 먹히지를 않아요.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


매우 현실적인 가정인데도, 그 약발이 잘 안 먹혀요. 어리석어서죠. 언제라도 사고가 날 수 있고, 병이라는 것도 예측 가능한 게 아닌데 말이죠.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이런 확신만 있다면, 어떤 관계든 즉시 회복해야 마땅한데 말이죠. 죽음이 내일 모레인 이들의 교훈을 어떻게든 새기고 싶지만, 영영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몰라서 실천 못하는 게 아니니까요. 후회할 것도 알아요. 하지만 상황이 허락하는 만큼만 각성할 뿐이죠. 젊으니까 건방진 거고, 나이를 먹을수록 고개를 숙여요. 육체적 상황이 만드는 겸손이죠. 잘 풀리면 건방지고, 잘 안 풀리면 비굴해져요. 누구에게나 외모 칭찬을 받으면 당당해지고, 누구에게나 무시당하면 기가 죽어요. 전교 1등만 해서 서울대 간 스무 살에게, 내일 죽을 것처럼 겸손해져라. 모든 욕심이 부질없으니 가벼워져라. 이 무슨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일까요? 나이가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가면서 젊음의 조명발도 사라지면, 그때가 되어서야 와닿는 말 아닐까요? 어리석음은 젊음의 상징이 아닐까도 싶어요. 후회할 일들도 감당할 수 없이 벌여 놓는 게 젊음인 거죠. 실수도 하고, 반성도 해야 젊음 아니겠어요?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서, 자신이 진심으로 보잘것 없다 느낄 때, 그때는 스스로 배움을 찾게 돼요. 깨달은 이들의 지혜를 간절히 바라게 되죠. 그러니까 지금 저의 어리석음은 과정이라고 믿으려고요. 젊은가 보죠. 여전히요. 불편한 관계를 왜 지속해야 하는가? 좋은 기억도 많은데, 영영 안 보는 것만이 답인가? 이 둘 중에 무엇이 맞는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어떤 답을 택하든, 새파랗게 젊을 때와는 다른 결일 거예요. 우리가 나약해서 일어난 일들인 것을, 상대방은 강해서라고 오해하죠. 너도 약했고, 나도 약했다. 그 약함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한 거겠죠. 우리의 나약함은 추함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인간성임을 깨닫게 될 때, 답도 보일 거예요. 지금은 이 편안함이 마냥 좋기만 해서, 그게 찔려서 하나마나한 푸념을 늘어놔 봐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삶은 복잡하지 않아요. 단순한데, 단순함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보지 않는 거죠. 배가 고플 때만 먹고, 목이 마를 때만 마셔도 아플 일이 없다네요. 이런 기막힌 지혜를 외면하는 게, 우리 사람이래요. 어처구니없으시죠? 그러니까요. 지혜를 멀리서만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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